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청소는 노동이 아니라 자신을 정화하는 일

몽당연필62 2009. 3. 12. 10:01

청소는 노동이 아니라 자신을 정화하는 일


3월, 많은 가정과 직장에서 대청소를 하는 시기이다. 안팎의 보이는 먼지와 때를 닦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 못지않게, 사람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닦고 추스르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우리 사회에서 추방해야 할 오물 같은 존재를 ‘청소해야 할 사람’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청소를 하면서 ‘혹시 내가 청소 당해야 할 사람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시골에 살았던 어린 시절, 아침에 일어나서 보면 마당이 늘 깨끗하게 쓸어져 있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밤이 이슥하도록 담뱃잎을 엮거나 나락 홀태질을 한 탓에 몹시 어수선한 것을 보고 잠든 날도, 다음날 아침이면 지푸라기를 비롯한 허섭스레기들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마당엔 비질 자국만 선명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새벽에 댑싸리 몽당비를 좌우로 저어 남겼을 그 자국은 어찌나 정갈하던지, 발자국 남기는 것이 다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부모님의 깔끔한 유전자를 거부한 돌연변이

구차한 살림이었으나 세간은 깔끔했고, 살강의 그릇들은 저마다의 자리에 단정히 놓여 있었으며, 행주로 써도 감쪽같을 걸레로 훔치는 마루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어머니는 보리밭의 건반부리(별꽃의 방언) 한 포기, 아버지는 벼논의 피 한 포기 용납하지 않는 분이셨다.

 

 

부모님의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켰던 것일까, 나는 깔끔하지 못했으며 쓸고 닦고 터는 청소가 싫었다. 날마다 호호 입김을 불어가며 유리창을 닦거나 양초 칠을 해 교실 바닥이 반질반질하도록 문지르는 학교에서의 청소는 고역이었다. 결혼 후에는 청소와 빨래 안 하려고 결혼했다며 꺼드럭거려, 걸레질 하거나 음식물 쓰레기 치우는 것을 온전히 아내만의 몫으로 미뤄버렸다.

지나치게 깔끔 떠는 것은 결벽증이며 적당히 게으르게 사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다는 에두름을, 아내는 쌍수를 들지는 않았지만 반기는 눈치가 역력했다. 베란다가 하나 둘 쌓이는 잡동사니에 점령당하기 시작했고, 주방에서는 쌀자루와 쓰레기봉투가 나란히 키 재기를 했다. 책장에 먼지가 켜켜이 내려앉아도, 아이들 방이 옷가지와 학습지와 온갖 나부랭이에 엉망이 되어도 우린 무심하고 태연했다. 아내는 청소 싫어하는 남편을 빠르게 닮아갔다.

태평성대라고 해서 위기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시골에서 부모님이 오시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집 안에 사람을 들여야 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이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갑자기 다녀가시게 되었다. 집에는 비상이 걸렸다. 거실 여기저기 널린 옷가지는 둘둘 말아 안방 장롱에 처넣었고, 초파리가 꼬이기 시작한 음식물 쓰레기는 뒷베란다에 숨겼다.

겨우 사람 사는 꼴을 갖춰 부모님을 맞았지만, 주머니에 감춘 송곳 삐져나오듯 임시방편은 곧 하나하나 들통이 나기 시작했다. 잠옷으로 입을 만한 옷을 꺼내드리기 위해 문을 연 장롱에서는 옷 무더기가 와르르 쏟아져 내렸으며, 시큼한 냄새에 코를 킁킁거리며 뒷베란다 문을 연 어머니는 음식물 쓰레기에다 애써 농사지어 보낸 양파가 썩어가고 있는 것까지 발견하셨다.

게다가 잠자리를 펴면서 소파 밑에 수북이 쌓이다 못해 솜털처럼 뭉쳐진 먼지에 혀를 차셨고, 물을 마시려고 연 냉장고에서는 자장면 시켰을 때 먹고 남은 단무지가 말라비틀어진 것을 보시고 말았다. 이런 일이 한두 번으로 끝난 것은 물론 아니다. 부모님이나 손님을 맞을 때마다 비상사태는 되풀이 되었으며, 우리는 민망한 모습을 때로는 요령껏 감추고 때로는 들키곤 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식구끼리만 부대끼며 살아가는 아파트는 게으른 사람들에게 참 좋은 닫힌 공간이면서 다급할 때는 막다른 골목이나 마찬가지인 공간이기도 하다. 특히 비록 부모님이라 할지라도 보이고 싶지 않은 것을 감춰야 할 때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다. 시골집 같으면 민망한 것들을 뒤꼍에 잠시 숨기거나 텃밭 모퉁이에서 태워버릴 수라도 있지만 아파트는 그것이 도통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아무튼 부모님이나 이웃에게 몇 번 위기를 겪은 우리는 점차 철이 들어(?) 청소는 둘째치더라도 치우고 버리는 것에 익숙해지자고 다짐하게 되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자라니 언제까지나 쌓아두고 늘어놓고 하며 산만하게 지낼 수만도 없었다.

 

대청소로 묵은때를 벗겨내면 몸과 마음도 정갈해진다

우리는 조금씩 그리고 천천히 변해갔다. 먼저 거실 한구석에 산더미처럼 쌓아둔 신문뭉치와 다 푼 아이들 학습지를 재활용 쓰레기 수거하는 날 내버렸다. 어느 날은 입지 않는 옷들을 골라 수거함에 넣었고, 전동 청소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으며, 가끔(!) 걸레를 빨아 바닥을 닦기도 했다.

그렇다고 예전보다 크게 부지런을 떨거나 날마다 청소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 안 모습은 제법 달라졌다. 보기에 정돈감이 있고 환하며, 무엇보다 손님이 와도 당황스럽지 않아 좋았다.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청소는 노동이 아니라 자신을 정화하는 것임도 희미하게나마 깨달았다.

어쩌면 집 안팎의 보이는 먼지와 때를 닦고 쓰레기를 치우는 것 못지않게, 사람의 보이지 않는 마음을 닦고 추스르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을 살다 보면 ‘청소해야 할 사람’이라는 말도 듣게 되는데, 이는 우리 사회에서 없어져야 할 오물 같은 사람을 가리킨다. 나는 청소를 하면서 ‘혹시 내가 청소 당해야 할 사람은 아닌가’ 하는 마음으로 스스로를 단속하고 경계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대청소를 하는 봄을 맞아 청소를 소재로 글을 쓰면서, 문득 요즘 ‘홰기’라는 것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홰기는 벼나 갈대 따위의 이삭이 달린 줄기로서 방비를 만드는 데 쓰인다. 아버지는 홰기를 몇 움큼 모으면 꼼꼼하게 빗자루로 매어 벽에 박힌 못에 걸어두곤 하셨다. 우리 아버지들에게는 홰기 빗자루뿐만 아니라 댑싸리나 싸리, 신우대로 마당비를 만드는 것도 하나의 일이었다. 곤고한 시대를 살았던 당신들은 비를 만들고 그것으로 방과 마루와 마당을 쓸면서, 사실은 세상을 향한 분노와 원망과 탐욕…들도 함께 청소하곤 했는지 모른다.

3월, 새봄이다. 겨우내 쌓인 먼지를 털어내고 여기저기 쓸고 닦아보자. 봄맞이 청소를 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새로워질 것이다. 그리고 먼지와 쓰레기가 걷혀 깨끗해진 자리엔 더욱 정갈해진 우리의 몸과 마음이 놓이게 될 것이다.

 

글 : 몽당연필 / 사진 : 농민신문사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