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행복계단

100개의 행복 계단(35) 정갈하신 부모님

몽당연필62 2016. 3. 2. 08:13

정갈하신 부모님

 

시골에 살았던 어린 시절,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마당이 늘 깨끗하게 쓸어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이 이슥하도록 담뱃잎을 엮거나 나락 홀태질을 한 탓에 몹시 어수선한 것을 보고 잠든 날도, 다음날 아침이면 지푸라기를 비롯한 허섭스레기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당엔 비질 자국만 선명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새벽에 댑싸리 몽당비를 좌우로 저어 남겼을 그 자국은 어찌나 정갈하던지, 발자국 남기는 것이 다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구차한 살림이었으나 세간은 깔끔했고, 살강의 그릇들은 저마다의 자리에 단정히 놓여 있었으며, 행주로 써도 감쪽같을 걸레로 훔치는 마루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어머니는 보리밭의 건반부리(별꽃의 방언) 한 포기, 아버지는 벼논의 피 한 포기 용납하지 않는 분이셨다. 동네 사람들이 생전의 아버지를 농학박사라 일컫거나 질팽이 모퉁아리 안에서는 농사를 젤 잘 짓는다고 칭송했던 이유가 벼논 깨끗하기로 비할 데가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켰던 것일까, 나는 깔끔하지 못했으며 쓸고 닦고 터는 청소가 싫었다. 결혼 후에는 청소와 빨래 안 하려고 결혼했다며 꺼드럭거려, 걸레질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 치우는 것을 온전히 아내만의 몫으로 미뤄버렸다.

 

지나치게 깔끔떠는 것은 결벽증이며 적당히 게으르게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에두름을, 아내는 쌍수를 들지는 않았지만 반기는 눈치가 역력했다. 베란다가 하나 둘 쌓이는 잡동사니에 점령당하기 시작했고, 주방에서는 쌀자루와 쓰레기봉투가 나란히 키 재기를 했다. 아내는 청소 싫어하는 남편을 빠르게 닮아버렸다. ^^;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