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농업을 경시하는 땅에도 봄은 오는가

몽당연필62 2011. 3. 8. 09:56

 농업을 경시하는 땅에도 봄은 오는가


3월입니다. 우수도 경칩도 지났습니다. 꽃샘추위라지만, 햇살과 바람결이 제법 보드랍게 느껴집니다. 길었던 겨울이 마침내 물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지난겨울은 우리 농민들에게 참으로 모질었습니다. 지난해 11월 29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해 오늘(3월 8일)로 100일째가 된 구제역이 사실상 전국적으로 창궐하며 조류인플루엔자(AI)와 함께 축산농가를 유린했고, 혹한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여러 지역에 기상관측 이래 최대 기록이라는 눈폭탄이 쏟아져 시설하우스를 무너뜨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기름값마저 고공행진을 해 난방비 부담이 큰 농민들의 어깨를 짓눌렀지요.

특히 구제역은 3월 7일 오전 현재 돼지 331만 마리를 비롯해 모두 347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 매몰한 데 따른 경제적 피해는 물론이고 ‘농-농 갈등’이라는 농촌공동체 파괴의 비극도 초래했습니다. 구제역 전파경로를 따지느라 축산농가들 사이에 반목이 생겼는가 하면, 축산농가와 경종농가 등 주민들 사이에도 오랜 방역활동에 따른 생활 불편과 침출수에 의한 지하수 오염 및 악취 등의 문제로 갈등이 빚어졌던 것입니다.


구제역 100일… 농민 모독하고 농업 경시하는 발언 난무

이처럼 혹독했던 겨울이 물러가는 것이야 자연의 섭리이니 당연한 일이겠으나, 그렇다고 농민들의 가슴에도 훈풍이 불어오고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누구보다도 우리 농업과 농촌의 발전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농민들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여겨야 할 고위 인사들이, 그 겨울 동안 오히려 농업을 경시하거나 농민들의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과 다름없는 말들을 내뱉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지난해 12월 농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린 ‘다방농민’ 발언입니다. 우리나라 통상교섭 최고책임자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농사는 짓지 않으면서 다방에서 공무원들과 커피를 마시며 보조금을 타먹는 농민’을 일컫는데, 어려운 가운데서도 농사를 지으며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농민들에 대한 모독이었습니다.

지난 1월에는 재정을 총괄하는 장관이 ‘축산농민들의 도덕적 해이’ ‘구제역 보상비로 예비비 동난다’ 등의 발언을 해 축산인들의 거센 반발을 샀지요. 축산농민들의 도덕적 해이가 구제역 확산을 불렀고 그 결과 국가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의미였기에, 구제역 조기 종식을 위해 혹한 속에서 방역활동을 하느라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던 축산인들이 공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최근에는 집권여당의 원내대표가 ‘축산업은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다’ ‘20억원 수출 위해 3조원 쓰는 것이 말이 되느냐’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빚어졌습니다. 축산부문이 2009년 기준 농림업 생산의 38.3%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안전한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자는 국가 정책목표에 의해 육성되고 있음을 생각하면 참으로 대경실색할 발언이었지요.


고위 공직자일수록 올바른 농업관으로 농민 응원해야

이미 봄빛이 완연하지만, 농민들의 가슴은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겨우내 혹한과 폭설 속에서 싸운 구제역이 아직 종식되지 않은 데다, 농업을 하찮게 생각하고 농민을 업신여기는 공직자들의 농업관이 혹한의 삭풍보다도 더 매몰차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 농민들에게 봄날은 과연 언제쯤 오는 것일까요.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농업을 지키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농민들을 응원하지 않는다면, 삼월 아니라 오뉴월도 우리 농촌에는 빙하기일 뿐입니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