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어디 박씨 물고 온 놈 없나…

몽당연필62 2015. 5. 14. 15:09
 

 


어려서 제비는 흔히 볼 수 있는 철새였다. 봄이면 왔다가 가을이면 떠나가지만, 사람 사는 곳에 함께 기거하여 가족처럼 친근한 새였다.

젖은 흙과 지푸라기를 이용해 처마에 집을 짓는 모습, 그 둥지에서 손가락 끝에 느껴지던 따뜻한 알의 감촉, 어미가 벌레를 물어 오면 새끼 서너 마리가 일제히 입을 벌리며 보여주던 생존에의 본능, 채 힘이 실리지 않은 날개를 파닥이며 처음으로 둥지를 떠나는 어린 제비의 모험까지 고스란히 보며 자랐다.

요즘 들어 보기 힘들어진 제비들이 전깃줄 위에 일렬로 앉아 날개를 쉬고 있었다. 모처럼 제비를 보았다는 반가움이 사라지기도 전에 떠오르는, ‘어디 박씨 물고 온 놈 없나’ 하는 생각에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제비가 돌아왔다는 것은, 그래도 이 땅에 생명체가 살아갈 만하다는 증거일 터. 그래서 전깃줄 위의 다섯 마리 제비는 그 자체로 고맙고 소중한 다섯 톨의 박씨다.

 

사진 제공 : 최수연(월간 '전원생활' 기자)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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