남자 신데렐라의 돌구두 남자 신데렐라의 돌구두 한쪽 발에 통깁스를 한 채 팔월 염천(炎天)을 난다. 중복 무렵 남편의 어이없고 허무한 골절(骨折)에 놀라고 걱정하던 아내가 입추와 말복을 넘기고 처서도 지난 요즘에는 “저놈의 돌구두가 벗겨져야 우리 신랑이 왕자를 만나게 될 텐데” 하며 장난칠 정도가 되..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8.27
나의 부상을 감춰야 하는 이유 나의 부상을 감춰야 하는 이유 생전 처음 느껴보는 골절의 통증보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불편보다 무더운 여름날 꽁꽁 싸매고 있는 답답함보다 일하기 싫어 다쳤느냐는 농담을 가장한 진담보다 이 순간 나는 팔순 넘은 남편을 병상에 뉘어놓고 있는 노모께서 머리 빠지고 그나..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8.20
우산을 말리며 우산을 말리며 비가 오면 가장 먼저 생각나고 의지하게 되는 우산 네가 있기에 폭우 속으로 뛰어들 엄두도 내게 되지 하지만 살 부러진 네 모습에 부끄러울 때가 있어 해가 나면 널 귀찮아하거나 깜박 잊어버리기 일쑤고 많은 날들 존재도 고마움도 잊고 지내다 힘들고 아쉬우면 떠올라 ..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7.24
균열 균열 가물다. 물에 잠겼을 때는 흐물거릴지언정 하나이던 논바닥이 열 갈래 백 갈래로 찢어지고 갈라졌다. 가뭄이라는 시련에 흙은 사력을 다해 서로 뭉쳤을 터, 쩍쩍 갈라진 논바닥은 흙이 그렇게 뭉친 결과다. 우리에게 가뭄같은 시련이 닥쳤을 때 나는 그대를 온 힘으로 껴안아 서로 ..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6.17
바퀴살의 밀당 바퀴살의 밀당 똑같이 당겨라, 힘을 더 쓰지도 덜 쓰지도 말고 똑같이 밀어라, 과욕도 게으름도 부리지 말고 똑같은 간격으로 테에 빙 둘러선 바퀴살 너희들이 똑같은 힘으로 밀당하면 바퀴는 부드럽게 굴러갈 것이다 그러나 너희 중 한둘만 빠지거나 휘어도 바퀴는 긴장이 풀려 곧 덜컹..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6.12
장미꽃이라서 좋겠다 장미꽃이라서 좋겠다 넌 장미꽃이라서 좋겠다 누구나 널 보면 가던 걸음 멈추고 화사한 자태와 고운 향기를 예찬하잖아 요즘 난 부쩍 생각이 많아졌어 서울 태생도 아니고 재벌2세도 아니지만 아프가니스탄이나 잠비아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인 것 같아 출생은..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5.20
어디 박씨 물고 온 놈 없나… 어려서 제비는 흔히 볼 수 있는 철새였다. 봄이면 왔다가 가을이면 떠나가지만, 사람 사는 곳에 함께 기거하여 가족처럼 친근한 새였다. 젖은 흙과 지푸라기를 이용해 처마에 집을 짓는 모습, 그 둥지에서 손가락 끝에 느껴지던 따뜻한 알의 감촉, 어미가 벌레를 물어 오면 새끼 서너 마리..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5.14
아카시아? 아까시나무? 아카시아? 아까시나무? 동구밖 과수원길 아카시아꽃이 활짝 폈네 하얀 꽃 이파리 눈송이처럼 날리네 향긋한 꽃냄새가 실바람 타고 솔솔 둘이서 말이 없네 얼굴 마주 보며 생긋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먼 옛날의 과수원길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자주 듣거나 흥얼거리게 되는 동요 ‘과수원..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5.14
가시, 자극 가시, 자극 고양이 발톱보다 독수리 부리보다 더 날카롭게 돋친 가시 이제 곧 무성한 잎 속에 몸을 숨겨 아름다운 꽃과 달콤한 꿀과 탐스러운 열매를 지키겠지. 내가 널 건드리지 않는다면 너 또한 날 할퀼 이유가 없을 거야. 내가 혹 널 자극(刺戟)하더라도 네가 나에게 너무 앙칼지게 박..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4.17
봄날은 간다 봄날은 간다 혹여 밟을까봐 발끝 세우고 조심조심 걷는 우리, 길바닥에 널부러진 채 퇴색해가는 것들이 보기에 흉하고 걸리적거려서 싫은 게지. 그러나 우린 제몫 다하고 스러져가는 모든 것들을 경외해야 하네. 우리가 고개 젖혀 우러르던 목련꽃도, 이 봄을 화사하게 빛내다 이제 드러.. 사진 그리고 단상 2015.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