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농산물값 비싸 추석 차례상 차리기 무섭다고요?

몽당연필62 2010. 9. 16. 12:59

농산물값 비싸 추석 차례상 차리기 무섭다고요?



흉작과 빠른 추석이 농산물가격 상승 부추겨

최근 농산물가격이 많이 올랐습니다. 게다가 품질도 썩 좋아 보이지 않습니다. 어제는 추석 선물을 준비하기 위해 마트에 들렀는데, 판매원 하는 말이 “올해는 과일 맛이 제대로 들지 않았으며 특히 당도가 높지 않아 과일을 자신 있게 권하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이처럼 과일은 물론이고 채소까지도 품질은 좋지 않으면서 값이 비싼 이유는 사실상 올해 일년 내내 지속된 이상기후 여파로 농작물 대부분의 작황이 좋지 않아 물량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추석마저 빨리 들어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기도 하지요.

 

올해는 기상이 좋지 않아 품질 좋은 농산물이 드물고 추석까지 빨리 들어 농산물가격이 많이 올랐다.

 

실제로 폭설 및 강추위와 함께 시작된 올해는 봄철 내내 저온과 부족한 일조량이 영농을 힘들게 했습니다. 또 여름에는 잦은 비와 폭염, 태풍까지 엄습해 농민들의 애를 태웠고요. 기상청 발표에 따르면 농작물이 거의 자라 익어가기 시작하는 8월의 비 내린 날 수가 올해는 31일 중 무려 24일이나 되어 기상관측 이래 가장 많았다고 하네요.


차례를 날마다 지내나…언론의 못말리는 호들갑

농산물가격이 오르면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은 으레 가격을 특정 시점과 비교하며 얼마가 올랐다느니, 시장에 가기가 무섭다느니 호들갑을 떱니다. 그런데 추석이 다가오고 있어서겠지만, 최근 농산물가격 상승을 보도한 일부 언론의 기사 제목이 ‘차례상 차리기 무섭다’입니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지난해 추석 때보다 8.5% 증가한 16만 8400원이 들 것으로 예상된다는데, 차례를 날마다 지내는 것도 아니고 일년에 딱 두 번뿐이지만 그나마 지내지 않고 연휴를 이용해 외국여행 떠나는 사람들로 공항이 미어터지는 것을 보면 호들갑이 지나치다는 생각입니다.

 

가격조사기관인 한국물가정보가 산출한 올해 추석 차례상 비용(4인 가족 기준)은 16만 8400원이다. 이는 골프 한 번 치는 금액에도 못 미치는데 언론은 차례상 차리기가 무섭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떠든다.

 

호들갑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얼마 전 구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해 ‘추석 물가 점검’을 했습니다. 명절이 다가오면 시장을 방문해 ‘장바구니 물가’에 관심을 보이는 것이 대통령이나 농림수산식품부장관 등 ‘높으신 분’들에게는 빠뜨리지 않는 행사의 하나이지요.

또 있습니다. 식·음료품값 인상으로 엥겔계수가 치솟아, 올해 2분기 엥겔계수는 9년 만에 최고치가 되었다는 보도입니다. 그런데 가관인 것이, 9년 만에 최고치라는 올해 2분기 엥겔계수가 13.3%인데 9년 전인 2001년 3분기 엥겔계수가 13.8%였으며 2008년까지는 줄곧 12%대를 유지했었다는 사실입니다. 엥겔계수가 기껏해야 1%포인트 정도 오르내렸다는 이야기인데, 물론 9년 만에 최고치라는 사실이 경제학적으로 유의미할 수 있겠지만, 조사기관이나 언론의 호들갑이야말로 9년 만에 최고가 아닐까 싶습니다.


농산물값은 등락 반복, 농가 살림살이는 지속적으로 악화

대부분의 농산물은 생산기간이 긴 반면 저장기간은 짧기 때문에 수요나 공급 상황에 따라 가격의 오르내림이 심합니다. 또 일반 공산품은 한번 가격이 오르면 다시 내리는 경우가 거의 없지만, 농산물은 가격이 조금 올랐다가도 곧 폭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지요. 지금 올라 있는 농산물가격도 추석이 지나면 대폭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그런데 우리 언론이 농산물가격 하락 문제나 악화 일로의 농가경제에도 관심을 가져주는지 의문입니다. 농가소득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쌀값이 산지에서 9월 5일 현재 15년 전 가격 수준인 12만 9928원(80㎏ 기준)으로 떨어졌습니다. 이는 쌀이 남아돌기 때문이지요. 쌀이 남는 이유는 농업기술이 발달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해마다 일정 물량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농산물가격은 오르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쌀의 경우 재고가 넘쳐 가격이 15년 전과 같은 수준이며 농가경제 악화의 원인이 되고 있음에도 남아도는 쌀 문제는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여기에다 씁쓸한 사실은, 하도 ‘장바구니 물가’ 운운해서 농산물가격이 해마다 크게 오르는 것 같지만, 사실은 일반 물가의 상승률이 더 높다는 것입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0년 여름 농업·농촌경제동향’은 2/4분기 농가교역조건(패리티 지수)이 84.3으로 전년동기 대비 1.2%, 전분기 대비 3.2% 악화됨으로써 농가의 살림살이가 계속 나빠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농가교역조건이 악화되는 이유는 생활용품의 구입가격이 상승한 반면 농산물의 판매가격은 덜 오르거나 오히려 하락하기 때문입니다.


농산물가격 균형 있게 보는 시각 가졌으면

농산물이든 일반 공산품이든 가격이 오른다는 것은 그다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지요. 특히 도시의 서민들에게는 농산물가격의 상승이 커다란 부담일 수밖에 없습니다. 농산물가격이 오른다고 농민들의 소득이 늘어나는 것도 아닙니다. 일반 소비자는 농산물가격이 오르면 농민들이 떼돈을 벌 것으로 생각할지 모르지만, 사실은 농민들은 내다팔 물건이 없거나 소비가 감소하기 때문에 가격 상승분만큼 소득이 늘어나지 않거든요.

그런 점에서 언론은 누구보다도 농산물가격의 특수성을 제대로 이해하고 균형 있게 보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농산물가격이 오르면 흉년 때문에 그저 즐겁지만은 않고 풍년이 들면 가격 폭락부터 걱정해야 하는 농민들의 마음을, 이번 추석에는 언론은 물론 우리 모두가 이해하고 어루만져드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몽당연필/


몽당연필의 블로그 ‘졸필난필 잡문신문’을 방문하신 모든 분들, 우리 농업·농촌의 소중함과 농민들의 고마움을 되새기면서 즐겁고 건강한 추석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