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내미 이야기

두 여고생, 40대 아저씨의 환상을 깨다

몽당연필62 2008. 9. 11. 10:34

두 여고생이 40대 아저씨의환상을 깨다니...? 다름아닌 저희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40대 후반인 제가 여고생인 두 딸에게 속아도 아주 단단히 속았으니까요. 무슨 사연이냐고요?

 

우리들 아빠 세대는 남녀가 유별한 중고 학창을 보냈습니다. 남학생은 까까머리에 검정 교복이었고, 여학생은 귀가 드러나는 단발에 하얀 칼라가 눈부신 차림이었지요. 시골 면소재지에 있는 중학교를 다녔는데, 남녀 공학이긴 했으나 남학생 학급과 여학생 학급이 따로 편성되어 있었습니다. '이성교제'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고 있었고요. 고등학교를 다닌 중소도시는 아예 남고와 여고가 따로 있어서 공학은 먼 '선진국'의 이야기였습니다.

 

그러니 보통의 학생들에겐 남학생이나 여학생이나 서로에게 신비한 존재일 수밖에요.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고등학교 시절, 여학생은 모두가 단아하고 깔끔하며 청결할 것이라고 저는 생각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요즘 제가 그 시절 세상을 잘못 알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습니다. 바로 앙큼한 두 딸들을 통해서요!

 

 

한 녀석이 잠시 방을 비운 사이 재빨리 증거사진을 찍었다. 어지러운 침대, 책상에 뒤죽박죽인 책들, 더 이상 올려둘 것이 없는 보조책상, 가방을 걸쳐놓고 옷을 앉혀놓은(?) 의자...

 

지금 큰애가 고3이고 작은애가 고1입니다. 둘 다 남녀 공학에 다니고요. 이녀석들 키울 때, 자라면 이쁘고 정숙한 숙녀가 될 것이라는 기대로 참 행복했습니다. 학교다닐 때 상상했던 것처럼, 단아하고 깔끔하며 청결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책상은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이거야 원 전쟁이나 태풍이 휩쓸고 간 것도 아니고... 이러니 무슨 물건 하나 찾으려면 또 온 방을 뒤집어놓을 수밖에.

 

하지만 방을 들여다보면 정말 가관입니다. 옷은 아무렇게나 벗어서 던져놓고, 침대는 그 용도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어지럽습니다. 책상 역시 쓰잘데없는 온갖 잡물이 점령해 공부하는 폼이라도 잡으려면 식탁을 이용합니다(그나마 식탁도 절반은 책이나 연습장들이 점령해버려 밥 먹을 때마다 불편합니다). 

 

방문 쪽 광경 또한 가관이다. 문 손잡이는 교복치마 옷걸이로 변신한 지 오래고, 방바닥은 잡물 보관소나 다름없다. 양말은 아무렇게나 벗어던져놓았으며 선풍기, 헤드폰, 카세트, 드라이어 등의 전선이 어지럽게 꼬여 있다.

 

아니, 여고생들이 뭔 방귀는 또 그렇게 독하게 뀌어댄답니까? 두 녀석이 소리의 크기와 냄새의 강도를 경쟁이라도 하는지 아빠 앞에서도 거리낌없이 가스를 배출하곤 합니다. 혹시 남학생들 앞에서도 그러는게 아닌가 싶어 심히 걱정이 됩니다. 그리고 목욕탕에 가면 누가 잡아먹는대요? 애엄마가 목욕탕에 가자고 하면 듣는 체도 하지 않습니다. 다른 댁들도 따님이 다 그런가요??

 

여학생, 특히 여고생들은 깔끔하고 단정하며 우아할 것이라는 아빠의 믿음을 여지없이 박살내버린 딸내미들을 공개합니다. 이놈들이 바로 정리할줄 모르고 청소할줄 모르며 방귀쟁이들로서 아빠의 기대와 믿음을 농락한 제 딸들입니다!!! 

 

 

큰애(오른쪽)가 4살, 작은애가 2살이던 해 애엄마가 아이들을 안고 업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을 잘라 편집했다. 너희들이 이렇게 정리 안되는 여고생으로 자랄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놈들아!!!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