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감을 따며

몽당연필62 2015. 11. 5. 13:44

 

 

감을 따며

 
똑,
아버지께서 만들어 두신 간짓대로 감을 딴다.
간짓대 끝 벌린 틈에 감 달린 가지를 넣고 돌리면
때로는 홍시 같이 달착지근한 추억이 내려오고
또 때로는 생감 숭어리 같은 떠러운 기억도 푸지게 따라온다.
 
실은 근년에 감 따는 아버지 모습을 보지 못했다.
서울 아파트에서 택배로 감 박스를 받아보며
양이 많네 적네 상품성이 있네 없네 했을 뿐
자식들 먹일 것에 약 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을
지극한 사랑도 헤아리지 못했다.
 
똑,
똑,
이제 머리 허연 아들들이 모여 서툰 간짓대질을 한다.
그러면서 저마다 아는 체 한다.
감나무는 가지를 분질러 줘야 해거리를 안 한다고,
까치 먹을 것 두어 개는 꼭 남겨둬야 한다고.
 
아, 그런데 문득 알겠다.
까치밥은,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이제는 홀로 지내실 우리 어머니도
꼬꿉쟁이가 아니라는 증표가 되는 것임을….
 
/몽당연필/

* 숭어리=열매나 꽃 따위가 굵게 모여 달린 덩어리
* 떠러운=떫은
* 푸지게=흡족하게 많이
* 꼬꿉쟁이=인색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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