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행복계단

100개의 행복 계단(78) 집에 정원이 있다

몽당연필62 2016. 5. 16. 10:36

100개의 행복 계단(78) 집에 정원이 있다

 

앞쪽 베란다가 화분으로 가득 차서 발걸음을 옮기기 어려울 정도다. 국경일에 태극기라도 내걸려면 화분의 숲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아내가 워낙 화초를 좋아하는 데다 꽃집만 보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니 자연스럽게 베란다가 정원이 된 것이다. 덕분에 거실에 누워서 꽃구경을 할 수 있고, 계절의 변화도 가늠할 수 있다.

 

화분을 관리하는 데에 특별한 기술이나 요령은 없다. 일주일에 한 번, 일요일마다 빠뜨리지 않고 물을 주는 것이 요령이라면 요령이겠다. 물 당번은 내가 맡고 있다. 아내가 정원사로서, 가끔 가지를 쳐주거나 시든 잎을 떼어내며 분갈이도 한다. 좀 시원찮은 녀석이 있으면 꽃집에서 영양제를 사다 화분에 꽂아두면 그만이다.

 

화초를 키워보면 생명의 신비에 감탄할 때가 많다. 만냥금(정확하게는 백량금이라고 한답디다)과 남천은 떨어진 열매를 주워 대충 묻어두었는데, 싹이 잘 터서 열매 맺도록 키운 다음 이웃 사람들에게 나눠줬다. 씨앗을 심어놓고 궁금했던 도토리와 매실도 짱짱하게 솟아올라왔다. 민달팽이는 어디에 숨어 있다가 이른 봄이면 극성스럽게 출몰하는지.

 

가장 환상적인 순간은 그윽한 난향이 풍겨올 때다. 초봄 어떤 날 아침에는 집안 가득한 난향에 잠을 깨기도 했다. 난과 비슷한 시기에 아젤리아가 붉은 꽃잎을 펼쳐냈고, 요즘엔 제라늄이 볼만하다. 그 외에도 많은 꽃들이 피고 지는데, 미안하구나, 너희들의 이름을 다 알지는 못한다. ;;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