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달성, 낙동강과 비슬산이 조화 이룬 대구의 허파

몽당연필62 2012. 5. 17. 13:34

달성, 낙동강과 비슬산이 조화 이룬 대구의 허파

 

달성(達城)군은 대구광역시 소속으로, 대구의 남쪽을 지탱하며 서쪽을 보강하는 형국이다. 서쪽에 낙동강이 굽이지며 유유히 흐르고, 남쪽에는 비슬산이 우뚝 솟아 골골이 비경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다. 달성군은 또 대도시인 대구 시민들에게 품질 좋은 농산물과 편안한 휴식을 제공하는 지역으로서, 사람으로 치면 대구의 허파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고장이기도 하다.

영남의 젖줄 낙동강(왼쪽 물줄기)은 달성에 이르러 대구 시내를 가로지르며 흘러온 금호강(오른쪽 물줄기)을 받아들인다. 화원읍 화원동산에서 바라본 모습.

 

달성군은 한 덩어리가 아닌 두 개의 덩어리로 이뤄졌다

달성으로 출발하기 전에 지도를 찾아보니 재미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 하나의 구역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두 개의 덩어리로 나뉘어 있다. 군청이 있는 논공읍을 비롯한 달성 땅의 대부분이 대구의 남쪽에 있지만, 다사읍과 하빈면은 대구의 서쪽에 따로 섬처럼 떨어져 있는 것이다. 달성은 행정구역이 경상북도에 속해 있었으나 1995년에 대구에 편입되었으며 현재 427의 면적에 36면을 관할하고 있다. 주민 수는 약 18만 명이다.

달성에 이르러 남쪽 끝에서 여행을 시작하기로 하고, 맨 먼저 구지면 대암리에 있는 곽망우당 묘소를 찾았다. 망우당(忘憂堂)홍의장군으로 잘 알려진 곽재우의 호가 아니던가. 곽재우 장군은 1552년 경남 의령에서 태어났으며 41세이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관군이 패하자 의병을 일으켜 붉은 옷을 입고 맹활약했다. 성주목사와 경상좌도방어사 등을 지내고 왜란이 끝난 뒤 낙동강변에 망우당을 짓고 유유자적하던 장군은 1617년 창녕에서 66세로 생애를 마쳤다고 한다.

곽망우당 묘소가 있는 곳은 주차장까지 잘 갖춰진 현풍 곽씨들의 묘원인 듯한데, 여러 기의 무덤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안내판도 보이지 않아 어느 무덤이 곽망우당의 것인지 대번에 찾을 수가 없다. 무덤 앞에 세워진 묘비를 하나하나 확인하니 묘원 중간쯤에 장군의 묘소가 있다. 그런데 잘 치장하여 관리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장군의 묘소는 묘비 외에는 석물도 없고 봉분 역시 평범하다 못해 거의 평탄한 지경이다(↑). 바로 이것이 바람 앞의 등불과 같았던 나라를 지키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던 의인(義人)의 진정한 풍모인가, 괜스럽게 짠해지는 마음을 억누르기 힘들다.

구지면 북서쪽 도동리에는 성리학자 김굉필 선생(1454~1504)을 기리기 위해 세운 도동서원(↑)이 있다. 한훤당 김굉필은 김종직 문하에서 수학하고 조광조에게 학문을 전수하는 등 조선 성리학의 정통을 계승한 인물이다. 도동서원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없애지 않고 남겨둔 전국 47개 주요 서원 가운데 하나인데, 처음에는 비슬산 기슭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버리고 1605년 현재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도동서원은 암키와와 수막새를 엇갈리게 끼워 장식한 토담이 강당·사당과 함께 보물로 지정(350)되었을 만큼 보기 드문 걸작으로 꼽힌다. 서원 앞에는 1607년 선조임금의 도동서원 사액(賜額)을 기념해 심었다는 은행나무 한 그루가 서 있고 지척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이 바라보여 운치를 더한다.

도동서원에서 굽이진 낙동강을 끼고 동쪽으로 방향을 잡아 고개를 넘으니 현풍면이다. 현풍은 신라 때부터 현풍군으로 존속했을 만큼 유서가 깊은 고장이다. 현풍(玄風) 곽씨의 관향이자 세거지로서 현풍 곽씨 십이정려각, 이양서원, 현풍향교 대성전, 현풍 포교당 등의 문화재가 있다.

특히 상리에는 보물 제673호로 영조 6(1730)에 만든 현풍 석빙고(↑)가 있어 눈길을 끈다. 당시 고을마다 얼음 저장고를 설치한 것은 아니었을 터인데 현풍에는 석빙고가 있었으니, 이 고장이 비록 지금은 평범한 시골이지만 예전에는 상당한 영화를 누렸을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석빙고는 길이 9m, 너비 5m, 높이 6m이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풍광이 아름답고 곳곳에 문화재 간직한 비슬산

현풍에서 비슬산으로 향하는 길, 유가면 양리 비슬산 순환도로 옆에 비행기 형상의 유치곤 장군 호국기념관(↓)이 보인다. 기념관 안에는 비행기 조종석 모형이 설치되었고 우리 공군의 역사 등에 관한 자료도 전시되어 있다. 또 야외에는 유치곤 장군 동상, 퇴역한 전투기들, 빨간 마후라 노래비 등이 관람객들의 발길을 붙든다.

유치곤 장군은 유가면 출신으로 6·25전쟁 중에 무려 203회나 출격했고, 전투비행 2700여 시간이라는 신화적인 기록을 남겼으며, 1964년 개봉한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비슬산(↓ 달성군청 제공)은 달성군과 경북 청도군의 경계를 이루는데 높이가 1084m(대견봉)이며 군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다. 산 정상의 바위가 신선이 거문고를 타는 모습을 닮아 비슬(琵瑟)’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멀리 낙동강 물굽이가 바라보이고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 가을이면 억새 군락이 볼 만하다. 유가사 쪽에서 올려다보면 정상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 능선도 장관이다.

거대한 바위 능선과 암괴, 숲과 계곡, 사철 느낌이 달라지는 풍광 등으로 그 자체가 아름다운 비슬산은, 곳곳에 유가사와 용연사를 비롯한 사찰과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어 더욱 소중한 산이기도 하다. 특히 옥포면 반송리 용연사(↓)는 신라 신덕왕 1(912)에 창건된 사찰인데, 적멸보궁 뒤편에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모셔온 석가세존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석조계단이 조성되어 있다.

비슬산은 또 자연휴양림과 함께 용연사계곡, 정대계곡, 굿밧골계곡 등을 곳곳에 숨겨놓고 있기도 하다. 이 가운데 가창면 정대리의 정대계곡은 가창댐에서 비슬산 바로 아래까지 약 16정도 뻗어있는 심산유곡인데, 물이 맑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골짜기 좌우로 커다란 화강암 바위가 우뚝우뚝 솟아있으며 팽나무·느티나무·소나무 등이 꽉 들어차 있어 여름철 휴양지로 각광받는다.

 

달성의 젖줄, 영남의 생명수, 낙동강은 흐른다

비슬산을 보았는데 어찌 낙동강을 제대로 보지 않을쏜가. 지나온 길에 낙동강 물굽이를 못 보았던 것은 아니나, 화원읍 화원유원지에 가면 낙동강과 금호강이 합류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니 저절로 발길이 서둘러진다.

그래도 가는 길에 잠시 마음을 누르며 화원읍 본리리에 있는 남평문씨 세거지에 들렀다. 남평문씨 세거지는 문익점 선생의 후손들이 터를 닦은 마을로, 조선 말기의 전통 한옥들과 정자가 있는 곳이다. 대개의 마을들이 자연 지형에 따라 형성된 것과 달리 이곳은 구획을 정리하고 집터와 도로를 반듯하게 닦은 후 집을 지어 고풍스러우면서도 정갈한 느낌을 준다.

이윽고 화원읍 성산리에 있는 화원유원지에 이르렀다. 유원지는 수영장과 산책로를 비롯한 휴양시설이 잘 정비되어 있어 평일인데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과 가족 등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유원지에서 가장 높은 화원동산 정상에 세워진 전망대에 오르자 마침내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달성의 서쪽 경계를 이루면서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은 다사읍에서 대구를 가로질러 흘러온 금호강을 받아들이며 몸을 섞는다. 마치 농촌과 도시가 하나가 되는 듯하다. 낙동강 유역은 너른 충적평야로서, 강 건너 고령 땅의 대규모 비닐하우스 단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물론 달성도 화원읍과 논공읍 등은 들이 넓어 벼농사와 함께 참외 등 원예농업이 발달했다. 낙동강은 달성의 젖줄, 나아가 영남의 생명수인 것이다.

새벽 일찍 서울에서 출발한 강행군에 제법 피로가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몸은 논공읍 하리에 있는 약산온천에서 쉬어가기를 원하는데 마음이 길을 재촉한다. 마지막 행선지인 육신사(六臣祠)로 가려면 대구 시내를 거쳐 하빈면 묘리로 가야 한다. 다사읍과 하빈면은 이제까지 둘러본 곳들과 따로 떨어진 덩어리로, 섬 아닌 섬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육신사(↑)는 말 그대로 조선 세조 때의 사육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처음에는 박팽년 선생만을 모셨는데, 박계창이라는 후손이 제삿날 사육신이 함께 사당 문 밖에서 서성거리는 꿈을 꾸고는 함께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육신사 바로 곁에는 박팽년의 손자 박일산이 1479년 처음 건립하고 1614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은 태고정이 남아 있다. 태고정은 조선 전기의 건축 특색을 지녀 보물 제554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육신사를 나서니 어느덧 해가 서산으로 기울고 있다. 여유가 있다면 가창면에 있는 녹동서원과 남지장사도 둘러보면 좋으련만 길이 너무나 멀다. 녹동서원은 임진왜란 때 귀화한 일본인 김충선을 모신 서원이고, 남지장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와 승병들이 훈련기지로 사용했던 사찰이라고 한다. 언젠가는 이곳도 둘러볼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