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나는 '바이올렛'보다 '오랑캐꽃'이 좋다

몽당연필62 2009. 4. 20. 20:36

안방극장이 불륜, 출생의 비밀, 복수 등 자극적인 소재로 도배되고 있는 가운데, 주말 밤마다 종가의 전통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 SBS 특별기획 ‘가문의 영광’이 지난 19일 54회 방송을 끝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 것’을 생각해보게 했던 드라마 ‘가문의 영광’

윤정희와 박시후를 중심으로 하고 신구·서인석·나영희·연규진·서권순·김영옥·전노민·김성민·마야 등이 출연했던 ‘가문의 영광’은 최근 많은 드라마들이 비상식적인 내용 때문에 ‘막장 드라마’로 불리는 가운데서도 대가족인 종가 구성원들의 따뜻한 모습을 그려 호평을 받았다.

 

SBS 드라마 '가문의 영광' 홈페이지 캡처 사진.

 

줄곧 20%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유지한 이 드라마는 특히 시청자들에게 혼례를 비롯한 전통 예법을 자주 보여주는가 하면,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사실은 피가 다른 사람이 종손이 되어 대를 이었음에도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시청자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었다.

종가를 비롯한 우리 전통문화, 즉 ‘우리 것’을 무조건 지키는 것이 반드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지키고 버리는 것과 별개로, 우리 것을 아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가문의 영광’은 우리 것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꽤 괜찮은 드라마였던 것이다.


‘바이올렛’은 알아도 ‘오랑캐꽃’은 몰랐다

며칠 전 Sun'A님의 ‘아주 작은, 동네 이야기(http://dongnae.tistory.com)에 들렀다가 ‘오랑캐꽃’에 대한 글과 사진을 보게 되었다. 오랑캐꽃의 이름은 자주 들었으나 어떤 꽃인지를 몰랐는데, 그것은 뜻밖에도 어렸을 때 동네에 지천으로 피어나던 제비꽃이었다. 나는 제비꽃을 ‘바이올렛’이라고 말하는 데는 익숙했지만, 그것이 ‘오랑캐꽃’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블로거 Sun'A 님(http://dongnae.tistory.com) 제공해 주신 오랑캐꽃(제비꽃) 사진.

 

나(우리)는 이렇게 우리 것 또는 우리 전통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거나 불편해하면서, 바다 건너에서 온 것에는 멋있거나 합리적이라며 열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근본을 모르는 짓’이라고 하던가.

적절한 비유는 아니겠으나, 드라마 ‘아내의 유혹’이 ‘바이올렛’이라면 ‘가문의 영광’은 ‘오랑캐꽃’이 아닌가 싶다. ‘아내의 유혹’과 ‘바이올렛’은 시청률이 높고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가문의 영광’과 ‘오랑캐꽃’은 어쩐지 고루한 것 같고 뒷전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이제는 종영한 드라마 ‘가문의 영광’과 제비꽃의 다른 이름 ‘오랑캐꽃’이 좋다. ‘가문의 영광’은 사람 냄새나는 잔잔한 드라마여서 좋고, ‘오랑캐꽃’은 우리 민족의 아픈 사연을 담고서 봄이면 강인하게 피어나는 꽃이어서 좋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