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은 편지

[공처가의 편지 7] 우리도 명품족이 되어봅시다

몽당연필62 2008. 9. 9. 09:20

우리도 명품족이 되어봅시다

 

대관절 명품이 뭐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유명한 브랜드 앞에서 사족을 못 쓰는 거요? 듣자하니 옷 한 벌 가방 한 개에 수백만 원씩 하는 게 있다니, 그런 옷을 입으면 인격이 고매해지고 그런 가방을 들면 내용물이 황금덩어리로 바뀐답디까? 몸매나 얼굴 따지는 것은 더욱 가관이오. 요즘엔 날씬한 사람을 ‘몸매가 착하다’고 하면서 명품으로 칩디다.


지난해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학력 검증 열풍이 작렬하는 태양보다도 더 뜨거웠던 것을 기억하오? 유능한 젊은 교수가, 좋은 일 많이 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연기 잘하는 배우가, 건실하고 가정적인 이미지의 탤런트가, 노래 실력 출중한 가수가, 그리고 만화가·코미디언·영어 강사·방송 진행자들이 학력 속여 온 것을 혹은 들키고 혹은 고백을 해서 여론의 뭇매를 맞았소.

그 중에는 “내 입으로 그 학교를 나왔다고 말한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한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다니지도 않은(혹은 졸업하지도 않은) 학교로 경력을 포장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명품으로 만들고 다른 사람에게 갈 수도 있었을 기회를 빼앗은 셈이 되었기에 대중의 비난과 질타가 쏟아졌을 것이오. 말로는 학력보다 실력이 중요하다면서도, 정작 학력을 실력의 판단 준거로 삼는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 아니었겠소.

하지만 1년 남짓한 시간이 흐른 지금 학력 검증 열풍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 싶게 사라져버렸고, 거짓말의 당사자들도 이제는 두 다리 쭉 뻗고 자고 있을 게요. 이미 그 시련(?)을 딛고 재기하여 주말마다 안방극장에 출연해 우아하면서도 유치한 왕비병으로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주는 뿔난 배우도 있잖소. 우리 국민의 냄비근성은 일찍이 1970년대에 가수 송대관이 간파하고 ‘세월이 약이겠지요’ 라는 노래를 불렀더랬소. 송대관은 “세월이 흐르면 사랑의 슬픔도 잊어버린다. 이 슬픔 모두가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며 시간이야말로 어떤 아픔과 충격도 잊게 해주는 묘약임을 일깨웠으니 이 노래는 명품 중의 명품이라 할 것이오.

 

 

명품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대관절 명품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은 그렇게 유명한 브랜드 앞에서 사족을 못 쓰는 거요? 듣자하니 옷 한 벌 가방 한 개에 수백만 원씩 하는 게 있다니, 그런 옷을 입으면 인격이 고매해지고 그런 가방을 들면 내용물이 황금덩어리로 바뀐답디까? 아무리 비싼 옷을 입은 사람도 목욕탕 가면 때가 국숫가락처럼 밀리기는 마찬가지고, 아무리 유명한 가방이나 핸드백을 멘 사람도 그 안에 간단한 화장품과 생리대 따위를 담고 다니기는 거기서 거기일 텐데 말이오.

그런데 다들 어렵다 어렵다 하던데, 요즘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운 것 맞소? 그렇게 어렵다면서 ‘누이배통’ 옷을 입고, ‘사날5등’ 냄새를 풍기며, ‘뱀다불러’ 차를 모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건 뭐요? 게다가 명품 비스무리한 짝퉁을 사려는 사람들도 장사진을 이루니, 우리나라 경제는 분명 활황을 구가하고 있으며 적지 않은 국민이 명품 병에 걸리지 않았나 의심이 드는구려. 명품 병 그거 한 번 걸리면 완치가 어려운 심각한 질병이오. 하지만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중증 명품 병을 앓고 있는 듯하니 걱정이오.

명품이라는 것이 어디 유명한 옷이나 가방만 이르는 것이겠소. 우리가 기를 쓰고 애들을 ‘스카이’ 대학에 보내려고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 대학들이 바로 명문이요 명품이기 때문 아니겠소. 명품 대학을 나오면 일단 대접부터가 달라지고 취직하기도 쉬우니 간판과 포장에 감춰진 실력이나 품성은 뒷전일 수밖에.

몸매나 얼굴 따지는 것은 더욱 가관이오. 요즘엔 날씬한 사람을 ‘몸매가 착하다’고 하면서 명품으로 칩디다. 얼굴 뜯어 고치는 것은 또 어떻소. ‘신체발부(身體髮膚)는 수지부모(受之父母)니 불감훼상(不敢毁傷)이 효지시야(孝之始也)라’ 하여 우리 몸은 터럭과 피부까지도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라 감히 헐어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의 시작이라 했거늘, 성형수술 알기를 찰흙 조물거려 얼굴 빚는 정도로 가벼이 여기는 것이 작금의 세태 아니오.

이렇게 멀쩡한 얼굴과 몸에 칼 대는 것을 쉽게 생각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신분 확인 대란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이구려. 신분증의 사진과 실물이 일치하지 않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국내에서는 주민등록증을 제시해도 출입을 거절당하고 외국에 나가서는 여권을 보여줘도 공항에 억류당하는 사태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겠소. 얼굴 뜯어고쳐 명품으로 재탄생한 사람은 부지기수이니, 만약 이들이 갑자기 외국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면 지난번 23명의 기독교인들이 탈레반에게 납치되었을 때처럼 우리나라 외교부통상부 직원들 또 한번 고생깨나 해야 할 것 같소.

오늘 노래 이야기를 다시 하게 되오만, 가수 남진은 일찍이 혜안이 있었던지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하는 노래를 불러 우리 국민이 외모지상주의에 함몰되는 것을 경계하였소. 그러고 보면 이 노래 또한 명품 중의 명품인 것이오.

사람이 얼굴 뜯어고쳐 미남 미녀가 되고 비싼 옷에 비싼 장신구로 치장을 한들, 그 육신을 움직이는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면 어찌 명품 인간이라 하리요. 빈 수레가 요란하다거나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말은 인간 내면의 됨됨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우쳐주는 말이니, 명품 인간이 되려면 화려한 겉치장보다는 인격 도야와 지혜를 기르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할 것이오.

우리는 남들이 명품으로 허영부리는 것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 애들부터 명품으로 키워봅시다. 공부야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살 길이 있을 것 아니겠소. 그러니 공부가 다소 떨어지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 말고, 타인을 배려하고 더불어 살아가며 지식보다는 지혜를 갖추도록 가르칩시다.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키웁시다.

 

 

아이들 잘 키우는 것도 좋지만 우리 자신부터 진정한 명품족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도 좋겠구려. 실은 이 편지를 쓰면서 나도 많이 반성하고 있소. 일주일에 사나흘은 술에 떡이 되어 퇴근하고, 쉬는 날이면 잠과 텔레비전으로 탕진하고, 배가 남산 만하게 나왔으면서도 운동은 죽을 것처럼이나 싫어하고…. 우리나라 가정의 가족 간 대화가 하루 30분도 안 된다는데 아마도 나 같은 짝퉁 가장이 많아서 그런가 보오.

그러니 당신도 어차피 되지도 않을 명품 몸매 만든다고 사우나 뽀르르 달려가서 땀 흘리며 온종일 동네 아줌마들과 쓸데없는 수다나 떨지 말고, 집안일에 조금만 더 관심을 가져주오. 술 먹은 다음날 아침 해장국까지 기대하지는 않소만, 나 미운 건 미운 거고 애들은 밥을 먹여서 학교에 보내야할 것 아니오.

그리고 특히! 무엇이든 오래 유지되면 전통이 되고 전통은 곧 명품일 수도 있겠으나, 변함없는 추리닝 차림에다 언제 했는지 기억도 없는 다 풀린 파마머리 스타일이 명품 주부의 상징은 아닐 터이니, 그것도 이참에 고쳐보는 것이 어떻겠소?


글 : 몽당연필 / 일러스트 : 김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