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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나무에게

존귀하거나 비루하거나, 곱거나 추하거나, 혹을 떼었거나 붙였거나, 늙는 건 아름다운 일이야. 한세상 이러구러 살아냈다는 증거잖아. 너를 가만히 보듬고 귀를 기울여 본다. 소곤소곤, 네가 들려주는 세월의 소리가 전해져 와. 빗소리 바람소리 천둥소리, 아이들 까부는 소리, 여인네 치성 드리는 소리, 칼과 창이 부딪고 포탄이 터지는 소리... 아, 너는 그 전설들을 죄다 담고 있구나. 옛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건 아름다운 일이야. /몽당연필/

나뭇잎 배를 띄우며

처가에 신우대가 지천이라 잎을 몇 장 따 배를 만들어 보려니 막상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어렸을 때 눈을 감고도 척척 만들던 것인데.... 이렇게 접어 보고 저렇게 구겨 보다 결국 포기하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세상에 이렇게 간단했던 것을! 소싯적에 "두뇌가 명석하고 창의성이 뛰어나 장래가 촉망된다"는 칭찬깨나 받았는데(의사들아, 이래 봬도 내가 전교 1등 해봤던 몸이여~), 아무래도 선생님들이 나를 잘못 파악했던 듯하다. ㅠㅠ 아무튼 시치미 뚝 떼고 처조카의 아이들을 빗물 가득 담긴 대야 앞으로 불러 모아 대나뭇잎으로 배 만드는 시범을 보이니 요놈들 신기하다고 난리다. 아이들에게도 직접 배를 만들어 각자 이름을 짓게 한 뒤 진수식까지 나름 진지하게 열었다. 처가에는 신우대 울타리에 함선을 건조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