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은 편지

[공처가의 편지 9] 자식에게 하는 것 절반만 부모님께…

몽당연필62 2009. 5. 4. 13:57

자식에게 하는 것 절반만 부모님께…


“주말이면 놀러 갈 궁리에 머리를 싸매면서도 휴대폰 단축 키 한 번 누르면 될 부모님 안부 전화는 왜 생각도 안 나는지. 인터넷 뒤져 찾은 맛집으로 애들 데려가 진수성찬 포식하면서도 부모님 진지나 건강은 왜 궁금하지도 않은지…. 부모님께 매달 보내드리는 용돈, 이달만이라도 좀 넉넉하게 보내드립시다. 그리고 당장 안부 전화부터 올립시다. 나는 처가에, 당신은 시댁에….” 

 


5월이오. 가정의 달이라는 선입관 때문인지 요즘 들어 유난히 시골에 계신 부모님 생각이 간절하오. 마음으로야 주말마다 찾아뵙고 날마다 전화를 드려야지 하면서도, 막상 찾아뵙는 것은 명절 때 뿐이요 전화 또한 가뭄에 콩 나듯 드리니, 생각하면 자식 된 도리로서 민망할 따름이오. 당신 또한 농사짓는 부모님이 계시지만 내 게으름에 덩달아 게으름을 섞고만 있어, 우리 부부가 효자 소리 듣기엔 이제 와서 애면글면 애써본들 다 틀렸지 싶소.

주말이면 막히는 길 뚫고 놀러 갈 궁리에 머리를 싸매면서도 휴대폰 단축 키 한 번 누르면 될 부모님 안부 전화는 왜 생각도 안 나는지! 인터넷 뒤져 찾은 맛집으로 애들 데려가 진수성찬 포식하면서도 부모님 진지나 건강은 왜 궁금하지도 않은지! 세상의 모든 자식들이 그러한지, 우리만 이렇게 불효막심한 것인지….

문득 이런 생각이 드오. 지금 우리가 아이들에게 하고 있는 것의 절반만, 아니 그 절반의 절반만 부모님께 해드려도 우리는 천하의 효자로 칭송받을 것이며 훗날 부모님 떠나신 뒤 천추의 한으로 여길 일도 없으리라고 말이오.

생각해보면 우리 부모님 세대는 평생을 너무나 힘겹게 살아온 분들 아니겠소. 일제 때 태어나 청소년기에 전쟁을 겪고, 국가적으로 가장 가난하고 헐벗은 시기에 결혼하여 대여섯씩 애를 낳아 기르며 젊음을 바쳤소. 더구나 우리들 부모님은 남들 모두 짐을 싸 도시로 떠날 때 고향에 남아 묵묵히 농사를 지으며 아이들을 가르치고 결혼시켰으며, 여전히 자식들 걱정 내려놓지 못한 채 흙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계시오.

그런데 지금 우리는 어떠하오. 아무리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고 하나, 우리는 겨우 한둘 키우는 자식 뒷바라지에 힘겹다 온갖 엄살 다 부리면서도 대추나무 연 걸리듯 걸린 자식들에게 모든 것을 바치신 부모님 봉양에는 나 몰라라 하고 있으니…. 요즘 새로 지은 아파트를 보면 도대체 뭔 소린지 모르겠고 기억도 안 되는 어려운 이름을 갖다 붙이는데, 오죽하면 그것이 시골의 부모님이 못 찾아오게 하려는 수작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겠소.

그런 부모님에게 우리 젊은 세대는 한·미 FTA를 비롯해 농산물 시장 개방이라는 무거운 짐만 계속 지워드리고 있소. 농산물 시장 개방이 우리나라 전체로는 이익이 된다 하나, 농사꾼의 자식으로서 여간 씁쓸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오. 우리 어려서 오뉴월이면 황금빛으로 일렁이던 밀밭이 사라졌고, 가을이면 점점이 함박눈처럼 하얗게 피어나던 목화를 볼 수 없게 되었으며, 이젠 콩과 참깨와 온갖 육류들마저 점차 물 건너온 것으로 대체되고 있소. 손과 발이 갈퀴처럼 마르고 거칠어지도록 일만 해오신 우리 부모님들이 노년에 이르러 무슨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 고통을 감내해야 한단 말이오?

부모님 생각을 하다 우리 애들을 바라보면 속으로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한심할 때가 있소. 우리 애들, 부모님은커녕 우리 자신이 성장하던 때와 비교를 해도 너무나 곱고 갖게 자라고 있지 않소.

어머니 표현을 빌리자면 ‘한 방에서 토깽이 새끼들 같이 네댓 명이 오글거리던’ 우리와 달리, 애들은 각자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걸핏하면 사생활 보호 운운하며 문을 닫아 잠그고 있소. 형제간에 토닥거리다가도 아버지의 ‘어험!’ 기침 한 번이면 상황이 종료되던 우리와 달리, 애들은 아빠가 퇴근을 해와도 본체만체 하고 엄마가 시장을 봐와도 무거운 장바구니 받아줄 생각을 않소. 식사 때는 엄마아빠가 수저를 들기도 전에 먹기 시작하며 수저를 놓기도 전에 방바닥에 발라당 드러눕소. 어디 그뿐이겠소. 우리야 연이나 팽이, 썰매 하나만 가져도 세상 부러울 것이 없었지만 애들은 컴퓨터에 휴대폰에 시디플레이어에 엠피스리에 전자사전까지 가졌으면서도 끊임없이 친구들과 비교하며 만족할줄 모르오.

솔직히 말하자면 나 우리 애들에게 질투가 나기도 한다오. 애들보다 훨씬 어렸을 때 난 밥하고 빨래하고 물 길으러 다녔소. 큰애 나이 때 혼자 자취하면서 고등학교 다니며 신문배달을 했고, 중학생인 작은애 나이 때 이미 모내기와 보리타작에 한몫 하는 일꾼이었소. 당신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어린 시절을 보냈지 않소.

밥통에 밥이 있어도 차려주지 않으면 먹을 생각을 않고 친구들 사이에 왕따 당하면 안 된다며 당당하게 새 옷이며 유명 메이커의 신발을 요구하는 애들을 보면, 당신 또한 부럽다가 화딱지 나다가 하지 않소? 게다가 걸핏하면 공부해야 한다는 둥 엄마아빠가 자라던 때와는 시대가 다르다는 둥 따지고 덤비는 통에 속도 많이 상하고 말이오.

우리 이 애들을, 귀엽고 사랑스럽고 소중한 이 애들을, 앞으로는 ‘든 사람’보다 ‘된 사람’으로 키우도록 해봅시다. 생각해 보오. 우리는 어려서 부모님으로부터 밥상머리에서 많은 교육을 받지 않았소. 밥상머리에서 예의와 예절을 배우고, 밥상머리에서 배려의 미덕을 갖추지 않았소. 그런 점에서 가정의 달 5월엔 나도 퇴근을 더 빨리 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더 자주 할 수 있도록 애써볼 테요. 그것도 어려운 가운데서 우리를 반듯하게 키워주셨던 부모님에 대한 작은 보답일 것이오. 하니 앞으로는 우리도 애들 앞에서 몸가짐 바르게 하고 언행에 각별히 유의합시다.

 

 

이제 본격적인 농사철이오. 농촌은 이 무렵이 가장 바쁜 때라는 거 당신도 잘 알잖소. 비닐하우스 안에선 오이며 방울토마토며 딸기가 수확을 기다리고 있고, 곧 모내기와 보리 베기 그리고 마늘·양파 캐기 등도 산더미처럼 몰려올 것이오. 도시 사람들 어린이 날이다 어버이 날이다 하며 5월을 즐길 때, 우리의 부모님들은 굽은 몸 억지로 펴며 일터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니 생각하면 마음만 짠해오오.

우리, 이달엔 양쪽 부모님께 매달 보내드리는 용돈, 조금만 더 보태서 보내드립시다. 부모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결코 몇 푼의 돈으로 헤아려 갚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앞으로 우리가 당신들 살아계시는 동안 어버이날을 맞으면 몇 번이나 더 맞겠소. 그리고 이달엔 꼭 시간을 내서 찾아뵙시다.

아니, 당장 안부 전화부터 올립시다. 당신은 시댁에, 나는 처가에 전화를 하는 게 좋겠소. 혹시 아오? 훗날 우리가 늙었을 때 오늘 우리가 하는 양을 보고 애들도 우리에게 전화라도 자주 해줄지….


글·몽당연필 / 일러스트·김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