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남자 신데렐라의 돌구두

몽당연필62 2015. 8. 27. 17:25

 

남자 신데렐라의 돌구두

 

한쪽 발에 통깁스를 한 채 팔월 염천(炎天)을 난다.

중복 무렵 남편의 어이없고 허무한 골절(骨折)에 놀라고 걱정하던 아내가 입추와 말복을 넘기고 처서도 지난 요즘에는 저놈의 돌구두가 벗겨져야 우리 신랑이 왕자를 만나게 될 텐데하며 장난칠 정도가 되었다.

졸지에 신데렐라가 된 나는 내가 남자인데 왕자를 왜 만나? 공주라면 모를까하며 허허 웃을 수밖에.

 

벗겨지지 않는 돌구두를 신고 있노라니 저절로 알겠다.

사지(四肢) 멀쩡하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뭔가 성취하기 위해 들이는 발품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물리력(物理力)이든 사고(思考)든 좌우의 균형이 왜 필요한지,

나를 돌보며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환자치레에 재미 들려 여름을 편하게 보낸 남자 신데렐라는, 아무리 용을 써도 벗겨지지 않는 돌구두를 보며, 이 신을 벗는 날 내가 편한 만큼 더 힘들었을 아내에게 할 말을 생각한다.

, 돌구두 벗겨져도 절대 공주 안 만나. 이미 나한테는 훌륭한 왕비가 있거든!”

돌구두는 팔월이 가면 벗게 될 것이다.

 

/몽당연필/

'사진 그리고 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섯 남매의 '아주 특별한' 아버지 이야기  (0) 2015.09.22
세상은 나 없어도 잘만 돌아간다  (0) 2015.09.10
나의 부상을 감춰야 하는 이유  (0) 2015.08.20
우산을 말리며  (0) 2015.07.24
균열  (0) 2015.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