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음성, ‘눈의 고장’으로 떠난 겨울 여행

몽당연필62 2013. 1. 8. 07:30

음성, ‘눈의 고장으로 떠난 겨울 여행

 

중부지방에 폭설이 내리고 며칠이 지나 충북 음성군을 찾았다. 출발 전 군청에 전화를 해보니 도로의 눈은 다 치워졌고 폭설 이후 추가로 내린 눈도 없어 차량 통행에 문제가 없다고 했다. 그런데 웬걸, 음성에 도착하니 온 산야가 눈에 그대로 덮여 있었고, 마을에는 길은 길이되 승용차가 아직 다닐 수 없는 길이 도처에 있었다. 음성은 인근 지역보다 눈이 많이 오는 편이라더니, 옛 이름이 다름 아닌 눈의 고장설성(雪城)이었다.

 

 

큰바위얼굴 조각공원

음성(陰城)군은 27면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졌으며 면적이 520.5이다.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전국적으로 이름난 산은 없지만 가섭산·부용산·수리산·수레의산·원통산·오갑산 등 500~700m 높이의 산들이 있다. 또 한강과 금강의 수계에 걸쳐 있어 수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낚시꾼들로 붐비는 저수지도 많다. 농촌지역으로 특이한 점은, 대부분의 다른 지역이 인구 감소로 고심하고 있는 것에 반해 음성은 19907만 명을 조금 넘던 인구가 공단 유치 등에 힘입어 최근 10만 명 가까이로 늘었다는 것이다.

 

일본 왕자 탄신기념비 깎아버리고 독립기념비 새겨 분풀이

음성 여행은 마치 끝없이 펼쳐진 설원을 달리는 기분이었다. 큰길은 제설이 되었지만, 들녘에는 열흘 전의 폭설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음성이 인근 지역보다 눈이 많이 오는 편이고 예전에 설성(雪城)이라 불리기도 했다더니, 말 그대로 눈의 고장에 온 느낌이었다. 설성은 문헌의 기록으로 보아 원래 음성의 읍호(邑號)였던 모양인데, 이 이름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으니 음성읍 읍내리의 설성공원도 그런 경우이다.

 

설성공원

설성공원은 음성군민들의 쉼터로서, 5000(1500) 넓이의 연못과 함께 조성되었다. 연못 가운데에는 660(200)쯤 되는 섬이 있으며, 섬에는 1934년에 건립된 정자 경호정과 고려 중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 독립기념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광복 직후인 1945년 음력 89일 세워진 독립기념비에는 음성 사람들의 분노와 염원이 담겨 있다. 이 비석은 원래 1934년 세워진 일본 아키히토 왕자 탄신기념비였는데, 광복이 되자 주민들이 지난날의 억울함을 달래는 것은 물론 두고두고 일제를 조롱하고자 비문을 완전히 깎아버리고 새로 태극 문양과 함께 독립기념비라는 문구를 새겼다는 것이다.

연못 주위에서는 음성군유래비와 이무영선생문학비, 5층모전석탑 등도 살펴볼 수 있다. 음성군유래비에 따르면 음성이라는 지명은 통일신라 경덕왕 16(757)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또 이무영선생문학비는 음성 출신 소설가인 이무영(1908~1960)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것으로, 일제 때 1과 제1’ ‘흙의 노예등 농촌을 제재로 한 작품들을 남겼던 이무영은 비록 친일 행적에 대한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한국 농민문학의 선구자로 꼽힌다. 고려 전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5층모전석탑 옆에는 향토민속자료전시관도 세워져 있다. 설성공원에는 이밖에도 품바축제가 열리는 야외음악당과 체육시설인 게이트볼 경기장 등이 마련되어 있다.

한편 생극면 관성리에는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을 비롯한 세계 185개 나라의 위인과 스포츠 및 연예 스타, 유명 조형물 등의 석상을 전시한 큰바위얼굴 조각공원이 있다. 이 조각공원은 공원 안에 있는 현대정신병원 정근희 이사장이 1991년부터 14년 동안의 작업 끝에 조성한 것으로 면적이 무려 55(17만 평)에 이른다. 전시된 석상도 고대부터 최근까지 세계 역사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거나 문화를 발전시킨 인물을 비롯해 무려 3000여 점이나 되어 공원 조성에 바친 열정과 규모에 놀라게 된다.

 

고추 먹고 맴맴동요학교와 아담하지만 의미 있는 박물관들

삼성면 용성리의 운곡서원은 주자와 조선 중기 학자 정구(1543~1620)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아담하고 소박한 서원이다. 이 서원은 조선 선조 35(1602)에 충주목사 정구가 이미 있던 백운서당에 주자를 모시면서 백운서원으로 출발하였으며, 현종 2(1661) 정구를 배향하면서 운곡서원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경학(經學) 등 여러 분야에 통달했지만 벼슬보다 후학 양성에 더 큰 뜻을 두었던 정구는, 조선 초기 성리학자로서 조광조에게 학문을 전수한 김굉필의 외증손이다.

 

동요학교

음성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음성 청결고추의 명성도 익히 알 것이다. 그런데 음성은 이 고추의 명성과 동요 고추 먹고 맴맴을 연결하여 시너지 효과를 도모하고 있다. 생극면이 고추 먹고 맴맴발상지라며 생2리에 있는 옛 오생초등학교를 동요학교로 만들어 2006년 개교한 것이다. 동요학교에서는 어린이들이 동요를 통해 전통문화의 우수성과 조상의 슬기를 배우도록 교육하는데, 이를 위해 유기농 먹을거리와 전래 놀이 및 전통 생활용품 등의 체험장도 갖추었다. 마을 진입로와 학교 울타리 등에 커다란 악보가 설치된 것도 이색적이다.

복숭아 주산지인 감곡면에도 볼거리가 적지 않은데, 특히 이 지역은 비록 소규모이지만 박물관이 3개나 있어 관심을 끈다.

 

감곡성당(정면 건물)과 매괴박물관(오른쪽 건물)

천주교 신자라면 먼저 들를 만한 곳이 감곡성당에 있는 매괴박물관일 것이다(‘매괴는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묵주의 옛 말이다). 매괴박물관에는 충북유형문화재인 예수성심기와 성모성심기 등 천주교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으며, 감곡성당 자체도 1896년 충북에서 최초로 설립된 성당이라는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감곡성당 터는 원래 명성황후의 6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 있던 곳으로, 명성황후는 1882년 임오군란 때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했다.

2000년 개관한 오향리의 철박물관은 우리 조상들이 실제로 사용했던 고대 철기부터 현대 제강산업의 주요 생산품까지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곳. 2005년 개관하고 최근 재단장한 오궁리의 사설 유물전시관인 음성기록역사관은 고서적과 고문서 및 시대별 유물 등 1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잔의 차와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음성기록역사관이 있는 도로변에는 전통 생활용품과 공예품 등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향토·민속문화거리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박물관 이야기가 나왔으니 대소면 대풍리 한독의약박물관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한독의약박물관은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한독약품이 회사 창립 10주년 기념으로 1964년 서울에 설립했으며 1995년 음성으로 이전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박물관이자 전문박물관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 박물관은 의약기구와 의서 등 1만여 점의 사료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는 청자상감 상약국명합(보물 제646) 등 보물도 6점이나 된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배출인간에 대한 사랑 넘치는 꽃동네

음성읍 소여리에는 감우재전승비와 감우재전승기념관 등이 세워진 무극전적관광지가 있다. 무극전적관광지는 육이오전쟁 때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이 최초로 승전했던 감우재전투를 기념하여 1986년 조성한 것. 국군은 이 일대에서 195074일부터 10일까지 벌어진 4차례의 전투에서 북한군 2700여 명을 사살했는데 국군 전사자는 71명뿐이었을 정도로 혁혁한 전과였다. 감우재전투는 당시 최초의 승전으로서 국군과 국민에게 자신감을 주었고 급박했던 상황에서 북한군의 남하를 지연시킴으로써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여유를 제공했다는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무극전적관광지에는 전승비와 기념관 외에 애국선열 충혼탑, 월남참전기념탑, 지난 2000년에 매설했고 500년 뒤에 개봉할 음성군 타임캡슐 등이 있다.

 

무극전적관광지의 전승비

몇 년 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음성군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받은 적이 있었다. 2006년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이 제8대 유엔 사무총장에 선출되었을 때와 2008년 반 총장이 고향을 방문했을 때다. 반기문 총장은 1944년 원남면 상당1리 행치마을에서 태어났다. 반 총장은 유엔 사무총장 신분으로 고향을 방문했을 때 문중 사당에서 숭모제를 지낸 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는 글귀를 한지에 써서 군수에게 전달하며 농업·농촌과 고향마을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행치마을에는 반기문 총장 생가와 기념관 등 유역이 정비돼 있다.

 

광주 반씨(光州 潘氏) 장절공 행치파 족보

음성은 또 무의탁자들을 거둬 사랑을 베푸는 꽃동네가 있는 곳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맹동면 인곡리의 꽃동네는 천주교 오웅진 신부가 1973년 주머니 돈 1300원으로 시작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구제하고 보살피며 장례까지 치러주는 사랑과 구원의 공동체로 발전했다. ‘길가에서 다리 밑에서 의지할 곳 없고 얻어먹을 수 있는 힘조차 없는 분을 보시면 인도해달라는 꽃동네는 인간에 대한 사랑의 깊이를 함부로 가늠할 수 없게 하면서 복지 관련 학교와 연수원, 수도회 등 관련 기관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심당짚공예연구소

음성에서의 마지막 행선지는 맹동면 쌍정리에 있는 심당짚공예연구소로 잡았다. 전통 짚공예 기능전승자인 심당 강태생 선생(1925년생)이 운영하는 심당짚공예연구소에서는 오랜 농경문화 속에서 우리 조상들이 짚을 이용해 생활했던 모습을 들여다보며 잠시나마 어릴 적 추억에 잠길 수 있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어쩌면 수천 년 이상, 짚으로 새끼를 꼬고 가마니와 멍석을 짜고 지붕을 이며 온갖 그릇들을 만들어 썼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짚을 이용해 만드는 물건이 이렇게 다양해서가 아니라, ‘짚 한 짐이 하루 품삯일 만큼 짚의 가치가 컸던 때가 불과 수십 년 전이어서였다.

음성 여행은 눈 때문에 적잖이 고생을 했다. 생극면 방축리 능안마을의 권근 3대묘소, 소이면 비산리의 미타사와 마애여래입상, 음성읍 용산리 가섭산 자락에 위치한 정크아트갤러리 등은 의미가 있는 여행지임에도 길이 막혀서 또는 지레 겁을 먹고 포기한 아쉬움도 있다.

 

'눈의 고장' 음성의 설원으로 지는 해

그런데 어쩌면 이들 여행지도 머지않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음성에서는 지역축제가 다양하게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4월에는 품바축제·반기문마라톤대회가, 8월 복숭아 익을 무렵에는 햇사레감곡복숭아축제가, 9월에는 음성청결고추축제 등이 포함된 설성문화제가 열린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