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배추파동 계기로 먹을거리의 소중함 깨달았으면

몽당연필62 2010. 10. 7. 11:34

배추파동 계기로 먹을거리의 소중함 깨달았으면


배추를 비롯한 채소 값 급등으로 온 나라가 어수선합니다. 길게 줄을 서서 두 시간 넘게 기다린 끝에 배추 3포기를 구입한 주부의 사진이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실리는가 하면, 배추 구입에 성공(?)한 것이 로또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려옵니다. 


나라를 뒤흔든 배추의 생각지도 못했던 위력 

배추김치를 내놓지 않는 음식점이 증가하고, 고깃집에서 채소를 더 달라고 했다가는 눈총받기 십상인 것도 다들 아실 겁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청와대 주방장에게 비싼 배추김치 대신 양배추김치를 식탁에 올리라고 했대서 화제가 됐었죠.

여기서 한가지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 사태가 배추가 아닌 쌀로 빚어진 것이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배추와 쌀은 생산 시기나 소비 방법, 저장 기간 및 유통경로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접 비교하기가 곤란하지만, 아무튼 쌀 파동이었다면 배추보다 훨씬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쌀은 배추보다 저장기간은 물론 생산기간도 훨씬 길기 때문에 유통상인이나 개인이나 가리지 않고 사재기를 했을 것이며, 쌀을 미처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어쩌면 약탈을 하거나 폭동을 일으켰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야말로 전쟁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을까요? 상상만으로도 참혹한 일이지요.

 

이번 배추파동은 사람들이 먹을거리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보여 주었다. 쌀파동이 아닌 게 천만다행일 뿐이다. 전남 해남군의 배추밭 모습.

 

우리 사회는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농업과 농산물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할 것입니다. 농산물은 부족할 경우 언제든 수입할 수 있는 단순 소비재가 아닙니다. 우리가 배추를 수입하려고 하자, 중국도 작황 부진으로 수출할 배추가 거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요. 그나마 수출용 배추 가격을 무려 80%나 올려버렸고요.

쌀 역시 국내 생산량으로 감당이 안돼 수입에 나선다면 즉각 국제가격이 폭등할 것입니다. 쌀은 전체 생산량에서 차지하는 국제 교역량의 비중이 워낙 적기 때문에 특정 국가에서 수입을 한다거나 수출을 중단할지 모른다는 ‘설’만 나와도 가격이 폭등해버립니다. 쌀은 그야말로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로 돌변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쌀값이 오르더라도 언제든 구할 수 있다면 괜찮을 텐데, 그 보장이 없다는 점입니다. 쌀은(물론 다른 농작물도) 연중 아무 때나 생산해서 재고를 쌓아두고 파는 것이 아닙니다. 주문이 들어와도 생산까지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우리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에 시장의 미세한 수급 불균형에도 가격이 춤을 추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식량안보’를 이야기 하고, 국가간 협약을 통해 해외에 농토를 많이 확보해둘 필요가 있다고도 말합니다.


급감하는 농지와 식량자급률…최소한의 식량생산 기반은 유지돼야

그런데 진정한 식량안보란 해외보다는 바로 이 땅에 식량생산의 기반을 유지하는 것 아닐는지요. 해외에 아무리 많은 쌀을 쌓아놓아도 그것을 수송해올 방법이 봉쇄되면 그것도 그림의 떡이 되어버리니까요. 때문에 이 땅에 일정 수준의 농지와 숙련된 농업기술자(농민) 등 식량생산기반이 늘 유지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일어날지 안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비해 수십만 명의 군대를 유지하고 첨단 무기를 도입하는 것처럼요.

우리나라의 농지면적과 식량자급률이 해마다 줄고 있습니다. 1968년 232만㏊이던 농지면적은 2009년 173만㏊로 4분의1이나 줄었고, 식량자급률도 사료용을 포함해 1965년 94%에서 2010년 25%수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업이 속절없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그런데도 천만다행으로 쌀만은 남아돌아서, 세계무역기구 쌀협상에 따른 의무수입량을 감안하면 별로 남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식량부족을 체감하지 못한 채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습니다.

 

서럽다 서럽다 해도 배고픈 것만큼 큰 서러움이 있을까. 그러나 배부른 시대를 사는 우리는 먹을거리의 소중함을 잊어버리고 있다. <농민신문사 자료사진>

 

평소 우리는 생존에 꼭 필요한 것들의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하며 생활합니다. 햇빛과 공기와 물이 그런 경우입니다. 쌀 혹은 식량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당장 구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고마움과 소중함을 모르는 겁니다. 물론 먹을거리의 고마움을 절감하는 사태는 가능하면 발생하지 않아야겠지요.

정책당국은 이번 배추파동을 계기로 식량작물의 안정적 생산과 공급 등 농업생산 체계를 전반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소비자들께서도 농업이 흔들리면 나라가 흔들린다는 것을 이해하고, 농업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해보시기 바랍니다.


/몽당연필/

 

=== 다음뷰에 '만약 배추가 아니라 쌀 사태였다면?'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보내놓고 보니 비슷한 제목의 블로그 글이 있군요. 제목을 바꿔 다시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