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510

슬픈 꽃

씨 뿌리거나 이종할 때 진심으로 풍년 기원하는 것이야 농부의 마음 아니겠나. 그런데 이 일을 어쩐담, 작년에 재미 좀 봤다고 너도나도 심은 양배추가 그만 정말로 대풍이 들고 말았다. 이거 제하고 저거 떼면 남는 것 없을지라 농부는 수확을 포기해 버렸다. 땀방울도 같고 뚝뚝 떨군 눈물도 같은 양배추들이 봄 다 지나도록 주인을 못 만났다. 갈 곳 잃은 양배추 덩이 덩이마다 꽃대를 올려 샛노란 꽃을 매달고 있다. 반갑고 예쁜 꽃이 아니라, 이 집 저 집 풍작이어서 허기진, 여리고 슬픈 꽃이다. /몽당연필/

부모님

사실 부모님 원망 적잖이 했다. 하필 이 깡촌 무지렁이인가, 이웃들 앞다퉈 대처로 떴는데 뭐 있다고 궁벽한 두메를 지키고 사나.... 그러다 어느 순간 철이 들었다. 내가 그냥 큰 게 아니구나, 당신들의 몸과 영혼을 양분 삼아 뼈와 살이 자라고 얼간이를 면했구나.... 자신의 씨앗을 보듬어 싹 틔운 고목을 본다. 심재(心材)는 이미 썩어 거름이다. 어머니도 나를 저렇게 품어 키우셨겠지. 아버지도 스스로를 거름으로 내놓으셨겠지....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