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농민들은 왜 ‘김영란법’에 반발할까

몽당연필62 2016. 9. 8. 07:30

김영란법에 의하면 이 아름다운 꽃들은 금액 제한 때문에 공직자들에게 선물해선 안될 물건이 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소비가 확 줄어들겠죠. 화훼농가는 김영란법이 무섭습니다.

 

농민들은 왜 김영란법에 반발할까

 

농업계와 소상공인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령이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을 상한가액으로 정한 원안대로 96일 국무회의를 통과함으로써 928일부터 시행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 등의 비리를 규제하기 위해 제정됐는데, 첫 제안자인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의 이름을 따 김영란법이라 불리게 됐지요. ‘공정사회 구현, 국민과 함께하는 청렴 확산이라는 취지를 지니고 있으니 모두가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할 반부패법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왜 농민이나 음식점을 하시는 분들은 악착같이 이 법을 반대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농민과 일부 소상공인들에게는 생계를 위협하는 장치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농축산물을 수수 금지 대상 품목에 포함했고, 식사-선물-경조사비 한도를 각각 3만원-5만원-10만원으로 정했기 때문이지요. 적용 대상 공직자의 범위도 사립학교 교사까지 포함되는 등 무척 넓어서 사실상 전 국민이 김영란법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928일부터 시행, 농축산물 타격 불가피

 

실제로 요즘 좀 괜찮다 싶은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면 3만원은 우습습니다. 한우고기나 품질 좋은 과일세트 선물은 5만원 이내의 금액으로 고를 것이 없고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이처럼 농축산물 소비가 위축되는 것은 물론, 상당수 음식점도 불황에 빠질 것이 뻔합니다. 그래서 농업계에서는 김영란법상 수수 금지 대상 품목에서 농축산물을 제외하거나 적용한도를 더 높여달라며 당초의 안에 지속적으로 반대했던 것이지요.

사실 박근혜 대통령도 김영란법이 끼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걱정을 했습니다. 지난 426일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김영란법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밝히며 우리 경제의 위축 가능성을 우려한 바 있었죠. 810일에는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이 정진석 당 원내대표에게 식비·선물비 가액 조정을 위한 당정협의 개최를 건의하는 등 국회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김영란법 시행령에 높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적용 금품에서 농축산물이 제외되지도 않았고, 허용 가액이 상향되지도 않은 겁니다. 과수·인삼·화훼·한우 등 농업 여러 분야와 음식점 운영자 등 소상공인들이 막대한 타격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호소가 정책 입안자들에게는 우이독경이요 마이동풍이었던 셈입니다. 대통령과 정치권의 이러한 언사와 행동도 과연 진정성이 있었던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안그래도 값이 싼 수입 농축산물이 경쟁에서 더욱 유리한 상황이 조성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김영란법은 외국 농산물 수입 촉진법이라는 한탄이 농업계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죠. 눈에 안보이는 거대한 압력과 부정비리 그리고 검은 돈의 흐름을 막아야 우리 사회가 맑아질 텐데, 눈에 보이는 몇만원짜리 농축수산물 선물세트만 뇌물의 대명사로 확고히 인식돼버렸고요.

 

국가 정책에 의해 희생 강요당하는 농민들

 

심각한 것은 정책에 대한 농업계의 피해의식과 부정적 인식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1990년대의 쌀시장 개방, 2000년대의 본격적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2010년대인 올해의 김영란법 시행 등 중요한 정책이 펼쳐질 때마다 농업계는 희생과 양보를 강요당하고 피해를 감수해 왔던 것입니다. 이러한 정책적 재해에 농민들은 허탈감을 넘어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반 국민이나 언론이 농업계에 딱히 우호적인 것도 아니죠. 도시민의 우리 농산물 구매 충성도는 해가 갈수록 낮아지고, 언론도 사실상 폭락상태인 쌀값은 외면한 채 소비생활에 미치는 가중치가 미미한 배추값이 조금 오른 것 가지고 추석 체감물가 공포 수준이라며 호들갑입니다. 농민들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려는 정책적 대응이 매우 미흡한 가운데, 마치 소비자만 국민인 것처럼 생산자인 농민들은 무시되기 일쑤인 겁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영란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될 경우 우리 농업이 치명적 타격을 받는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지요. 평상시 수입 농산물과의 가격경쟁에서 밀린 국산 농산물은 그나마 우리 것에 대한 정서가 강했던 명절 차례상에마저 올라갈 자리를 잃게 돼 내수가 위축될 것이 뻔합니다. 이는 공급 과잉에 의한 가격 하락을 불러오고, 다시 품목 전환이나 폐업 등에 따른 수급 불안이라는 악순환을 불러오게 되겠죠. 당연히 농가 수입은 불안정해지고, 그간 축적해온 친환경농업과 품질 고급화 등의 역량도 빛을 잃게 될 겁니다.

 

농가 입장 이해하고 피해 최소화 노력해야

 

그러한 조짐은 김영란법이 시행되기도 전인 이번 추석 대목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 백화점 선물세트 중 한우 비중이 크게 줄어든 것은 물론, 선물의 가격과 품질이 전반적으로 하향조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짜 혼란은 김영란법이 발효된 뒤에 맞게 되는 설 대목에 경험하고 농민들의 피해도 본격화될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부는 김영란법 시행 과정에서 문제되는 부분이 확인되면 보완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가장 좋은 것은 문제 자체가 발생하지 않게 하거나 최소화하는 것 아닐까요? 무엇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농축산물 소비 및 수출 촉진 등과 관련해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선제적으로 수립해 적극 추진해야겠죠. 국회도 농축산물 소비 추이를 면밀하게 지켜보면서 필요한 경우 법적 지원 등 신속하게 대응함으로써 농축산업의 충격을 줄여야 합니다.

특히 농업계가 망연자실하고 있어선 안되겠죠. 이런 때일수록 김영란법의 조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소포장 유통이나 크기가 좀 작은 과일의 생산기술 도입 등을 서둘러야 합니다. 도시민들도 김영란법의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환영할 수 없는 농민들의 입장을 좀 이해하면서 수입 농산물보다는 국산 농산물을 사랑해주시고요.

,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