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강릉, 동해는 푸르고 오죽헌 대나무는 검다

몽당연필62 2009. 5. 15. 15:40

강릉, 동해는 푸르고 오죽헌 대나무는 검다


언젠가부터 강원도 강릉에 가면 경포대부터 찾아봐야지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것은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전축으로 즐겨 들으시던 김세레나 씨의 ‘성주풀이’ 가사 중 ‘강릉 경포대 달구경 가세’라는 부분 때문이었다. 그때는 강릉이나 경포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몰랐건만, 달구경은 경포대에서 하는 것이 제격이라는 생각이 본능처럼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섯 개의 달이 뜨는 경포대, 곳곳에 드리워진 백사장

경포대로 가려면 먼저 강릉 시가지 북동쪽에 있는 경포호를 찾아야 한다. 경포호는 원래 동해바다가 한 발짝 들이민 만(灣)이었는데 바다 쪽에 모래언덕이 형성되면서 자연스럽게 땅에 갇힌 호수가 되었다고 한다. 수심은 1~2m로 얕지만 둘레 길이가 8㎞에 이른다.

 

 

경포호에 이르니 호수를 빙 둘러 심어진 벚나무들이 마음껏 꽃을 피웠는데 그 풍경이 말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가 되어 눈에 들어온다. 더구나 바람이 불 때마다 눈발처럼 흩날리는 꽃잎들은 봄의 향연이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인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경포호 주변에는 수많은 누각과 정자가 있는데 이들 중에서 서쪽 언덕 위에 있는 경포대가 관동팔경에서도 으뜸으로 꼽혔을 만큼 유명하다. 고려 충숙왕 13년(1326년)에 처음 세운 경포대는 하늘의 달, 호수의 달, 바다의 달, 술잔의 달, 임의 눈에 비친 달 등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있다는 낭만적인 곳이다. 이윽고 경포대에 오르니 경포호의 풍경이 한눈에 펼쳐진다. 한낮이라 다섯 개의 달을 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뿐…. 경포대 지척에는 신사임당 동상이 세워져 있고 14개의 한시(漢詩) 비를 세워 조성한 조그마한 공원도 보인다.

 

 

경포호 바로 너머는 길이 약 2㎞, 폭 80m의 백사장이 펼쳐지고 푸르디푸른 동해바다의 수평선을 넘어온 파도가 끝없이 부서지는 경포해수욕장이다. 경포해수욕장은 하루 100만 명까지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규모가 큰데, 특히 여름철 성수기에는 각종 축제와 공연이 펼쳐져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안겨주곤 한다.

 

 

동해안을 낀 지역치고 해수욕장 없는 곳이 있으랴만 강릉은 그 중에서도 유난히 많은 해수욕장들을 거느리고 있다. 경포해수욕장을 중심으로 했을 때 위쪽으로는 주문진해수욕장·영진해수욕장·사천해수욕장 등이 있고, 아래쪽으로는 안인해수욕장·정동진해수욕장·옥계해수욕장 등이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도 무수한 해수욕장과 비록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을 갖지는 못했지만 수영복만 입으면 곧바로 해수욕장이 되는 백사장들이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제 곧 여름이 오면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이 이 바닷가를 찾아와 백사장의 발자국만큼이나 많은 사연과 추억을 만들게 되리라.

그러나 강릉의 해안은 때로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해안의 둔덕이나 도로변에 철책이 설치돼 백사장으로 접근할 수 없는 곳이 많기 때문이다. 바로 눈앞인데도 철책 너머로 바라봐야하는 바다는 남북분단이 현실임을 차갑게 일깨우면서 가슴을 퍼런 바닷물보다도 더 시리게 만든다.


다복한 현모양처 신사임당과 불우한 천재시인 허난설헌

강릉에 온 사람들이 많이 들르는 곳으로 죽헌동의 오죽헌(烏竹軒)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오죽헌은 주위에 줄기가 검은색을 띤 대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어 붙여진 이름인데, 현모양처의 표상인 신사임당(1504∼1551)과 그의 아들이며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인 이율곡(1536∼1584)이 태어난 집이다.  

 

  

 

오죽헌 입구인 자경문(自警門)에 이르니 먼저 신사임당이 올해부터 발행되는 5만 원권 지폐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안내판이 보인다. 고액권 지폐의 주인공 인물 선정 때 일부에서 신사임당이 21세기 여성상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며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했지만, 그가 성품이 어질고 효성이 지극하며 글과 그림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에도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기에 영원한 한국의 어머니로 추앙받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니던가. 오만 원권 지폐가 발행되면 신사임당은 현재 오천 원권 지폐의 주인공인 이율곡과 더불어 모자(母子) 모델이 되는 셈이다.

 

 

자경문 안쪽으로 펼쳐진 광장의 오른쪽에 놓인 돌계단을 오르면 우리 민족사에서 가장 큰 존경을 받는 어머니와 학자가 태어난 집, 오죽헌이 보인다. 이율곡이 태어난 방의 문 위에는 몽룡실(夢龍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것은 신사임당이 집에 용이 서려있는 꿈을 꾸고 율곡을 낳았다는 데서 연유한다. 오죽헌 옆에는 율곡 이이의 사당인 문성사(文成은 인조가 이율곡에게 내린 시호이다)가 세워져 있고, 다른 지역에서는 보기 어려운 검은 줄기의 대나무들이 이 일대에 숲을 이루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곳 오죽헌이 이율곡의 친가가 아닌 외가, 즉 신사임당의 친정이라는 점. 율곡의 친가는 경기도 파주에 있었는데 강릉 외가에서 태어났으니,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당시의 사회규범에 비춰볼 때 율곡이 외가에서 태어나고 다섯 살 때까지 자란 것은 파격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신사임당의 친정에 아들이 없기도 했거니와 필시 시가와 남편의 개방적인 도량에 힘입어 가능했을 터이다. 이율곡은 이러한 가풍에서 천재로 성장해 성리학의 거두가 되었으며 국가의 위기를 내다보고 십만 양병론을 주장하는 혜안을 갖추게 되었다.

 

 

오죽헌을 나와 광장 한쪽에 있는 율곡기념관과 바로 곁의 강릉시립박물관을 둘러보고 다음 행선지로 향하려는데 솟대 하나가 눈에 띈다. 기다란 장대 위에 나무로 깎은 오리 형상의 새 세 마리를 앉혀놓은 ‘진또배기’라는 것이다. 진또배기는 마을을 풍재·수재·화재 등 삼재로부터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특히 바다와 접한 강문동 주민들이 액을 막고 풍농·풍어를 기원하고자 진또배기를 모시고 천상의 신들에게 제를 올려왔다고 한다.

강릉은 신사임당 외에 또 한 사람의 유명한 여성을 배출한 고장이다. 신사임당보다 59년 늦게 태어난 천재 여류시인 허난설헌(1563~1589)이 그 주인공. 허난설헌은 본명이 초희(楚姬)이며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여섯 해 위 누이인데, 그의 생가로 알려진 초당동 집터(그가 실제로 이곳에서 태어났는지는 명확하지 않다)에 가옥을 비롯한 건물들이 남아 있다.

 

 

허난설헌은 명문가의 딸로 태어나 서얼 출신의 스승 이달(李達)에게서 시를 배웠고 열다섯 살 때 결혼했으나, 시집 식구들과 불화를 겪은 데다 두 아이마저 일찍 잃는 등 결혼생활은 매우 불우했다고 한다. 스물일곱 해의 짧은 생애를 살았던 그는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섬세하고 애상적인 필치로 노래했으며 체제 비판적이고 진보적인 시풍도 보여주었다. 작품으로는 시에 ‘유선시(遊仙詩)’, ‘빈녀음(貧女吟)’ 등 142수가 있고, 가사(歌辭)에 ‘원부사(怨婦辭)’, ‘봉선화가’ 등이 있다. 이 시들은 중국에서 ‘난설헌집’으로 간행되어 격찬을 받았고 일본에서도 애송되었다니, 허난설헌은 원조 한류스타였다고나 할까.


임금 사는 서울 경복궁의 정 동쪽에 있어 정동진

강릉의 관광지는 크게 경포권·정동진권·대관령권·주문진권·시내권으로 나뉜다. 지금까지 둘러본 곳은 경포권에 속하는 관광지들. 이번에는 바다를 질리도록 볼 수 있는 정동진권 관광지로 접어들었다.

 

 

강릉 시가지에서 남쪽의 정동진을 향해 내려가다 보면 강동면 안인진리에 이르러 통일공원을 만나게 된다. 통일공원은 통일안보전시관과 함정전시관으로 나눠 조성되어 있는데 산쪽의 통일안보전시관은 약 1000㎡(304평) 규모의 배 모양 건물에 국난 극복사, 6·25 관련 자료, 북한군 침투 장비, 이산가족 찾기, 통일환경의 변화 등의 전시시설을 갖추고 있다. 또 바다에 접한 함정전시관은 1945년 미국 해군 함정으로 건조되었다가 1972년 우리 해군이 인수했고 1999년 퇴역한 3000톤급 ‘전북함’을 전시관으로 개조해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함정 내부로 들어가면 함포는 물론이고 280여 명의 승무원들이 생활하던 숙소와 이발실, 식당 등의 공간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또 전북함 옆에는 1996년 9월 25명의 무장간첩을 태우고 동해안으로 침투했다가 좌초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북한 잠수함이 전시되어 안보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통일공원 인근에 소나무 정원, 습지 정원, 논밭 정원 등 자연 훼손을 최대한 방지하여 인간과 환경 그리고 예술이 공존하도록 만든 예술 정원 하슬라아트월드(‘하슬라’는 고구려 때 강릉의 명칭)가 있고, 다시 지척에는 6·25남침사적탑과 민간인희생자위령탑이 세워져 있다. 38선에서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정동진리 초입에 이들 탑이 세워진 것은 전쟁이 발발하던 당일 전면전에 1시간 앞선 새벽 3시 이곳에 북한군이 최초로 상륙 침투했고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기 때문에 그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이다.

 

 

이윽고 정동진리 마을로 접어들었다. 정동진은 임금이 있는 서울 경복궁 광화문의 정(正) 동쪽에 있는 나루터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오랜 세월 존재조차 희미했던 이 마을은 1995년 방송된 드라마 ‘모래시계’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갑자기 세인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바닷가 기차역과 소나무를 배경으로 촬영한 여자 주인공의 장면이 인상적이었던 데다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철도와 기차역이라는 사실까지 겹쳐져 관광객이 늘기 시작했던 것이다.

 

 

 

정동진역에서 조금 떨어진 정동진2리 모래시계공원에는 지름 8m, 시계 속의 모래 무게 8t으로 세계 최대 규모인 모래시계가 설치되어 눈길을 끈다. 이 시계는 위쪽의 모래가 아래쪽으로 모두 떨어져 위치를 바꾸는 데 1년이 걸려, 해마다 1월 1일 0시에 반 바퀴를 돌려 위아래를 바꾼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바닷가 해발 60m 언덕 위에 대형 호화 유람선 형상으로 조성한 썬크루즈리조트가 눈앞에 보인다.

 

 

조용하던 어촌마을 정동진은 단 한 편의 드라마로 인해 관광지 개발의 활기 속에 해돋이 조망의 명소로도 각광받게 되었으니, 지난 10년 남짓한 세월 동안 정동진은 상전벽해(桑田碧海)나 다름없는 변화를 겪었다고 하겠다.

정동진과 옥계 사이 6㎞ 남짓한 해안도로는 신라 향가 ‘헌화가’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새로 부임하는 강릉태수의 아내 수로부인이 이곳에서 점심을 먹다 벼랑에 핀 철쭉을 보고 갖기를 원하자 다들 무서워서 나서지 않는데, 소를 끌고 가던 노인이 자신이 꺾어 바치겠다는 노래를 부르고는 수로부인의 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헌화로는 굴곡이 심하고 험했으나 지금은 깔끔하게 포장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바다와 어우러진 기암괴석이 절경을 이뤄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는다. 본디 아름다운 길이었기에 이처럼 애틋한 사연도 생겨나게 되었으리라.

 

 

강릉은 지역 전체가 커다란 관광단지나 다름없어서 하루에 모두 둘러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번 여행이 경포권과 정동진권에 한정되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래도 아쉽지 않은 것은, 대관령권·주문진권·시내권 등 나머지 관광지를 둘러보기 위해 아름다운 고장 강릉을 언젠가는 다시 찾게 되리라는 희망도 함께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