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내미 이야기

국토대장정을 떠난 딸에게

몽당연필62 2010. 8. 10. 16:41

국토대장정을 떠난 딸에게


큰딸!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꼭 해보고 싶다던 국토대장정을, 2학년이 되어 드디어 떠났구나. 부모 품을 떠나 동아리 친구들 그리고 선후배와 함께하는 날들이 어떤지 자못 궁금하다.

아빠는 한증막처럼 후텁지근한 날씨에 힘든 길 걷고 있을 네가 걱정되어 손길이 저절로 휴대전화로 가곤 한다만 꾹 눌러 참고 있단다.

항상 의젓한 큰딸이기에 이번 국토대장정도 무사히 잘 마치고 돌아올 거라 믿어버리는 이 아빠나, 이삼일에 한 번 그것도 몇 단어의 문자메시지로 안부를 대신하는 너나, 무던하기로는 막상막하의 부전여전이겠지.


딸아.

전라도 해남 땅끝을 출발했다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순천을 지나고 있다고? 그렇다면 제법 먼 길을 걸었고, 곧 경상도 땅으로 접어들겠구나.

지금까지 지나온 길에서 넌 뭘 보고 어떤 것을 느꼈느냐? 일행들 사이에 역할분담은 잘 이뤄지고 있느냐? 발바닥이나 발가락에 물집이 잡히지는 않았으며, 신발이 불편하지는 않느냐......

아빠는 지금 소소한 것들이 궁금하다만 자세한 이야기는 돌아와서 온 가족이 함께 듣기로 하고, 오늘은 너에게 문득 생각나는 몇 가지를 당부하고 싶구나.


첫째, 지금 너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부모나 형제가 아니라, 바로 네 곁에 있는 사람임을 알아라.

지금 네 곁에 누가 있느냐? 너와 함께 국토대장정을 나선 동아리 멤버들 아니겠니? 이 친구들이 네가 지쳤을 때 너를 도와줄 것이요, 그들이 힘들 때는 응당 네가 그들을 도와야 할 것이다.

그러니 그들 중에 혹 마음에 들지 않거나 너무 튀는 친구가 있더라도 기꺼이 양보하고 포용하기 바란다. 또한 네 고집이나 주장으로 인해 멤버 전체의 분위기가 가라앉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현재 너와 고락을 함께하는 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한다면, 훗날 더 큰 세상에서 어떻게 타인들을 포용할 수 있겠냐?


둘째, 우리 농업과 농촌 그리고 농민들의 모습을 최대한 많이 보고 오기 바란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이더냐? 바로 먹을거리다. 식량이 없으면 그 어떤 부나 명예도 의미가 없다. 사람을 포함한 모든 생명은 먹을거리가 확보된 상황에서 예의를 차리고 너그러워지는 것이다.

뙤약볕 아래서 그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들이 바로 농민들이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의 농업과 농촌의 상황은 어떠하냐. 또한 농민들은 정당하게 대접받고 있느냐?

너는 우리가 평소 생각없이 먹고 아까워하지 않고 버리는 먹을거리가 실은 얼마나 많은 정성과 간절한 소망으로 생산되는지를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는 한 숟가락의 먹을거리에 담긴 의미와 농민들의 땀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너는 우리 농업과 농촌이 얼마나 고맙고 소중하며 국민경제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뜨거운 조국애를 가슴 가득 지니고 돌아왔으면 좋겠구나.

너는 대용량의 정보가 초를 다투며 이동하고 디지털이니 글로벌이니 하는 시대에, 가장 느리고 가장 힘든 방법으로 우리의 산하를 둘러보는 중일 터이다.

눈에 보이는 산과 들과 강과 바다와 마을과 사람들...... 하나하나를 카메라가 아닌 가슴에 마음껏 품어라. 너 또한 이 땅의 국민일지니, 그 모든 것들이 네가 사랑해야 할 대상이니라.

너는 네 발에 밟히는 이름 모를 풀 한 포기부터, 남과 북으로 잘린 것이 부족해 경상도와 전라도로 나뉘는 정치 지형에 이르기까지 두루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조국을 작렬하는 8월의 태양보다도 더 뜨겁게 사랑하고, 나아가 세상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며 인류 발전에 기여하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딸아.

태풍이 북상중이라고 한다. 내일 새벽이나 아침쯤 남해안에 상륙할 것이라는구나. 예상 진로를 보니 마치 너희들의 국토대장정 행로를 따르는 것 같다.

소형 태풍이라지만 많은 비도 동반한다니 안전사고에 각별히 유의하고, 최종 목적지인 거제도까지의 장정을 낙오 없이 모두가 건강하고 즐겁게 마무리하기를 기원한다.


너를 사랑하는 아빠가.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