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파주, 한강과 임진강 합쳐지듯 언젠가는 통일이…

몽당연필62 2012. 3. 22. 11:07

파주, 한강과 임진강 합쳐지듯 언젠가는 통일이

 

남녘땅을 적시며 흘러온 한강과 북녘땅을 감돌아온 임진강은 서해바다로 잠겨들기 직전 파주에서 만나 하나로 어우러진다. 남북을 따로 흘러온 두 강이 마침내 하나로 합쳐지는 모습은, 남북 분단의 생생한 현장이면서 남북 화해의 분위기가 가장 먼저 느껴지기도 하는 땅 파주를 상징하는 것 같다. 지금 한강과 임진강에 흐르는 것은 차디찬 강물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질 통일의 기운인지도 모른다. 

 

임진각 위에서 바라본 자유의 다리와 임진강철교 일대 모습. 민통선 너머 남방한계선에 인접한 도라산역까지 운행되는 경의선 열차가 임진강철교를 건너 돌아오고 있다.

 

경기 파주(坡州)시는 672의 면적에 592동의 행정구역이 있고, 주민은 약 36만 명이다. 파주를 돌아다녀보면 도시 전체에 매우 활력이 넘치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울에서 가까운 입지 덕분에 신도시와 도로가 개발되고 각종 문화마을도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주는 두 얼굴을 지니고 있어서, 항상 군사적 긴장감도 느껴지는 곳이다. 군사분계선과 민간인출입통제선 등 군사시설이 있어 군인들이 눈에 자주 띄고, 일부 지역에서는 북한 땅이 바라보이기도 한다. 때문에 파주는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들이 찾아와서 부모형제를 그리다 돌아가는 가슴 아픈 고장이기도 하다.

 

전쟁의 상처 간직한 최전방에서, 평화가 싹트는 화해의 무대로

파주에 대해 생각할 때 먼저 떠오르는 말로 자유’ ‘평화’ ‘통일’ ‘실향민등을 들 수 있다. 서울에서 한강변을 따라 놓인 자유로를 타고 문산 방향으로 달리다 탄현면 성동리에 이르면 통일동산이라 불리는 야산이 나온다. 정확한 이름이 오두산인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 하류가 만나는 곳에 자리해 삼국시대에도 군사적 요충지였고, 빼앗으려는 고구려와 지키려는 백제의 다툼이 잦았다고 한다.

해발 118m인 통일동산 정상에는 오두산통일전망대(↑)가 세워져 있는데 한강과 임진강 하류, 김포와 강화도, 임진강 건너 북한 땅 일부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 안에는 북한 관련 전시실과 판매장도 마련되어 있다. 국토 분단의 아픔을 실감할 수 있는 오두산통일전망대는 북녘에 고향과 피붙이를 두고 온 실향민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찾아와 평화를 기원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명소인 것이다.

분단 상황은 임진각관광지에서 더욱 극명하게 느껴진다. 문산읍 마정리 일대에 조성된 임진각관광지는 1950년 발발했던 한국전쟁과 남북 분단의 뼈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통일관광지이다. 이곳에는 1953년 전쟁포로 석방 당시 12773명이 남으로 귀환하며 건넜다고 하여 명명된 자유의 다리와, 무려 21t이나 되는 육중한 무게로 평화와 통일의 염원을 담아 울리는 평화의 종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임진각관광지에는 한국전쟁 당시 장단역에서 폭격을 당해 탈선한 후 반세기가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돼 있었던 증기기관차(↑)가 전시되어 있고, 명절이면 실향민들이 북녘을 향해 차례를 지내는 망배단과 1983년 이산가족 찾기 생방송 때 설운도가 불러 온 국민의 가슴을 적셨던 노래 잃어버린 삼십년의 가사를 새긴 망향의 노래비(↓)도 세워져 있다. 자유의 다리 남단 입구 철조망에는 두고 온 피붙이와 고향을 그리며 통일을 고대하는 마음을 담은 무수한 리본들이 바람에 나부끼며 비극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임진각관광지가 과거 전쟁의 아픔만을 간직한 비극의 무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팽팽하게 느껴지는 긴장감만큼이나 통일의 기운 역시 이곳으로부터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임진각관광지에는 2005년 평화누리라는 커다란 공원이 새로 조성되었다. 기존 시설과 공간들이 전쟁과 이념이라는 테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에 비해, 평화누리는 탈냉전과 화해의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공간으로서 넓은 잔디밭과 조형미술 작품, 노천극장 등이 있어 젊은이들이 공연장 등으로 활용하며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누리고 있다.

임진각관광지에서는 또 민통선 너머에 있는 도라산역과 도라산전망대, 통일촌, 3땅굴 등을 둘러보는 관광 프로그램도 운영되고 있다. 특히 도라산역은 한반도 분단의 상징적 장소이면서 남북교류의 관문이라는 의미를 함께 지니고 있으니, 이곳이야말로 분단이 끝나고 통일이 시작되는 지점이라 하겠다.

 

갈매기 벗삼은 황희의 반구정, 임진강 밝힌 율곡의 화석정

파주는 전쟁 관련 시설과 기념물뿐만 아니라 인물 및 역사 관련 유적도 많은 고장이다. 파주와 관련이 있는 인물로는 조선 초기의 명재상 황희 정승과 중기의 이율곡, 고려 때의 윤관 장군 등이 꼽힌다.

유유히 흐르던 임진강이 한강과 만날 준비를 하느라 흐름을 늦추는 문산읍 사목리에는 조선왕조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재상이자 청백리의 전형으로 꼽히는 황희 정승(1363~1452)의 유적지가 있으니, 반구정과 황희 선생 영당이 그것이다. 임진강변 기암 위에 세워진 반구정(↑)은 황희 정승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여생을 보냈다는 곳으로, ‘갈매기와 벗삼는 정자(伴鷗亭)’라는 의미를 지녔다. 반구정에 오르면 눈앞에 임진강이 흐르고 펼쳐지고, 어디선가는 갈매기 울음소리도 들려온다. 한편 영당은 황희 정승의 후손들이 영정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성리학의 대가이며 위대한 경세가인 율곡 이이(1536~1584)는 신사임당의 아들로서 외가인 강릉에서 태어났지만 본가가 바로 파주에 있었다. 법원읍 동문리의 자운서원(↑)은 광해군 때인 1615년 지방 유림들이 율곡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으며, 이곳에는 그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도 세워져 있다.

파평면 율곡리 임진강변 벼랑 위에서 강을 굽어보고 있는 화석정(↑)도 이율곡과 관련이 있다. 율곡은 이곳에서 제자들과 시를 짓고 학문을 논했는데, 야사에 따르면 율곡은 머지않아 왜적이 쳐들어와 임금이 북쪽으로 몽진하게 될 것을 알고는 주위 사람들에게 정자가 언제든지 불에 잘 탈 수 있게 기름을 잔뜩 먹여두라고 일렀다. 그가 죽고 8년 뒤 과연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는 피란길에 올랐는데, 캄캄한 밤에 임진강에 이르렀지만 어둠과 폭풍우 때문에 강을 건널 수가 없었다. 이때 화석정에 기름을 먹여두라고 했던 율곡의 말을 기억한 사람들이 정자에 불을 놓자 사방이 대낮같이 환해졌고, 선조는 무사히 강을 건너 의주까지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광탄면 분수리에는 고려 예종 때 여진족 정벌에 큰 공을 세운 윤관 장군(?~1111)의 묘가 있다. 윤관은 원래 문신이었지만 별무반을 편성해 여진의 날랜 기병을 물리치고 동북지방에 9성을 쌓았으며 여진으로부터 조공을 바치겠다는 약조를 받아냈던 인물이다.

한편 조리읍 봉일천리에는 파주삼릉이라 불리는 세 능이 있으니 공릉·순릉·영릉이 그것이다. 공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 한씨, 순릉은 조선 9대 성종의 원비이며 장순왕후의 동생인 공혜왕후 한씨, 영릉(↑)은 조선 21대 영조의 맏아들인 효장세자(훗날 진종으로 추존)와 그 비인 효순왕후 조씨의 무덤이다. 특이한 것은 공릉과 순릉의 주인인 장순왕후와 공혜왕후가 모두 수양대군(조선 7대 세조)의 심복참모였던 상당군 한명회의 딸이라는 점이다.

광탄면 용미리에 우리나라 최대의 쌍미륵 석불입상이 있다는 이야기를 오래 전부터 들었던 터라 파주에 온 김에 들러보기로 하였다. 높이가 무려 17m나 되는 석불은 큰길에서 멀지 않은 용암사 경내에 있어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쌍미륵 석불, 즉 보물 제93호인 용미리 석불입상(↑)은 고려 때 제작된 것으로서 천연 바위벽을 몸체로 삼고 그 위에 목, 얼굴, 갓 등을 따로 만들어 얹은 특이한 불상이다. 왼쪽 둥근 갓의 불상이 남상(男像)이고 오른쪽 네모난 갓의 불상이 여상(女像)이라는데, 고려 13대 선종이 이 불상들을 새기고 불공을 드렸더니 왕자를 얻게 되었다고 전한다.

 

민속생활사 박물관에서 영어마을까지 삶의 다양한 공간들

파주는 어찌 보면 전통과 현대가 고루, 그리고 가장 이상적으로 분배되어 있는 고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접적지역이면서도 서울과 가깝다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결과일 것이다. 때문에 파주에는 군사적인 이유로 개발에 제한이 가해지는 지역도 많고, 영어마을이나 예술마을이 조성되어 있기도 하다.

이러한 파주의 특성은 20여 개의 크고 작은 박물관들이 잘 말해주고 있다. 법원읍 법원리의 두루뫼박물관(↑)이 전통과 민속에 관한 박물관이라면, 탄현면 헤이리의 씨네팰리스는 오리지널 영화 포스터를 전시하는 현대물 박물관이라 할 수 있겠다. 모든 시설을 영어권 국가 마을의 모습을 본떠 만들었기 때문에 이국적인 느낌이 강하게 풍겨오는 탄현면 법흥리의 파주영어마을(↓), 400여 명의 예술가들이 활동하며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꿈꾸는 통일동산 인근의 헤이리 문화예술마을(‘헤이리는 파주지역 농요인 금산리 민요의 후렴구에서 딴 순수 우리말이라고 한다), 출판문화의 메카로서 책을 테마로 한 다양한 문화공연과 전시회가 열리는 교하읍 문발리의 파주출판도시 등도 파주를 돋보이게 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한편 파주의 특산물로는 민통선 지역의 깨끗한 토양에서 재배되는 장단콩, 감악산 기슭에서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머루로 만든 머루주, 임진강에서 잡은 참게로 담근 참게장 등이 꼽힌다. 임진강 황복도 예부터 파주의 별미로 꼽혀 왔는데, 복이 주로 봄철에 잡히고 가격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맛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