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삼척, 수려한 풍광에 깃든 삶의 전통과 태고의 신비

몽당연필62 2009. 7. 8. 16:38

삼척, 수려한 풍광에 깃든 삶의 전통과 태고의 신비


7월, 바쁜 일상을 잠시 접어두고 어디론가 떠나고픈 여름이다. 그렇다면 바다와 내륙 관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 어떨까. 삼척은 가슴이 확 트이는 동해바다의 수평선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강원 산간지방만의 독특한 주거양식인 너와집,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석회동굴 등을 둘러볼 수 있는 고장이다. 바다 말고도 볼거리가 얼마나 많은지, 삼척에 가보면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



강원도 동남부에 위치해 태백산맥을 등지고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삼척(三陟)시는 1186㎢의 면적에 4동2읍6면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졌으며 인구가 7만 명을 조금 넘는다. 경지면적이 73㎢로 전체 면적의 6%에 불과할 만큼 논밭이 적지만, 해안선 곳곳의 백사장과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석회동굴 등 휴양과 관광 자원은 풍부한 고장이다.

 

송강 정철도 반해 ‘관동별곡’에서 노래한 죽서루

삼척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곧장 푸른 물결이 넘실대다 하얗게 부서지는 백사장으로 가기도 하지만, 성내동에 있는 누각 죽서루(竹西樓)를 맨 먼저 찾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죽서루는 언제 건립되었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 명종 때의 문인 김극기가 쓴 죽서루 시가 전하고 1403년 삼척부사 김효손이 누각을 고쳐 지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12세기 후반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오십천이 감돌아 흐르는 절벽 위 자연 암반에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로 세워져 있고 주위에 왕죽과 오죽 등 대나무들이 숲을 이뤘는데, 송강 정철도 그의 대표적인 가사 ‘관동별곡’에서 죽서루를 노래했을 만큼 풍광이 아름답다. 죽서루라는 이름은 누각의 동쪽에 대숲(↓↓)이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삼척항의 작은 동산 육향산에 세워져 있는 척주동해비(陟州東海碑)는 바닷가 사람들의 안전을 기원하는 마음이 담긴 유물이다. 삼척은 파도가 심해 조수가 읍내까지 침범하는 등 자주 피해를 입곤 했는데, 1661년 삼척부사 허목이 동해비를 세우니 바다가 조용해졌다고 한다. 동해비는 당초 정라진 앞의 만리도에 세워져 있었으나 풍랑으로 파손되었고, 1710년 이를 모사하여 현재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죽서루와 척주동해비를 둘러보고 바닷가로 길을 잡았다. 삼척은 동해를 접하며 드리워진 해안선의 길이가 82㎞나 되는데, 해안선 자체가 공원이요 유원지라 할 만큼 아름답고 잘 단장된 곳이 많다.

 

증산동 증산해수욕장 옆에는 수로부인공원()이라는 아담한 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수로부인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의 주인공. 설화에 따르면 그는 신라 성덕왕 때 강릉 태수로 부임하는 순정공의 부인으로, 남편과 함께 강릉으로 가던 중 바닷가 정자에서 점심을 먹다가 돌연 나타난 용에게 납치되었다. 이때 지나가던 노인이 가르쳐준 대로 ‘해가(海歌)’라는 노래를 지어 경내의 백성들과 함께 부르며 막대기로 바닷물을 치니 과연 용이 부인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수로부인공원은 해가를 불렀던 터에 임해정이라는 정자를 복원해 조성한 곳이며, 동해시에 속하는 촛대바위 등 절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동해안 곳곳에 드리워진 백사장과 아기자기한 공원들

삼척항 남쪽 정라동에서 교동에 이르는 4㎞ 남짓한 해안지역에는 새천년해안유원지가 조성되어 있다. 이곳 유원지는 지난 2000년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기념하여 타임캡슐을 묻고 세운 소망의 탑, 수준 높은 조형예술품을 감상할 수 있는 조각공원, 음악회가 열리는 야외무대 등이 곳곳에 배치되어 편안한 휴식의 공간이 된다. 새천년해안유원지는 특히 아침 해맞이의 명소이기도 하며, 인근 도로는 굽이굽이 돌 때마다 동해안 절경이 눈앞에 펼쳐져 연인들의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고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남으로 달리다 작은 언덕 하나를 넘어 근덕면으로 접어드니 얼추 보아도 몇 ㎞는 될 듯 길게 드리워진 백사장 하나가 눈앞에 나타난다. 맹방명사십리라고도 하는 맹방해수욕장()이다. 맹방해수욕장은 동해안 해수욕장으로는 수심이 얕은 편이며 송림이 우거져 여름철 가족 휴양지로 적합하다. 삼척에는 이곳 맹방해수욕장을 비롯해 무려 18개의 해수욕장이 있다. 동해시에 인접한 증산해수욕장부터 울진군과 가까운 원덕읍의 고포해수욕장에 이르기까지, 규모가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파도와 백사장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만들면서 사람들의 발길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근덕면 궁촌리에는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재위 1389∼1392)의 무덤이 있어 눈길을 끈다. 공양왕은 조선을 세운 이성계에 의해 1392년 원주에 유폐되었다가 1394년 그의 아들들과 함께 이곳 궁촌리로 옮겨져 얼마 뒤 살해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재미있는 것은 공양왕의 무덤이 있는 삼척에 이성계의 조상도 묻혀 있다는 점이다. 미로면 활기리에 있는 준경묘가 이성계의 5대조로서 목조의 아버지인 양무장군의 묘라고 한다.

 

삼척이라고 하면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황영조(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 마라톤 감독)를 떠올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황영조는 1970년 바닷가 마을인 근덕면 초곡리에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그의 고향마을인 초곡리에는 몬주익 언덕에서 일본 선수를 따돌리고 역주해 금메달을 차지했던 그날의 감동을 되새기고자 만든 황영조기념공원()이 있다. 황영조 선수가 결승 테이프를 끊는 모습의 조형물과 각종 자료를 전시한 기념관 등으로 이뤄진 황영조기념공원에서는 황영조 선수에 관한 자료는 물론 마라톤의 유래와 세계적인 마라토너 등에 대한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어촌 사람들과 산촌 사람들의 삶이 지척에 있다

과거 우리나라에 산신을 섬기든 조상신을 섬기든 민속신앙 없는 마을이 어디 있었으랴만, 원덕읍 갈남리 신남마을에서는 바닷가 마을답게 해신(海神)을 섬겼던 모양이다. 이 마을에는 해신당()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해신당 일대에 만들어진 해신당공원이 참으로 가관이다. 조형물이라고 세워진 것들이 하나같이 남자의 성기인 것이다.

 

여기에는 그럴듯한 전설이 있다. 옛날 신남마을에 살던 처녀가 결혼을 앞두고 파도에 휩쓸려 바다에 빠져 죽었다. 이때부터 고기가 잡히지 않자 사람들은 처녀의 원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어부가 바다에 오줌을 누었더니 풍어를 이뤘고, 이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정월대보름이면 나무로 남근 형상을 깎아 처녀를 달래는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과 속신을 바탕으로 조성된 해신당공원의 조형물들()은 장승·십이지신상·북·벤치까지도 남근 형상이고, 심지어는 통행로 한가운데에 우람하게 서서 꺼떡거리는 물건도 있다. 관람객들을 보니 절대다수가 ‘아줌마’들인데, 공원의 분위기 탓일까 아니면 음양의 이치가 그런 것일까, 아줌마들이 조형물을 만지거나 위에 걸터앉아서 “여기 빨리 사진 좀 박아줘!” 하며 웃고 떠드느라 난리가 아니다.

해신당 옆에는 삼척어촌민속전시관이 있다. 이 전시관에서는 대형 영상수족관을 통해 바다 속 풍경을 감상할 수 있으며, 동해안 어촌 사람들의 전통 생활상과 세계 각국의 성(性) 민속도 접할 수 있다.

 

바닷가 신남마을이 어촌의 민속을 보여주고 있다면 덕항산(1070m) 품에 깊숙이 안긴 신기면 대이리는 산촌 사람들의 생활상을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이 마을에는 지금도 사람이 거주하는 너와집과 굴피집이 있어 강원도 산골의 전통 주거양식을 보여준다. 너와집()은 이엉 대신 소나무나 전나무를 쪼개서 기와처럼 쌓아 지붕을 인 것이고, 굴피집()은 참나무나 떡갈나무의 껍질을 벗겨 적당한 크기로 자른 후 지붕을 인 것이다.

 

이 마을에는 또 개울가에 물방아의 한 종류인 통방아()가 있어 눈길을 끈다. 원추형의 굴피 덧집 안에 설치되어 있는 통방아는 물통에 담기는 물의 무게로 공이가 점차 올라갔다가 물이 쏟아지면 공이가 떨어지면서 방아를 찧는 모습을 보여준다.

 

대이리는 이처럼 강원 산간지역의 전통 주거양식과 생활상을 간직한 마을이면서 거대한 석회동굴들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덕항산 중턱까지 올라가야 들어갈 수 있는 환선굴(, 삼척시청 제공)은 길이가 6.2㎞(개방 구간은 1.6㎞)에 이르는 대형 동굴로, 미인상·거북이·항아리 등 여러 모양의 종유석과 석순 및 석주가 발달했고 폭포와 못도 생성되어 자연의 신비를 만끽할 수 있다. 또 마을에서 가까운 대금굴은 2007년에 개방했는데 모노레일을 타고 동굴로 진입하는 색다른 경험을 안겨준다. 대금굴 관람은 사전에 인터넷(http://samcheok.mainticket.co.kr)으로 예약을 해야만 가능하다. 삼척에는 모두 55개의 석회동굴이 있다고 한다.

 

 

한편 신기면 신기리 오십천변에는 강원종합박물관()이 있어 환선굴·대금굴 관람과 연계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 강원종합박물관은 외양이 특히 웅장하거니와 자연사 관련 유물과 공예품 및 세계 민속자료 등 전시물이 2만여 점에 이른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