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보길도, 천재 시인 윤선도를 붙든 섬

몽당연필62 2011. 6. 3. 08:30

보길도, 천재 시인 윤선도를 붙든 보배같은 섬


전라남도 해남군 땅끝 선착장. 하루에 섬을 다 둘러보고 다시 나올 요량이라 마음이 바쁜데, 잠시의 게으름에 첫배를 놓치니 저만치 떠있는 백일도 위로 해가 두어 뼘이나 솟아버렸다.

완도군 보길도로 가는 배 이름은 ‘장보고호’다. 1200년 가까운 옛날 청해진을 중심으로 바다를 호령하던 영웅의 기개가 실려서인가, 바람이 만만치 않게 바다를 할퀴어 대는데도 20여 대의 차량과 100여 명의 승객을 실은 장보고호는 크고 작은 섬과 양식장의 부표들을 헤치며 듬직하게 물길을 잡아간다.

경유지인 넙도에서 예닐곱 대의 차와 사람 몇을 부린 장보고호는 땅끝을 떠난 지 50분쯤 되어 보길도 관문인 청별 항(↓)으로 서서히 진입한다. 여느 섬에나 있는 포구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몇 개의 음식점이 늘어선 상가도 단출하다.

이윽고 청별 항에 내려 새로운 공기 맛을 보려 심호흡을 하는데 문득 조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있다. 색깔이 다르다! 뭍에는 아직 새싹 돋을 시기가 아닌데 이 섬에는 벌써 녹음이 짙다. 소나무는 물론이고 동백나무와 대나무 등 사철 푸른빛을 잃지 않는 상록수들이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보길도 여행은 이렇게 ‘색다름’을 느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 이 글은 2006년 4월의 여행기였으나 일부 내용을 보완해 이제야 블로그에 올렸음을 밝힙니다.


시름 씻고 어부사시사 빚은 부용동

외지 사람들이 보길도를 찾았을 때 가장 먼저 가보는 곳이 윤선도의 유적이 있는 부용동(↓)이거나 모래 대신 조약돌이 깔린 예송리 해수욕장일 것이다. 이 중에서 부용동은 워낙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이곳 사람들 말로 ‘노인 걸음으로 20분’이면 충분할 만큼 청별 항에서 가깝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행의 첫 코스로 삼는다.

윤선도는 당쟁을 피해 고향 해남에 은거하던 중 1636년 병자호란이 나자 종복 수백 명을 배에 태워 강화도로 떠났으나 강화도가 이미 함락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조가 피신해 있다는 남한산성으로 향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인조가 이미 서울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는 뱃머리를 돌렸고, 1637년 당쟁과 전쟁으로 어지러운 세상을 등질 결심을 하고 제주도로 향하던 중 보길도에 기착했다가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마을 이름을 연꽃의 다른 이름인 부용(芙蓉)이라 짓고 눌러앉았다.

그래서 부용동에는 윤선도의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특히 그가 마을 입구 연못 한가운데에 지은 세연정(洗然亭, ↑)은 전체 면적 3000평 정도의 계원(溪園)으로 정자와 물, 나무, 바위가 어우러진 경관이 이름 그대로 물에 씻은 듯 깨끗하고 단정하여 둘러보는 이의 기분까지 상쾌하게 한다. 윤선도는 이곳 바위 하나하나에 사투암(射投岩)·혹약암(惑躍岩) 등 이름을 붙이고 동대와 서대 등 단을 쌓아 가무를 즐겼다고 하니, 그토록 잊고자 했던 시름은 세연정 흐르는 물에 함께 씻어지지 않았을까.

세연정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산 중턱에는 동천석실(↑)이 있어 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낮에도 어두컴컴한 동백나무숲을 헤치고 돌길을 500m쯤 올라가야 나타나는 이 석실은 절벽 위에 세운 한 칸짜리 정자로, 내려다보이는 마을 풍경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이다. 윤선도는 세연정과 석실을 오가며 세속의 속박을 벗어던지고 신선처럼 자연에 동화되며 마침내 우리 시가문학의 가치를 한껏 드높인 ‘어부사시사’와 숱한 한시들을 빚어냈으리라.


서쪽 해안의 명소 망끝 전망대와 공룡알 해변

보길도는 해안선 길이가 41㎞, 면적이 서울 여의도의 두 배보다 조금 큰 19.3㎢, 주민 수가 2900여 명쯤이니 그리 큰 섬은 아니다. 해안선을 따라 닦인 도로도 비교적 잘 포장돼 있어 청별 항에 내렸을 때 자동차로 30분이면 닿지 못할 곳이 없다.

하지만 섬을 일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격자봉(430m)이 남서쪽에 솟아 있는데, 좀 완만하게 바다로 잠겨들면 좋으련만 험한 암벽들을 곧바로 남해바다에 빠뜨린 통에 몇 ㎞만 뚫으면 될 길을 내지 못한 것이다. 청별항 혹은 세연정에서 서쪽으로 길을 잡으면 망끝 전망대와 공룡알 해변으로 갈 수 있고, 동쪽으로 향하면 보길도가 자랑하는 해수욕장들과 송시열 글씐바위를 둘러볼 수 있다.

망끝 전망대로 향하는 길, 정자리를 지나는데 길가의 제법 운치 있는 집 하나가 나그네를 세운다. 입구에서부터 넓지 않은 마당과 후원에는 온갖 나무와 꽃들로 가득하다. 아름드리 은행나무와 동백나무를 비롯해서 몸을 비튼 백일홍과 모과나무, 거기에 이끼 내려앉은 5층 석탑은 이 집이 어지간한 풍상을 겪어온 게 아님을 말해준다. 그런데 다른 곳의 동백나무들은 한창 붉은 꽃 피워내기에 바쁜데 이 집의 동백나무는 아직 짱짱해 보이건만 어찌하다 일찍 기력이 쇠했는지 꽃이 보이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에 자세히 올려다보니, 아니다, 있다, 흰 동백(↑)이다…. 행진당(杏津堂)이라는 현판을 보며 기척을 해도 내다보는 이가 없지만 이 집은 관리 상태가 좋아 빈집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방안을 들여다보니 오래된 풍금 하나가 구석을 차지한 채 고즈넉이 서 있다. 나그네는 헛기침 몇 번으로 짐짓 양반 행세를 하며 집을 나온다.

선창리의 망끝 전망대는 날씨가 좋으면 추자도와 제주도가 바라다 보이는 곳이다. 더욱이 점점이 놓인 섬들과 수평선 위로 펼쳐지는 일몰이 아름다워서 섬에서 숙박하는 사람들은 해질녘이면 이곳에 나와 대자연이 선사하는 장관을 누리게 된다.

전망대에서 남동쪽으로 보이는 보죽산, 이곳 사람들이 뾰쪽산이라고 부르듯 정말 뾰쪽하게 생긴 산 하나를 끼고 돌면 서쪽 길을 통해서는 마지막 행선지인 보옥리 공룡알 해변(↑)이 나온다. 500여m쯤 되는 길이의 해안에 주먹에서 1m 이상 되는 크기의 갯돌들이 널려있는데, 오랜 세월 파도에 동글게 닳은 모습이 마치 공룡의 알과 같다고 해서 공룡알 해변이다. 이 공룡알 돌들이 조약돌이 되고 다시 모래가 되기까지는 얼마나 더 많은 세월 파도에 몸을 씻어야할 것인가. 그 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우리 인간들은 억겁이라 할 터이다.


가슴에 담아가기는 예송리 해수욕장이 으뜸

왔던 길을 청별 항까지 되돌아 나와 이번에는 동쪽으로 난 길로 접어든다. 동쪽 길에서는 송시열 글씐바위와 보길도를 대표하는 해수욕장들을 만날 수 있다.

송시열 글씐바위(↓)는 보길도 동쪽 맨 끝 백도리 해안에 있는데, 커다란 암벽의 가로․세로 각 1m 정도 넓이에 숙종 때 사람 우암 송시열이 새겼다는 글이 남아 있다. 송시열은 세자 책봉 문제로 상소를 올렸다가 임금의 노여움을 사 1689년 제주도로 귀양을 가던 중 병풍처럼 생긴 이 바위에 탄식의 글을 남겼다고 한다.

송시열은 윤선도보다 20년 뒤에 태어났지만 인조 대부터 현종 대까지 동시대를 살았고, 정치적으로 서로 견제하는 사이였다. 윤선도가 보길도로 들어선 게 사실상 송시열에게 정치적으로 패한 것이 그 이유였다는데,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보길도에 흔적을 남긴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보길도 동남쪽 해안에는 3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중리, 통리, 예송리 해수욕장이다. 보길도는 완도나 땅끝으로 이어지는 뱃길이 좋은 편인 데다 2008년엔 이웃 섬인 노화도와 다리로 연결돼 여름이면 이들 해수욕장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몰려든다. 중리와 통리 해수욕장은 모래가 곱고 수심이 완만하며 송림이 우거져 해수욕을 즐기기에 제격이다.

보길도에 와서 들러보지 못한다면 두고두고 후회된다는 곳이 바로 예송리 해수욕장(↑). 이 해수욕장에는 모래 대신 바둑돌부터 어린애 주먹 크기까지의 검고 매끄러운 자갈이 1.4㎞에 걸쳐 깔려있다. 맨발로 자갈을 밟는 감촉도 일품이지만, 자갈들이 파도에 밀려 올라왔다 다시 바다로 미끄러질 때 서로 몸을 비벼 내는 자그락거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노라면 이곳이 선계인지 속계인지 혼몽해진다. 더구나 달이라도 휘영청 밝은 밤이라면 끝없이 달빛을 싣고 와 부려대는 파도와 자갈 부딪는 소리에 취해 아침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송리 해수욕장에는 또 마을과 해수욕장을 경계짓는 상록수림이 1㎞ 가까이 눈썹처럼 우거져 방풍과 함께 어족 자원을 보호하면서 안 그래도 빼어난 보길도의 풍광에서 예송리 해수욕장을 백미로 만들어주고 있기도 하다.

본디 아름답게 만들어진 자태에 천재 시인 윤선도의 감성을 빌려 아름다움을 더한 섬 보길도. 좋은 노래는 세 번 들으면 싫어진다는데, 세 번째 찾아가 오히려 애틋한 정이 깊어진 보배같은 섬 하나가 남해바다에서 몸을 씻고 있다.


/글 몽당연필, 사진 최수연(월간 '전원생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