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문경, 새재 넘어 들려오는 기쁜 소식

몽당연필62 2011. 8. 18. 13:40

문경, 새재 넘어 들려오는 기쁜 소식


영남의 많은 선비들이 장원급제의 꿈을 안고 문경새재를 넘어 한양으로 향했다. 상인들 역시 거부의 꿈을 키우며 힘든 삶의 고개를 넘듯 새재(鳥嶺)를 넘었으리라.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의미의 지명인 문경(聞慶)에는 이처럼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싶고 또 그 소식을 고대하는 열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해발 650m 문경새재 정상에 있는 영남 제3관문. 조령관이라 불린다.

 

영남의 관문인 경북 문경시는 생각보다 서울에서 가깝다. 자동차로 경부나 중부고속도로를 통해 영동고속도로에 접어들어 강릉 방면으로 달리다 여주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면 채 두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문경은 소백산맥의 준령을 넘어 가장 먼저 나타나는 고장이니 영남의 관문으로 불리는 것이다.

문경읍에 도착하자마자 조령산 자락에 있는 조령(鳥嶺), 즉 새재부터 찾았다. 새재는 문경시와 충북 괴산군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650m의 고개로, 지리적 연관성이 거의 없는 전남 진도의 진도아리랑에도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로구나’ 하는 가사가 있을 만큼 유명하다.


새도 넘기 힘든 고개, 청운의 꿈을 안고 넘었다

문경새재 일원은 도립공원으로 지정돼 있는데, 공원 초입에 들어서자 옛날 선비의 모습을 한 동상이 먼저 눈에 띈다. 새재는 한양과 영남을 이어주는 중요한 길목이었으니 많은 선비들이 청운의 꿈을 안고 고개를 넘어갔다가, 어떤 이는 장원급제의 환희 속에 또 어떤 이는 낙방의 아픔이나 실의 속에 다시 고개를 넘어왔을 터이다.

하지만 새재를 넘나든 사람들이 어찌 선비들뿐이었겠는가. 선비들이 입신양명을 꿈꾸었던 것처럼, 상인들 역시 거부의 꿈을 키우며 짐을 바리바리 우마에 싣거나 머리에 이고 등에 지고서 신산한 삶의 고개를 넘었으리라. ‘경사스러운 소식을 듣는다’는 의미의 지명인 문경(聞慶)에는 이처럼 기쁜 소식을 전해주고 싶고 또 그 소식을 고대하는 열망이 담겨있는 것이다.

선비상을 지나면 곧바로 문경새재박물관(↑)이 나타난다. 이 박물관은 새재의 유래와 역사, 옛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의식주 관련 자료, 문경의 문화재 등 4200여 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는데, 대부분 지역 주민들로부터 기증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어 장승공원을 지나 영남 제1 관문인 주흘관을 통과하면서 본격적인 문경새재 길이 시작된다. 주흘관(↓)은 조선 숙종 34년(1708년)에 남쪽의 적을 막기 위해 설치한 문루와 성곽으로, 3개의 관문 가운데 옛 모습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정상의 제3 관문인 조령관까지는 약 7㎞의 거리다.

주흘관을 통과하니 화강암 등을 깎아 만든 현대식 조형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경북 100주년 기념 타임캡슐’(↑)이다. 말 그대로 경북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1996년 설치한 이 조형물 아래에는 경북 사람들의 생활·풍습·문화 등을 보여주는 다양한 자료가 담긴 캡슐이 묻혀 있다. 이 캡슐은 경북 탄생 500주년이 되는 서기 2496년 10월 23일 후손들이 개봉하여 20세기 말을 살았던 경북 사람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확인하게 될 것이다.

인근에는 또 ‘태조 왕건’ 등을 제작했던 KBS 사극 촬영장이 세워져 있다. 드라마에서 보았던 고려궁과 백제궁, 귀족촌과 평민촌 등이 이곳에 재현되어 있으며 ‘대조영’도 일부 촬영했다고 한다. 현재는 '광개토대왕'을 촬영하고 있는 중이다.

잘 닦인 신작로처럼 곱게 드리워진 흙길을 따라 발길을 재촉하는데, 이번에는 길 바로 옆에 가로 50여m 세로 40여m 정도로 성곽처럼 네모지게 쌓은 돌담이 있다. 돌기둥을 세워 만든 출입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생각보다 넓은 내부에 몇 해 전 재현해 놓은 초가와 목조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출장 가는 관리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던 조령원(↓)이라는 시설이란다.

조령원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곁에 노송을 거느린 교귀정(↑)이라는 정자가 품위 있게 서 있다. 교귀정은 조선 때 신·구 경상감사가 업무를 인계인수하던 곳으로 성종 때 처음 세워졌다고 한다. 교귀정 앞으로는 새재 계곡과 주흘산에서 시작된 물줄기가 수정처럼 흐르며 멋스러움을 더한다.

다시 조곡폭포라는 아담한 폭포를 지나 조곡교를 건너면 조곡관이라 불리는 영남 제2 관문(↑)이 나온다. 조곡관은 선조 때 세워졌으며 제1 관문과 제3 관문 중간에 있어 중성이라고도 한다.

조곡관을 지나면서 평탄하던 길은 조금씩 가파르게 변한다. 그러나 자동차가 통행할 수 있는 넓은 길인 데다(새재 정상까지 자동차가 다닐 수 있지만 공무 외의 자동차 통행은 금지하고 있다) 흙길이 워낙 좋아 그다지 힘들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더구나 울창한 숲이 하늘을 가려 따가운 햇볕을 막아주고, 옆으로는 계곡이 드리워져 오히려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새재 정상이 머지않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 무렵, 곁가지처럼 드리워진 오솔길이 보이고 장원급제길이라는 팻말이 세워져 있다. 옛 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서둘러 가던 샛길이다. 그러나 이 길을 걸었다고 해서 모두가 급제를 했으면 좋으련만 세상사가 어디 그러한가. 급제를 한 선비보다 훨씬 많은 낙방 선비들에게 이 길은 회한의 귀향길이기도 했으리라.

이윽고 문경새재 정상(↑). 명실상부한 영남의 관문 조령관이 경북과 충북의 경계를 이루며 서 있다. 조령관 옆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약수 한 잔을 들이켜며 가쁜 숨을 달래고는 부질없는 역사의 가정 하나를 해본다. 이곳은 군사적 요충지이니,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이 충주 탄금대에 배수진을 치지 않고 북상하는 왜적과 새재에서 맞섰다면 전황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서민들의 소박한 도자기와 전국 최대 오미자 단지

새재 정상까지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에 바쁘던 마음이 내려오는 길에는 한결 여유롭다. 그래서일까, 영남 제1 관문을 빠져나오자 올라갈 땐 보이지 않던 문경도자기전시관이 눈에 들어온다. 문경은 서민들이 사용하는 도자기를 생산하는 민요(民窯)가 많았고 지금도 그 맥이 이어져오는 고장이니 전시관에 들러보지 않을 수가 없다.

문경도자기전시관은 문경지역에서 출토된 자기류와 지역 도예인들의 혼이 깃든 작품들을 둘러볼 수 있는 전시실을 비롯해 영상실, 판매장, 전통 망댕이 가마 등을 갖추고 2002년 개관했다. 특히 전시관 건물 옆에는 백자공방 터가 발굴되어 보존되어 있으며, 뒤편에는 전통도자기 체험장(↓)이 개설되어 직접 도자기를 빚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게 하고 있다.

한편 문경은 품질 좋은 오미자(↑)가 생산되는 고장으로도 유명하다. 전국 최대 오미자 재배단지로 꼽히는 동로면에 이르니 사과밭보다도 더 많은 오미자 밭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데, 콩알 크기의 오미자 열매가 포도송이처럼 열려 조금씩 붉은 빛을 띠어가고 있다.

이곳 오미자는 주류 제조사인 국순당 등 여러 업체에 납품될 뿐만 아니라 말린 오미자, 오미자 진액, 오미자 술, 오미자 한과, 오미자 청국장 등의 상품으로도 개발돼 산동농협 등을 통해 판매된다. 또 동로면 생달1리가 오미자 체험마을로 지정되어 있으며, 가을이면 동로면 일대에서 오미자 축제가 열려 문경 오미자의 우수성을 자랑하게 된다.


풍광은 산자수명하고 자전거는 철로 위를 달린다

문경은 북서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쳐진 백두대간 소백산맥의 품에 고즈넉이 들어앉아 있어 그야말로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고장이다. 아름다운 산과 물 맑은 계곡이 발길 닿는 곳마다 반긴다.

문경의 산으로는 진산으로 꼽히는 주흘산(1106m)을 필두로 황장산(1077m)·대야산(931m)·희양산(999m) 등이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데, 봉우리와 능선을 이루는 기암과 괴석들이 보는 이의 감탄사를 자아낸다. 이들 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때로는 급하게 흐르고 때로는 잠시 숨을 돌리기도 하면서 곳곳에 계곡과 못을 만들어 놓았다.

황장산에서 발원한 낙동강 지류 금천을 막아서 생성된 동로면의 경천호는 피서를 겸한 낚시터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금천이란 이름은 댐이 축조되기 전 물이 비단같이 맑았던 데서 붙여진 것이라는데, 저수지가 된 지금도 맑은 물은 변함이 없다.

경천호가 저수지라면, 마성면 진남교반(↑)은 영강과 조령천이 합쳐진 물굽이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느라 속도를 늦춰 못처럼 된 곳이다. 진남교반은 강변이 한쪽은 기암절벽으로, 한쪽은 모래밭으로 이뤄져 풍광이 아름답고 여름철 휴양지로 적합해 많은 사람들이 야유회와 수련대회 장소로 이용한다.

문경은 경천호와 진남교반을 포함해 문경팔경을 정해놓고 있는데, 이 외에도 산북면 운달계곡, 가은읍 선유동계곡·용추계곡·봉암사 백운대, 문경읍 새재계곡, 농암면 쌍룡계곡이 문경팔경에 든다.

한편 진남교반 바로 옆 진남역에는 문경이 자랑하는 또 하나의 명물 철로자전거(↓)가 있다. 이곳에는 과거 석탄산업이 번창했을 때 석탄을 실은 화물열차는 물론이고 여객열차도 다니던 철로가 있는데, 석탄산업이 쇠퇴하면서 노선이 폐쇄되자 궤도를 철거하는 대신 관광자원으로 개발해 2004년부터 철로자전거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왕복 4㎞인 철로자전거 노선은 진남역에서 구랑리역 방향과 불정역 방향으로 다녀오는 2개가 있고, 가은농공단지에서도 먹뱅이 방향으로 다녀오는 노선이 운영 중이다.

문경은 한때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탄광지대의 하나였다. 그러나 에너지 소비구조의 변화에 따라 20여 개나 되던 탄광들이 하나 둘 문을 닫고 1990년대 초반 은성광업소가 마지막으로 폐광하면서 문경의 석탄산업도 막을 내리게 되었다.

가은읍에 세워진 석탄박물관(↑)은 문경의 이러한 석탄산업 변천사를 한 곳에 모아놓은 곳으로, 석탄산업 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학습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연탄처럼 둥근 모양으로 건립된 박물관은 1층에 광물자원과 화석 및 석탄 관련 자료 등을, 2층에 채탄 장비와 광부들의 생활상 등을 전시하고 있다. 또 실제 갱도를 이용해 만든 230m 길이의 갱내전시실은 굴착작업과 광차를 이용한 운반작업 모습 등을 보여준다.

문경을 찾는 관광객이 연간 4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나라 국민 열 사람 가운데 한 사람 꼴로 문경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그들은 문경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기도 하겠지만, 마음 속으로는 무언가 기쁜 소식을 고대하며 문경을 찾는 게 아닐는지….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