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쌀 문제는 농민을 넘어 국민 모두의 문제다

몽당연필62 2016. 9. 20. 14:06

쌀은 우리의 얼이요 문화다. 생명과 힘의 원천이다. 그런데 쌀시장 개방 20년 만에 쌀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우리는 사실 햇볕, 공기, 물과 같은 것이 없으면 생존 자체가 불가능함에도 그것들을 너무나 쉽게 누릴 수 있어서 귀한지를 모르고 산다. 지금 쌀도 그러하다. <글=몽당연필 / 사진=농민신문사>

 

 

쌀 문제는 농민을 넘어 국민 모두의 문제다

 

지난 추석을 전후해 많은 도시민들이 고향에 다녀오면서 누렇게 물들거나 벌써 추수를 한 들녘을 보았을 겁니다. 현재 농촌의 상황을 자세히 모르는 거의 대부분의 도시 사람들 눈에는 제 무게에 겨워 고개를 깊게 숙이는 황금빛 벼이삭이 풍요와 기쁨의 물결로 보였겠죠.

그 도시민들 중에 풍년이 확실해 보이는데도 벼농사를 짓는 부모님과 친지의 표정이 밝지 못한 것을 알아챈 사람이 얼마나 있었을까요? 오랜만에 자식들을 보는 기쁨에 잠시 수심을 감췄을 수도 있지만, 우리 농민들의 표정이 본격적인 쌀 수확기가 다가오면서 갈수록 어두워지고 있습니다.

 

황금빛 풍년 들녘에서 수심 가득한 농심

쌀값은 일반적으로 햅쌀이 나오기 전 무렵(단경기)이면 오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 상식은 이미 수년 전부터 통용되지 않고 있지요. 올해도 단경기인 지금 쌀값이 오르기는커녕 더 가파르게 곤두박질치고 있고요. 통계청에 따르면 가장 최근 조사인 95일 산지쌀값은 80기준 137152원으로 1년 전 같은 날의 159972원에 비해 22820(14.3%)이나 떨어졌습니다. 10월부터는 신곡 가격이 통계에 반영되는데, 신곡 가격이 급등하거나 상당한 수준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쌀 문제를 어설프게 아는 사람은 쌀값이 떨어지면 정부가 다 메꿔주는데 뭐가 문제냐. 쌀농사는 기계화율도 높으니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보니 농민들에 대해 떼법을 앞세워 억지만 쓰는 사람들이라는 오해도 하고, 우리 쌀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별 의미를 두지 않습니다. 오히려 식량을 값싸게 수입해 먹는 대신 반도체나 자동차 등 공산품 수출을 늘리면 국가적으로 이익이 아니냐고 반문하고요.

하지만 이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라서 하는 이야기죠. 농가가 받는 변동직불금은 수확기의 평균 쌀값이 정해진 목표가격보다 떨어질 경우 하락분의 85%를 기준으로 산정되니 100% 보전은 애당초 불가능한 것이거든요. 그나마 하락 폭이 일정 수준 이하이면 변동직불금이 아예 산출되지도 않는답니다.

쌀값의 지속적인 하락은 이처럼 농가에 손해가 될 뿐만 아니라, 농민들로부터 수확기에 쌀을 대량으로 구입하는 미곡종합처리장(RPC) 경영에도 압박 요인이 됩니다. 농협의 경우 전국 153RPC가 합계 기준 2014305억원, 201534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올해도 300억원 안팎의 적자가 예상된다고 하네요. 최근 3년 동안의 적자만 해도 1000억원에 육박한다는 계산입니다. 농협의 적자는 각종 사업 위축과 농민 조합원에 대한 이익 환원 축소로 연결되겠죠.

 

쌀농사에 대한 도시민의 이해 필요

쌀값 하락은 정부의 재정 운용에도 부담을 줍니다. 지속적인 쌀값 하락에 따라 정부는 2014년산 1941억원, 2015년산 7257억원의 변동직불금을 쌀농가에 지급했습니다. 2016년산을 대상으로 하는 변동직불금 예산도 9777억원이 편성돼 국회에 제출된 상태고요. 현재 상황으로 보아 내년 초 실제 지급할 직불금은 편성된 예산 규모를 넘어 1조원을 상회할 가능성이 크네요. 당연히 재정은 국민 세금으로 충당됩니다. 그러니 쌀값이 내리면 쌀을 싸게 사먹는다고 좋아만 할 일이 아닙니다.

정부가 최근 2016년산 공공비축미 우선지급금을 1등급 벼 40기준 45000원으로 2015년산 공공비축미보다 7000원이나 낮게 결정해 발표했습니다. 내년 쌀값이 올해보다 더 떨어질 것임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는 일이잖아요. 그러니 농민들이 웃을 수가 없습니다. 아니, 화가 납니다. 안 그래도 요즘 쌀값이 30년 전과 같은 수준이라잖아요. 이러한 쌀 문제의 시발이 쌀시장 개방 및 최소시장접근(MMA)에 의한 의무수입 등 국가의 정책에 기인한 면이 크기 때문에, 농민들은 정부에 쌀 문제를 해결하라고 강력히 요구하는 것입니다.

추석 때 고향에 가서 풍년을 앞두고도 기뻐하지 못하는 부모님과 친지들을 보고 온 많은 도시민들이 이러한 쌀은 물론이고 농업 전반에 대한 관심을 높여 농민들에게 힘이 되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그 방법은 간단합니다. 국산 농축산물을 맛있게 잡수시기만 하면 되니까요. 그리고 정부는 쌀 관련 비상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고 하는데, 실효성 있는 수확기 대책을 반드시, 서둘러서 내놓기 바랍니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