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한옥, 고향처럼 살가운 우리의 집

몽당연필62 2009. 3. 15. 12:27

 한옥, 고향처럼 살가운 우리의 집


대문 틈새로 들여다보니 활처럼 휜 지붕의 용마루가 제법 길게 누웠다. 여인네 치마폭 들추는 바람처럼 추녀는 처마를 치켜 올리고, 기와를 인 담장 아래엔 매화가 한창이다. 툇마루 밑 섬돌의 신발을 보며, 빗장을 지르지나 않았을까 조심스레 문을 민다. 끼이익, 나무대문이 알아서 내는 기척에 안에서는 에헴 소리를 한다. 소박하되 우아하고 고즈넉하되 살가운 고향 같은 집, 우리의 한옥이다.


생명을 보듬는 곡선의 아량

흔히 한옥의 아름다움을 가리켜 선과 절제의 미학이라고 한다. 외관을 아우르는 부드러운 곡선과, 치장을 하지 않아도 집 자체가 풍기는 기품이 있기 때문이다. 서양 건축물이 직선적이고 날카로우며 단면적인 것에 비해 우리 한옥은 동글고 부드러우며 입체적인 특징을 지녔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지붕. 우선 집과 하늘의 경계를 이루는 용마루가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누워 있다. 용마루는 지붕과 지붕이 잇닿는 맨 윗부분에 암키와를 엎어서 켜켜이 쌓고 맨 위에 수키와를 얹어 한 채의 집을 완성하면서 빗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한다. 규모가 작은 집이나 맞배지붕은 용마루가 평평하기도 하지만, 합각지붕의 용마루(↑)는 어김없이 합각 부분이 가운데 부분보다 치솟았다.

 

 

지붕 자체도 암키와와 수키와가 규칙적으로 이어지면서 무수한 골과 등의 곡선을 만드는데, 처마 끝을 암막새와 수막새로 마감해 음양의 조화까지 이뤘다. 그래서일까, 와송(↑)이나 이끼 가 한옥의 지붕을 보금자리 삼아 소중한 생명을 틔우기도 한다.

추녀가 받쳐 올려 자연스럽게 휜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도 빼놓을 수 없는 한옥의 아름다움 가운데 하나다.


질감이 살아 있는 나무의 예술

한옥의 대표적인 골조는 나무와 흙이다. 도시에 살며 아토피를 비롯한 환경 관련 질환을 앓던 사람이 농촌이나 한옥에 살게 되면 곧 낫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는 한옥의 재료가 가장 자연적이고 친환경적인 것이기 때문이리다.

 

 

방바닥과 벽 등을 이루는 흙은 벽지나 회에 가려지기 십상이지만, 대청마루에서 보이는 대들보(↑)를 비롯해 기둥과 서까래 등은 알몸으로 고운 무늬와 결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한옥 특유의 운치를 더하고 있다. 대청마루 또한 나무를 깎아 놓은 널빤지 아니던가.

 

 

대들보는 그 크기와 위용이 먼저 보는 이를 압도하거니와, 기둥과 도리(↑)에 연결된 부위를 보고 있노라면 인간이 나무를 가지고 이룰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무를 깎고 홈을 파 끼우고 맞췄는데, 그 기법이 오묘할 뿐만 아니라 쇠못 하나 박지 않았음에도 백 년이고 이백 년이고 너끈하다.

게다가 기둥은 모양새도 다양해서 배흘림기둥과 민흘림기둥이 있는가 하면, 둥근기둥·네모기둥·팔각기둥이 각각의 멋을 자랑한다. 나란히 늘어선 서까래들 또한 힘들게 지붕을 떠받치고 있을 터인데도, 더운 날 그늘을 주고 비 오는 날에는 안으로 들지 않아도 몸 피할 공간을 주니 아름다움과 효용이 어우러진 지혜의 산물이다.


단절은 소통의 다른 이름이구나

문이나 창은, 그것이 대문이거나 방문이거나 불발기창이거나 봉창이거나 여닫이거나 미닫이거나, 소통의 장치이면서 또한 단절의 도구이기도 하다. 필요할 때는 이곳을 통해 출입하고 열어두지만, 언제든 닫거나 걸어 잠가 외부와 단절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기능성만을 본다면 한옥의 문과 창은 양옥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한옥의 문과 창은 단절의 상태에서도 항상 소통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이다. 대문(↑)의 경우 문과 설주 또는 문의 널빤지들 사이에 틈이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대문을 열면 열에 여덟아홉은 삐걱거리는 소리가 노크를 대신해 기척을 전달한다. 대문이 얌전하여 소리를 내지 않더라도, 저벅저벅 마당을 걷는 소리나 에헴 헛기침 한 번으로 종이를 바른 방문이나 창 너머로 객이 들었음을 알릴 수 있다.

 

 

방안에서는 문틈으로, 또는 침 묻힌 손가락을 갖다대기만 하면 구멍이 뚫어지는 창호지(↑)를 통해 바깥을 살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가. 특히 창호지는 소리를 거의 완벽하게 통과시키는 것은 물론 빛을 은은하게 받아들여, 밤이라도 달이 있으면 불을 켜지 않고 자리끼를 찾거나 걷어찬 이불 건사하는 데에 불편함이 없다.

여러 모양으로 멋을 낼 수 있는 문과 창의 살은 한옥의 아름다움의 하나로 꼽혀온 지 오래며, 돌쩌귀와 장석 그리고 대문의 빗장 등도 실용성에 멋을 더해준다.


한옥이 준 덤, 마루·장독대·굴뚝·담

한옥은 폐쇄적인 공간과 개방적인 공간이 조화를 이룬 건축 양식으로 꼽힌다. 방이나 부엌, 광 등이 닫힌 공간이라면 마루는 열린 공간이라 할 것이다. 마루는 다시 방과 방을 연결하면서 한쪽이 트여있는 대청마루와, 방에서 마당으로 곧바로 이어지는 곳에 놓인 툇마루로 나눌 수 있다.

대청마루는 거실의 기능을 상당부분 할 수 있는데,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잠도 잘 수 있는 넓은 공간이다. 반면 툇마루는 방문 앞 벽면에 옆으로 길게 놓여 있기 때문에 나고 들 때 신을 신거나 벗고, 잠시 앉아 쉴 수도 있다. 툇마루 아래 공간은 개가 차지하고 있거나 연장을 보관하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한다.

 

 

장독대(↑)도 한옥에서 볼 수 있는 부속 시설이라 할 수 있다. 대개 장독대는 바람이 잘 통하고 양지바른 곳에 두었는데 그 크기로 살림의 규모나 가풍을 짐작할 수 있다.

 

 

저녁 무렵 모락모락 솟아나는 굴뚝(↑)의 연기와 밥 익는 냄새는 한옥을 한옥답게 하는 요소가 된다. 돌담이거나 토담이거나, 머리를 넘거나 허리를 넘거나, 한옥은 담장(↓)도 둘러야 제격이다. 그 담장 위로는 따뜻한 정이 담긴 인절미가 오가고, 아녀자들의 수다와 이런저런 소문들도 넘나든다.

 

 

속도와 효율을 좇는 사람들이 언제부턴가 슬그머니 뒷전으로 밀어내고 있지만, 한옥은 우리가 수천 년의 역사를 통해 발전시켜온 소중한 문화이다. 몸은 비록 도시의 시멘트 숲에 살고 있어도 언제든 마음을 뉘어놓고 쉬는 집, 바로 우리의 한옥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