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내미 이야기

아빠, 우린 신문 안 바꿔요?

몽당연필62 2008. 6. 8. 00:49

고3인 큰애는 신문을 꼼꼼하게 보는 편입니다. 학교에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밤 12시가 가까운데, 그때서야 아침 신문을 보는 것이지요. 논술에 대비하는 것은 물론 시사에 대한 견문도 갖춰야 하니 신문을 안 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고1인 작은애는 아직 신문을 보는 둥 마는 둥 하는 편이고요.

 

집에서 신문을 보기 시작한 것은 큰애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나서였습니다. 학교에서 신문을 이용한 학습을 실시했거니와, 폐지 수집에도 참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택한 신문이 같은 값이면 두툼한, 즉 요즘 많은 분들이 보지 말자고 하는 신문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애들이 초등학생이던 때 신문의 용도는 사실상 폐지 제출용이 절대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우린 보급소의 권유가 아닌 자발적 독자였기에 자전거 등의 경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물론 처음 몇 달간 공짜로 봤던 기억은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는 참으로 우직하게 벌써 10년도 넘게 그 신문만 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찌라시'라고 비난하는 것을 모르는 바 아니고, 저 역시 그 신문의 논조를 싫어하면서도 바꿀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말이죠.

 

그런데 어젯밤 신문을 보던 큰애와 대화를 하게 됐습니다.

"아빠, 우린 ○○신문으로 안 바꿔요?"

"왜?"

"아빤 맨날 말씀으로는 ○○일보를 쓰레기라고 욕하면서도 보고 계시잖아요."

"바꾸자는 이유가 아빠가 이 신문을 싫어해서냐, 네 눈에 이 신문의 문제점이 보여서냐?"

"둘 다요!"

대화가 짧았지만 신문을 바꾸자는 결정은 쉽게 났습니다. 이제 이 결정을 실행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큰애가 신문을 바꾸자고 제의한 데는 평소의 제 언행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도 보이는, 예를 들어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고기의 수입을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배후가 있다는 듯 운운하는 작태가 결정적으로 아이를 화나게 했을 것입니다. 신문에 난 것은 모두가 사실이고 진실이라 믿었는데, 자신과 친구들에게 없는 배후를 신문이 있다고 하니 화가 날 수밖에요.

 

아이들이 진실과 거짓을 분별할 수 있을 만큼 자란데다 시국을 판단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내심 대견하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이제 아이들은 우리 사회에 널린 더 크고 더 많은 거짓들을 알아가게 될 테니까요. 어른으로서 긴장이 됩니다. 내 아이들에게 그리고 우리 청소년들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겠다는 긴장입니다. 언론과 함께 정치권에서도 크게 긴장해야 할 일입니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