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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산과 들과 바다가 조화 이룬 전북의 미래

몽당연필62 2012. 3. 21. 13:47

부안, 산과 들과 바다가 조화 이룬 전북의 미래

 

전북 부안군은 전국에 이름이 제법 알려진 고장이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변산반도 일대의 풍광이 빼어나거니와 한때 대규모 간척사업의 상징이었던 계화간척지, 위도 여객선 침몰사고, 방사능폐기물처리장 관련 주민 갈등, 개발과 환경보전의 접점에서 아직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는 새만금방조제 등으로 꾸준히 언론에 오르내렸기 때문이다. 산과 들과 바다가 어우러진 데다 인간과 자연의 조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아는 고장이기에 부안은 곧 전라북도의 발전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북 부안군은 493의 면적에 112면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졌으며 인구는 약 6만 명이다. 바다를 향해 돌출한 서쪽 변산반도가 고지대를 이루고, 동쪽은 너른 평야지대로서 곡창을 이룬다.

서해안고속도로 부안IC에서 부안읍으로 빠져 곧장 신석정 고택(↓)부터 둘러보았다. 신석정(1907~1974)은 부안읍 출생이며, 시문학 동인 및 전원(田園)시인으로 우리나라 서정시의 큰 맥을 이루었다. 그는 선은리에 청구원(靑丘苑)이라는 초가를 마련해 주옥같은 전원시들을 썼고, 이를 촛불’ ‘슬픈 목가등의 작품집으로 묶어냈다. 청구원은 단출한 모습으로 서서 비에 젖은 채 방문객을 맞고 있었다.

부안은 또 한 사람의 문인과 관련이 있는 고장이다. 부안읍내에는 매창공원이 있는데, 이 공원은 조선 선조 때의 여류시인 이매창(1573~1610)을 기리기 위한 곳이다. 이매창은 황진이에 필적할 만한 시인이자 기생으로, ‘이화우(梨花雨) 흩날릴제등 수십 편의 한시를 남겼으며 허균을 비롯한 당대의 문인들과 사귀었다고 한다. 이매창의 시들은 신석정에 의해 번역되어 빛을 보게 되었으니, 두 사람은 시대를 뛰어넘어 부안을 대표하는 문인이라 할 것이다.

 

대규모 간척사업을 보는 시대적 차이, 계화간척지와 새만금

아마 많은 사람들이 1980년대를 전후하여 계화미(界火米)라고 하는 쌀을 맛보았거나, 아니면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1968년 동진강 하구와 계화도 등을 잇는 13의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이 지역에는 2500의 간척지 논이 생겨났는데, 여기서 생산된 품질 좋은 쌀이 바로 계화미인 것이다. 부안읍을 지나 계화도로 이어진 들녘(↓)은 야산 하나 없는 평야이며, 계화도도 지금은 당연히 섬이 아니다.

 

이곳 계화방조제와 간척지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새만금방조제가 시작되는데, 배고팠던 시절 국민적인 지지와 기대 속에 조성된 계화간척지와 달리 먹고 살 만한 지금의 새만금은 찬반 논란과 함께 개발 방향에 혼선이 빚어지고 있으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새만금은 변산면 대항리와 군산시 비응도를 잇는 방조제 길이가 33에 이르고, 2020년까지 내부 개발이 완료되면 여의도 면적의 140배인 무려 4의 국토가 만들어진다. ‘새만금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최대의 곡창지대인 만경평야와 김제평야를 합친 만큼의 면적이 새롭게 생긴다고 하여 만경평야의 자와 김제평야의 쇠 자를 따서 만든 것이다.

새만금이 어떻게 개발되느냐에 따라 부안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고 나아가 전라북도의 발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터이니, 새만금과 부안 그리고 전북의 미래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가 없다. 변산면 대항리에 있는 새만금전시관(↓)에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간척사업으로 꼽히는 새만금종합개발사업에 대한 내용을 자세하게 알 수 있다.

 

새만금방조제로부터 남쪽은 변산반도국립공원에 속한다. 내륙에는 부안호를 중심으로 의상봉·쌍선봉·망포대·신선봉·관음봉·옥녀봉 등 400~500m급 산들이 솟았고, 해안에는 일주도로를 따라 여러 해수욕장과 적벽강·채석강 등 바닷가 절경이 이어진다. 또 격포·모항·곰소항·줄포 등 아담한 항구와 어촌들도 자리를 잡았다.

 

바다와 산이 빚은 변산반도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광

특히 변산해수욕장(↓)은 새만금방조제와 지척인데, 1930년대에 개장한 유서 깊은 해수욕장으로 모래가 부드럽고 수온이 알맞으며 경사가 완만해 가족단위 피서지로 적합하다. 또 많은 해수욕장들이 송림을 끼고 있는 것과 달리 변산해수욕장은 아름드리 활엽수가 우거진 것이 특징이다.

 

격포리에는 가볼 만한 곳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바닷가 절벽인 적벽강(↑)과 채석강. 적벽강은 약 2길이의 해안선으로, 중국의 소동파가 노닐던 적벽강과 흡사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붉은색을 띤 바위와 절벽은 황혼 무렵 햇빛을 반사할 때 더욱 장관을 이룬다. 채석강은 바닷가에 드러난 퇴적지층이 마치 수만 권의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며, 하루 두 차례 썰물 때에는 퇴적암층에 붙어 있는 바다생물들과 해식동굴을 관찰할 수 있다.

 

격포는 옛날 수군의 근거지로 수군별장·첨사 등을 두었고,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할의 격포진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 인연이었는지 이곳에 조성된 영상테마파크(↑)에서 2004~2005년 탤런트 김명민이 열연했던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이 촬영되었다. 당시 세운 전라좌수영 세트장은 지금까지도 보존돼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변산면 도청리의 금구원조각전시관은 미술 애호가들의 발길을 유혹하는 곳이다. 이곳은 1966년 김오성이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조각공원으로, 전시하고 있는 작품 100여 점은 사실적인 여체가 주류를 이룬다. 대리석이나 화강암인 이 조각품들은 소형 작품에서 대형 작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데 큰 것은 450나 된다. 또 이곳에는 우리나라 개인 천문대 1호인 금구원천문대가 있어 천체에 관심이 있는 학생과 일반인의 체험관광지로도 인기가 높다.

 

부안에 와서 빠뜨릴 수 없는 곳 가운데 하나가 내소사(↑)이다. 진서면 석포리 관음봉(425m) 아래에 자리 잡은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633)에 창건된 천년 고찰이다. 내소사는 역사가 이처럼 깊기도 하거니와, 일주문에서 시작된 전나무숲길이 풍치를 더하며, 사천왕문을 들어서면서 바라보는 경치는 마치 선경과도 같아서 누구나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초봄의 차가운 비가 오는 평일에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으니 꽃 피고 화창한 계절에야 일러 무엇하겠는가.

 

농촌이 부유하고 백성은 배불러야실학과 동학의 정신이 흐른다

우리 역사에서 반계 유형원(1622~1673)은 실학자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보안면 우동리 산기슭에는 반계선생유적지(↓) 또는 반계서당이라고 하는 건물이 하나 있는데, 이곳은 유형원이 학문을 탐구하던 곳이다. 유형원은 1636년 병자호란 이후 서울을 떠나 여러 곳을 옮겨 살다가 효종 4(1653) 선대의 자취가 남아있는 이곳으로 이사하여 학문에 몰두하였다. 그는 여러 차례 벼슬에 추천되었으나 모두 사양한 채 농촌을 부유하게 하고 백성들의 삶을 넉넉하게 하고자 고심한 사람이었다. 조선 후기의 수많은 실학자들이 그의 영향을 받았으며, 국가체제의 개혁에 관한 책 반계수록이 그의 저서이다. 유형원의 묘소는 경기 용인에 있다.

 

 

진서면의 아담한 포구 곰소항(↑)은 일제 때 줄포항이 토사로 인해 수심이 점점 낮아지자 그 대안으로 제방을 축조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이 지역에서 수탈한 각종 농산물과 군수물자 등을 일본으로 반출하기 위해서였다. 현재 곰소항에는 대규모 젓갈단지가 조성되어 있고 싱싱한 회도 맛볼 수 있다. 주말이면 인근 관광지와 연계해서 젓갈단지를 찾는 관광버스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또 항구 북쪽에 드넓은 염전이 있어 품질 좋은 천일염도 많이 생산된다.

 

상서면 감교리에는 원숭이학교(↑)라는 것이 있다. 원숭이들을 조련하고 공연도 하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잘 훈련된 원숭이들의 단체공연은 물론, 조련 현장 모습을 볼 수 있으며, 세계 최고 수준의 중국 기예단 공연과 수백 마리에 이르는 악어 공연도 펼쳐진다.

부안군을 거의 한 바퀴 돌아 부안읍 내요리에 이르러 돌모산 당산(↓)을 찾았다. 마을 앞 논가에 서 있는 당산은 당산할머니 또는 짐대할머니라고도 불리며 마을에 복과 안녕을 가져다주는 수호신인데,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 보름이면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마을에 침입한 잡귀를 몰아내기 위해 줄다리기에 사용한 동아줄을 어깨에 메고 마을을 돈 뒤 그 줄을 당산에 감는 짐대할머니 옷 입히기 행사 등이 벌어진단다.

 

해가 좀 길어지기는 했지만 비가 오는 날이라 일찍 어둠이 내리는 가운데 마지막으로 백산면 용계리의 백산성을 찾았다. 백산성은 낮은 땅이지만 동진강을 굽어보며 서 있는 작은 산성이다. 이곳은 백제가 패망한 지 4년 만인 신라 문무왕 3년 백제 유민들이 일본에 있던 왕자 부여풍을 맞아 최후의 항쟁을 한 곳이라고 한다. 또한 1894년 갑오동학농민혁명 때는 이곳에서 농민군들이 봉기를 하였으니, 백산성은 이래저래 역사적인 현장이 아닐 수 없다.

하루 일정의 부안 여행이라 여러 가지 아쉬움이 많았는데, 그 중에서도 위도에 들어가보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컸다. 더구나 날씨까지 궂어서 바다 건너에서의 모습마저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다시 기회가 온다면 띠뱃놀이의 전통문화가 있고 여객선 침몰사고의 아픔이 있는 바로 그 섬, 위도에 반드시 가보고 싶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