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개의 행복계단

100개의 행복 계단(10) 엄한 선배가 있었다

몽당연필62 2016. 1. 19. 17:50

엄한 선배가 있었다

 

기초가 튼튼해야 한다는 말은 건축공사에만 해당하는 게 아니다. 음악이든 미술이든 글쓰기든 직업과 관련된 기술이든, 처음부터 제대로 배워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터이다.

 

요즘 기자들도 나름대로 기사 작성 훈련을 열심히 할 터이나, 1989년 기자의 길로 들어선 나는 선배 기자로부터 그야말로 혹독한 수업을 했다. 내가 애써 기사를 작성한 원고지는 선배의 빨간색 볼펜 가필로 순식간에 '딸기밭'이 됐고, 글깨나 쓴다고 건방을 떨며 신문사에 왔던 자신감은 모래알처럼 부서져 흩어졌다.

 

그러나 그 선배 기자와 수련 과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게 되지 않았겠는가. 27년 동안의 기자생활은 결코 우연히 얻어진 것이 아니다. 내 작은 실수까지도 용납하지 않았던 선배 기자의 담금질의 결과물인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배 기자가 가필해준 원고지를 지금까지도 보배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지금 기자들은 기사를 노트북 등에서 작성해 송고하니 원고지 자체가 없다).

 

며칠 전 수습기자 몇 명이 입사했다. 누군가는 악역을 맡아서, 그들이 머지않아 당신을 뛰어넘는 훌륭한 기사를 쓰고 말리라하는 생각을 하도록 혹독하게 가르쳐야 하리라. 나도 후배 기자들에게 인자한 선배가 아닌 엄한 선배가 되고 싶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