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하동, 매화 흐르던 섬진강에 벚꽃이 흐르고

몽당연필62 2009. 4. 8. 18:09

 

하동, 매화 흐르던 섬진강에 벚꽃이 흐르고


지난 3월 중순, 봄이라고 하나 서울에서는 날이 따뜻하다는 것 말고는 봄을 ‘목격’할 수 없었는데, 하동에서 이 땅에 정말 봄이 왔음을 것을 실감했었다. 눈 닿는 데마다 활짝 핀 매화가 지천이어서 곳곳이 꽃동네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섬진강은 맑디맑은 물을 남해로 흘려보내고 있었고, 그 강물엔 어디선가 떨어져 날아온 매화도 실려 함께 흐르고 있었다. 매화가 흐르던 섬진강 강물에 지금쯤은,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한 벚꽃이 대신 흐르고 있으리라.

 

4월 초 화개에서 쌍계사 가는 길을 수놓은 십리벚꽃. <사진 제공 : 최수연(월간 전원생활 기자)>.

 

경남 하동(河東)군은 676㎢의 면적에 1읍 12면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졌으며 5만 3000명가량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북쪽에 지리산 줄기가 장엄하게 펼쳐졌고, 서쪽은 섬진강을 경계로 전남 광양시·구례군과 마주본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하동은 섬진강의 동쪽에 자리하고 있는 고장이다.

 

 

구례에서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섬진강 줄기에 놓인 남도대교(↑)를 건너니, 가수 조영남 씨의 노래로 유명해진 화개장터가 곧바로 나온다. 섬진강 언저리인 화개면 탑리에 있는 화개장터는 과거 1일과 6일이면 장이 서던 곳인데, 광복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장의 하나였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붐볐다고 한다.


닷새마다 영호남 어우러지던 화개에는 날마다 장이 선다

화개 장날이면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더덕·감자 등을 가져와 팔았고, 경상도의 함양과 전라도의 구례 등 들녘 사람들은 쌀을 비롯한 곡물 보따리를 펼쳐놓곤 했다. 여기에 전국을 떠도는 보부상들이 생활용품을 가져와 합류하고, 섬진강 뱃길을 따라 하동은 물론 남해·삼천포·충무·거제·여수·광양 등지의 사람들이 온갖 물산을 실어오니 화개 장은 자연스레 큰 장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대개의 시골 오일장이 그러하듯이 화개 장도 이농현상에 따른 주민 수 감소와 교통 발전에 따라 쇠락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다행인 것은 오일장이 사라지고 규모도 단출해졌으나 요즘엔 날마다 장이 선다는 점이다. 화개장터(↑)를 둘러보니 가게와 좌판들이 제법 즐비하고, 평일인 데도 매화가 한창인 시기여서인지 단체 관광객과 등산복 차림의 장꾼들이 곳곳에서 흥정을 벌이고 있다. 녹차와 산나물 등 이곳 특산물을 구입하고 주막에 들러 도토리묵과 재첩국 등을 맛보는 모습에서 시골 장터의 정취가 묻어난다. 장터 가운데에는 한 면에 화개장터 유래, 반대 면에 화개장터 노래 가사를 새긴 비석(↓)이 세워져 있다.

 

 

화개장터에서 쌍계사로 가는 길에는 해마다 4월로 접어들면 화사한 벚꽃 터널이 생긴다. ‘혼례길’이라고도 불리는 이 길의 아름드리 벚나무 가로수들이 일제히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이다. 혼례길이라는 이름은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손을 잡고 이 길을 걸으면 백년해로한다고 해서 생겼으며, 길이가 4㎞나 돼 꽃이 피었을 때를 ‘십리벚꽃’이라고 한다.


쌍계사 일대는 하동에서 처음 차가 재배된 시배지

하동의 대표적인 사찰인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722) 옥천사라는 이름으로 지어졌던 사찰이다. 훗날 중국에 유학했던 진감선사가 돌아올 때 차(茶)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 주변에 심고 대가람으로 중창하니 정강왕 1년(886) 때 왕이 그를 우러르는 마음으로 쌍계(雙磎)사라는 이름을 내렸다고 한다. 대웅전(↓) 앞에는 진감선사의 덕을 기려 세운 대공탑비(국보 제 47호)가 서 있는데, 이 비는 최치원 선생이 직접 글을 짓고 글씨를 썼기 때문에 문장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쌍계사가 이처럼 차나무와 관련이 있거니와, 이보다 앞서 흥덕왕 3년(828)에는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처음으로 차 종자를 가져와 지리산 자락에 심었는데 그곳이 바로 쌍계사 앞 현재의 운수리라고 한다. 운수리에는 야생차 단지가 있고 여기에 차를 처음 재배했다는 시배지(始培地) 표석(↓)이 세워져 하동의 차 재배 역사를 말해준다.

 

 

이러한 유래 때문인지 쌍계사가 있는 화개면은 물론이고 하동군 곳곳에서 차나무와 차를 가공하는 제다업체들을 볼 수 있다. 또 시배지 바로 아래에는 차 관련 문화를 이해하고 직접 체험도 할 수 있는 차문화센터가 만들어져 있는데, 해마다 5월 야생차가 생산되는 시기에는 이 일대에서 야생차문화축제가 열려 하동 차의 자부심과 명성을 드높인다(올해 축제 기간은 5월 1~5일).

 

 

한편 지리산 자락인 화개면 대성리에는 폐교된 학교를 개조한 지리산역사관(↑)이 있어 한국전쟁 전후 이 일대에서의 빨치산 활동과 토벌에 대한 자료들을 들여다볼 수 있다.


소설과 드라마 ‘토지’가 만든 평사리 최참판댁

지난해 5월 한국 문단에서는 큰 별 하나가 떨어졌다. 장편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1926~2008)이 타계한 것. 박경리는 통영에서 태어났고 강원 원주에서 오래 생활했지만 그의 타계 소식은 하동 사람들에게도 커다란 슬픔이었다. 악양면 평사리가 바로 소설 ‘토지’의 무대였기 때문이다.

 

 

평사리는 섬진강 유역에서는 드물게 평야가 펼쳐진 마을로, 2003~2005년 SBS 텔레비전에서 ‘토지’를 대하드라마로 촬영하면서 전국적인 관광 명소로 떠올랐다. 드라마의 주 무대가 되었던 최참판댁(↑) 안채를 비롯해 별당채 등 부속 건물들과 민가, 장터 등 세트가 잘 보존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이곳에서는 ‘황진이’ 등 무려 열다섯 편의 드라마나 영화 촬영지가 되기도 했다. 최참판댁을 찾는 사람들은 근대 이전의 시대로 돌아간 듯한 기분을 느끼며 ‘토지’의 주인공인 서희와 길상의 캐릭터 상품을 구입하기도 한다.

최참판댁 위쪽에는 평사리문학관(↓)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이 문학관은 박경리의 생애와 ‘토지’에 관한 자료는 물론 지리산과 하동 관련 문학작품들에 대한 자료들도 전시하고 있다. 또 인근에 전통문화 체험관, 농촌문화예술·한옥 체험관 등도 있어 방문객들이 다양한 관람과 체험을 할 수 있다.

 

 

최참판댁이 있는 악양면은 자연 생태계가 잘 보호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통문화에 대한 주민들의 자부심도 높다. 야생녹차와 대봉곶감 등 유기농법에 의한 특산물도 생산된다. 청정한 생활환경이지만 살아가기에 오히려 불편할 수도 있는 이 여건이 이곳 사람들에게는 축복이었다. 지난 2월 악양면이 대형 마트나 패스트푸드점이 없어야 한다는 등의 까다로운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국제슬로시티 인증을 받음으로써 세계적인 관광 명소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하동군은 악양면의 슬로시티 인증을 계기로, 야생녹차와 대봉곶감을 세계적인 명품으로 만들고 수준 높은 관광 프로그램을 개발해나간다는 꿈을 현실로 옮길 수 있게 되었다.


‘현대’를 버리고 도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청학동과 삼성궁

사람들이 흰 한복을 입고 총각과 처녀는 머리를 땋은 채 서당에 다니며 남자 어른들은 상투를 트는 등 전통적인 생활 방식을 고수하며 살아간다는 청학동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 청학동이 바로 청암면, 해발 800m나 되는 지리산 중턱 삼신봉 남쪽 자락에 있다.

 

 

고운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청학동은 예부터 이상향을 찾는 사람들이 모여들던 곳으로, 현재도 세속의 삶을 내려놓은 수십 가구의 주민들이 도인촌(道人村)을 이루며 자신들만의 삶을 추구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논밭에서 식량을 자급하고 축산과 양봉을 하며 약초·산나물 등을 팔아 생필품을 구입해 쓰고 있다. 낮에 방문한 청학동 도인촌은 집들이 하나같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허름하고 고요해 빈 동네 같은데, 마을 이장에 따르면 요즘이 고로쇠 수액을 채취하는 시기라 모두가 일을 하러 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러 빨래가 널린 집이 있으니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인 것은 확실하다.

 

 

도인촌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환인·환웅·단군 등 우리 민족의 성조(聖祖)들과 역대 나라를 세운 태조들, 각 성씨의 시조 등을 모시며 신선의 도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성전인 삼성궁(三聖宮↑, 사진 제공 : 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이 있다. 삼성궁의 정확한 명칭은 ‘청학선원 배달성전 삼성궁’으로, 한풀선사가 고조선 시대의 소도를 복원하여 50여 년 전부터 조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삼성궁을 둘러보노라면 초입인 청학동박물관(↑)에서부터 벽과 담, 탑 등에 무수히 쌓인 돌들이 눈길을 끄는데, 이 많은 돌들은 한풀선사가 40여 년 동안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화세계(理化世界)를 염원하며 쌓았다니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돌들 사이 곳곳에 끼워져 있는 맷돌과 다듬잇돌, 절구통은 우리 민족의 생활 도구로서 음과 양의 기운을 함축하고 있단다.

 

3월 중순이면 매화가 지천으로 피어, 하동의 마을들은 꽃대궐이 된다.

 

하동에는 이밖에도 맑은 물과 깨끗한 모래와 어우러진 하동읍의 송림, 임진왜란 때 활약한  충의공 정기룡 장군의 사당인 금남면의 경충사, 포은 정몽주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옥종면의 옥산서원 등 둘러볼만한 곳이 많다. 여기에 남한 5대 강 가운데 공해가 가장 적어 최후의 청류로 꼽히는 섬진강 물줄기야 다시 일러 무엇 하겠는가.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