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장구채
벌써 삼사 년 전이야.
사위가 어스레해지던 무렵 넌 오가는 이 드문 길섶에서 박꽃보다 희디흰 웃음을 띠고 있었지.
한눈에 반한다는 게 그런 거였어.
붙들지 않았음에도 걸음을 멈춘 나는 갈 길 멀다 짐짓 딴청 부리면서 널 마음에 품어버렸으니까.
물어물어 네 이름을 알았고 먼발치에서나마 고운 얼굴 볼 수 있으려나 서너 해 그 길 찾아 서성였는데 넌 홀연히 모습 감춰버렸더라.
그러다, 아, 이번에야 알았어.
밝은 때에는 들킬세라 날 외면했던 거야.
거친 땅을 억세게 움켜쥔 고향 가시내 같은 달맞이장구채!
너와 애틋하게 눈 맞추고 올려다본 하늘엔 낮 동안 하얗게 야위었던 조각달이 산허리 감도는 이내에 기운을 차리고 있구나.
/몽당연필, 2023 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