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비 오는 날의 풍경

몽당연필62 2011. 6. 24. 14:48

비 오는 날의 풍경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걱정이거나 즐거움이거나

 

장마철이다. 해마다 이맘때 쯤 비가 잦은 것이야 하늘이 정한 이치이니, 사람은 그저 탈 없이 장마가 지나가길 기원할 뿐이다. 똑같은 사물이나 현상도 어떤 이에게는 행복이고 다른 어떤 이에게는 고통이듯, 내리는 비 또한 누군가는 반갑게 맞겠지만 누군가는 걱정부터 앞세우리라. 빗줄기 속으로 나가보면 안다, 이 비가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는.    글 몽당연필 / 사진 최수연(월간 '전원생활' 기자)

 

마치 발을 맞춘 듯

비라고 해서 모두 같은 비가 아니다. 특히 농촌에서는 농사에 도움이 되는 비가 있고, 해가 되는 비도 있다. 보리를 다 베고 모내기도 마친 즈음의 비는, 지나치지만 않다면 그럭저럭 반가운 비다. 굳어 갈라지기 시작한 논바닥을 아물리고 과실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비설거지를 나가는 길일까 아니면 다녀오는 길일까, 세 사람이 약속한 것도 아닐 터인데 발을 맞춘 걸음이 조금은 급해보인다. 

 

비바람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비만 곱게 내려주면 좋으련만 갑자기 바람이 몰아온다. 남정네는 재빨리 몸을 돌려 우산으로 비바람을 막고, 아낙은 얼굴을 돌려 빗방울을 피하며 우산이 날리지 않게 손잡이에 힘을 더한다. 부디 우산살이 바람을 이겨내고 까뒤집히지 않기를, 이 비바람이 농사를 근심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에서 그쳐주기를….

 

아스팔트의 열기를 식혀라

‘타닥타닥’ 깨 볶는 소리인 듯 콩 볶는 소리인 듯, 굵은 소낙비가 아스팔트 도로를 요란하게 때리더니 길바닥을 금세 흥건하게 적셔놓았다. 소낙비는 자신이 내려왔던 하늘로 다시 올라가려는지 젖은 길바닥에서도 물고기 튀듯 튀어 오른다. 뙤약볕에 뜨뜻하게 달궈졌을 아스팔트는 잠시 열기를 식히고, 밭의 과수들과 길섶의 잡풀들도 생명수를 받아들이고 있다.


창 밖엔 비가 내리고

창을 때리는 빗방울에 괜히 가슴 설레던 때가 있었다.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어딘가를 동경하던 사춘기 시절 그랬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빗물로 얼룩진 창을 보아도 별다른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 빗물 때문에 바깥 풍경이 흐릿한 것인지, 나이가 들어 떨어진 시력 때문에 바깥이 흐릿하게 보이는지가 헷갈릴 뿐.

 

천진난만 동심

마른 날에도 장화를 신고 놀겠다고 강짜 부리던 아이들이 비가 내리니 바로 물 만난 고기다. 게다가 비록 살 부러진 것일망정 우산은 또 얼마나 써보고 싶었을까. 이 철딱서니들에게는 그쳐가는 비가 아쉽기만 할 것이다.

 

네 인생에 비가 내리더라도

빗발은 이미 성글어졌다. 하지만 아이는 우산을 접을 마음이 없다. 앞으로 이 아이가 걸어갈 기나긴 인생길에도 맑은 날이 있고 비 오는 날이 있으리라. 지금 우산을 활짝 펼쳐 든 것처럼, 인생의 비가 오는 그날에도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혜로써 자신을 지켜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