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장마, 우순풍조(雨順風調)를 기원하며

몽당연필62 2009. 7. 9. 14:57

장마, 우순풍조(雨順風調)를 기원하며


이번 장마, 해마다 오는 장마, 부디 우순풍조하기를. 그리하여 알맞게 물기를 빨아들인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라 알알이 여물고, 사람과 짐승과 생명 있는 온갖 것들도 저마다 안온한 가운데 근심 없이 여름을 날 수 있기를. 우산장수는 우산 많이 팔아 돈 벌고, 나막신장수는 기대만큼 나막신이 팔려 곤궁해지는 일 없기를….


장마철이다. 기상청은 지난해 장마 종료 시점을 예보하지 않겠다고 공식 발표하더니, 올해도 장마가 언제 끝날지 명확하게 말하지 않은 것 같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6월 하순에 시작된 장마가 8월 초순쯤 끝나니(7월 하순까지를 장마 기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통상적인 예보’만 해도 그러려니 하련만, 이제는 그나마의 위험부담도 마다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잦은 기상이변과 빗나간 예보에 시달린 기상청의 고육지책일 터이다.

정말 통상적인 경우 우리나라의 장마는 장마전선이 6월 하순 남쪽 해상에서부터 비를 뿌리면서 점차 북상해 한반도를 통과하여 소멸하기까지 한달 남짓 진행된다. 이 기간에는 자주 그리고 많은 비가 내린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서울의 경우 1971년부터 2000년까지 30년 동안 관측한 결과 연간 평균 강수량은 1344.3㎜였는데, 장마 기간에 해당하는 6월 하순~8월 초순의 평균 강수량이 524.4㎜로 39%를 차지했다.


일년 강수량의 3분의 1이 장마철에 집중

물론 장마철이라고 해서 날마다 비가 오는 것은 아니어서 햇볕 나는 날이 적지 않고, 비가 거의 내리지 않는 마른장마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또 지역에 따라 장마 기간이 다르고 강수량도 차이가 난다. 최근 35년 동안의 기후 자료를 보면, 1998년 제주도가 무려 47일 동안이나 장마철에 들었는가 하면 1973년 중·남부지방은 불과 6일 만에 장마가 끝났다는 것이다.

 

1971~2000년 30년 동안의 기상 자료를 보면, 연간 평균 강수량이 1344.3㎜였는데 한달 남짓한 장마철에 39%인 524.4㎜가 쏟아졌다. 장마철에는 인명과 재산을 잃는 피해가 자주 발생한다.

 

어쨌든 대체로 일년 강수량의 3분의 1 이상이 장마철에 집중되니, 이 한달 남짓한 기간은 우리나라의 우기(雨期)라고 해도 어색할 것이 없다. 실제로 장마철에는 집중호우가 자주 발생하고, 이 때문에 귀중한 목숨과 재산을 잃는 일도 드물지 않게 일어난다. 농작물이 침수되어 애태우는 농민들 또한 얼마나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가. 워낙 고온다습하여 수인성 전염병이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이러한 피해만 없다면 장마철은 사실 안온한 휴식의 기간이다. 지금이야 생활양식이 도시화해 일상이 날씨의 영향을 덜 받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농사를 짓던 예전에는 비가 오면 바깥일을 삼가고 집 안에서 지냈다. 게다가 보리 베기, 마늘·양파 캐기, 모내기 등 산더미 같던 일들도 모두 마쳤으니 고된 허리를 펴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휴식도 장마가 시작되기 대비를 충분히 해두었을 때 누릴 수 있다. 방 안으로 빗물이 새지 않게 지붕의 깨진 기왓장을 교체하고, 비바람에 담장이 허물어지지 않게 단속하며, 수채가 막히지는 않았는지 확실하게 손보고, 논의 물꼬도 미리 낮춰놓아야 한다. 또 수확한 보리는 잘 말려서 곡간에 들이고, 마늘은 한 접씩 엮거나 묶어서 비가 들치지 않는 처마 밑에 매달아놓는 것도 중요한 비설거지이다.

이윽고 장마가 시작되어 바깥은 질척거리고, 집에서 특별히 할 일은 없고, 방 안은 눅눅하고… 하여 이 시기에는 또 하나의 독특한 생활문화가 형성되니 바로 장마철의 주전부리이다. 마침 눅눅한 실내를 고슬고슬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가끔 군불을 때주어야 했는데, 이 불을 허실하지 않고 보리나 콩을 볶아 먹었고 전을 부치거나 수제비를 끓이기도 했다. 또 비를 맞으며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상추를 뜯고 풋고추를 따 쌈을 싸서 먹었다. 마루에 앉아 주룩주룩 내리는 비를 보면서, 혹은 마당가에 퍼렇게 낀 물이끼를 보면서, 볶은 보리를 빻아 만든 미숫가루를 먹는 것도 별미였다.


우산장수도 나막신장수도 웃는 장마 되기를

장마야 어차피 인력으로 피할 수 없는 것이니 기왕에 오는 비가 딱 바깥일만 못하고 집 안에서 놀기 좋게 먼지잼이나 가랑비 혹은 이슬비 정도면 좋으련만, 그것이 어디 사람 사정 봐주는 것이던가. 때로는 작달비가 좍좍 쏟아져 다랑논의 둑을 무너뜨리고 사태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런 때면 농부들은 우비를 입고 나가 무너진 논둑에 말뚝을 박아 둑을 쌓고 토사에 묻힌 자식 같은 벼를 일으켜 세워야 했다. 장마철이 아니더라도 비만 오면 본능처럼 이 비가 약비인지 궂은비인지부터 따져보는 것이 습관인 것은, 비가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면서도 지나치면 해가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다.

 

장마 동안 비가 알맞게 내려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사람들도 생활에 불편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비는 동물이든 식물이든 모든 생명체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지만, 때로는 이들의 생명을 위협하기도 한다. 비가 있어 만물이 살고 비로 인해 만물이 목숨을 잃기도 하는 것이다.

주룩주룩 내리는 장맛비를 보며 마음속으로 천지신명께 기원해 본다. 이번 장마, 해마다 오는 장마, 부디 우순풍조(雨順風調) 하기를. 그리하여 알맞게 물기를 빨아들인 곡식들이 무럭무럭 자라 알알이 여물고, 사람과 짐승과 생명 있는 온갖 것들도 저마다 안온한 가운데 근심 없이 여름을 날 수 있기를. 우산장수는 우산 많이 팔아 돈 벌고, 나막신장수는 기대만큼 나막신이 팔려 곤궁해지는 일 없기를….


글 : 몽당연필 / 사진 : 농민신문사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