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설날, 본능처럼 차례 지내고 떡국 먹는 우리의 명절

몽당연필62 2009. 1. 24. 15:05

설날, 본능처럼 차례 지내고 떡국 먹는 우리의 명절


설날은 우리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새롭게 한 해를 출발하는 명절이다. 설날 민속은 아직도 대부분 지켜지고 있으며,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 놀이들도 우리 생활에서 친숙하게 행해지고 있다. 전 세계적인 경제난이 몰아치는 가운데 맞는 이번 설날에는 가족과 친지간에 서로 격려하고 위로하며 따뜻한 정을 나눠야하지 않을까.


2009년 기축己丑년은 음력이 조금 빨라서, 설날이 1월 26일에 들었다. 우리가 경제 위기의 한가운데에 놓인 것처럼, 설날도 입춘 전후는커녕 세상이 꽁꽁 언 한겨울에 든 것이다.

그렇다고 설날의 의미마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래 전부터 설날은 우리가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명절이 아니던가. 그런 점에서, 어려운 시기에 설날이 1월에 들었으니 준비와 출발을 앞당겨 위기도 서둘러 돌파하는 계기로 삼으면 될 터이다.


차례 지내고, 세배하고, 떡국 먹고, 토정비결 보고

음력 정월 초하룻날인 설날은 세수(歲首), 원단(元旦), 원일(元日), 신원(新元)이라고도 하며,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 해서 신일(愼日)이라 말하기도 한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양력 설날을 신정(新正), 음력 설날을 구정(舊正)이라고 하는데, 신정이나 구정이라는 말은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양력이든 음력이든 새해 첫날은 설날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설날은 우리에게 추석과 더불어 가장 큰 명절이며, 아직까지도 많은 민속이 지켜지는 의미 있는 날이다. 설날이 다가오면 외지에 나가 사는 사람은 설을 쇠기 위해 집으로 돌아가고, 집에서는 돌아올 가족을 기다리며 차례와 음식을 준비한다. 이윽고 온 가족이 모인 가운데 설날 아침이 되면 설빔을 입고 조상님께 차례를 지내며, 부모나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를 하고 서로 덕담을 나눈다. 설날에는 또 토정비결을 보며 한 해 운세를 점쳐보기도 한다.

 

 

설날에는 독특한 세시(歲時)음식인 떡국을 먹는데, 떡국은 새해를 흰색 음식으로 시작함으로써 천지만물의 부활신생을 소망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한다. 또 떡국의 원료인 가래떡이 희고 긴 것은 순수(純粹)와 장수(長壽)를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아직도 친숙한 설날 놀이,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떡국이나 세배가 극도의 산업사회가 된 요즘에도 사라지기는커녕 더 다양한 양상으로 발전하고 이어지듯이, 윷놀이·널뛰기·연날리기 등 설날의 놀이들도 우리 생활에서 친숙하게 행해지고 있다.

 

 

윷놀이는 반원형으로 된 네 개의 나무토막을 한꺼번에 던져 엎어지고 젖혀진 모양에 따라 말을 전진시키며 빨리 말판을 돌아오기를 겨루는 놀이로, 방이나 마당 어디서든 남녀노소 모두가 어울려 즐길 수 있는 것이 특징. 거리를 걷다 보면 ‘척사(擲柶)대회’라는 어려운 말이 플래카드나 안내문에 적혀 있는데 이것이 바로 윷놀이다. 윷놀이는 부여족(夫餘族) 시대에 다섯 가지 가축을 다섯 마을에 나눠주고 그 가축들을 경쟁적으로 번식시킬 목적에서 비롯된 농경문화의 유산이라고 한다.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양, ‘윷’은 소, ‘모’는 말을 의미한다.

 

 

널뛰기는 여성들의 놀이다. 두툼하고 긴 널빤지 한복판의 밑을 괴어 중심을 잡은 다음, 널빤지 양쪽 끝에 한 사람씩 올라서서 한 쪽이 뛰어올랐다가 발을 구르면 상대방은 그 반동을 이용해 뛰어오른다. 널뛰기는 항상 집 안에만 갇혀 사는 여인들이 높이 올라갔을 때 담장 밖의 세상을 살필 수 있어 창안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그 유래가 명확하지 않다. 전설에는 한 아낙이 높은 담장 너머 옥에 남편이 갇히자 이웃 아낙과 널을 뛰어 그리운 남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어른이나 아이나 남자들의 놀이로는 연날리기가 꼽힌다. 연날리기는 예부터 세계 곳곳에서 즐겨오던 놀이인데, 우리나라에 연날리기가 널리 보급된 것은 조선시대 영조 때라고 한다. 영조가 백성들의 연날리기를 즐겨 구경하며 장려하였기에 민간에 널리 전파되고 성황을 이루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날리기는 설날부터 정월대보름까지 하고, 대보름날에는 연에 ‘송액(送厄)’ 또는 ‘송액영복(送厄迎福)’이라는 글자를 써서 높이 띄운 다음 연줄을 끊어 멀리 날려보냈다. 이것은 질병이나 사고, 흉년 등 액운은 멀리 사라지고 복이 찾아오도록 비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정 넘치는 설날 되기를

강점기 시절 일제는 오랜 세월 이 땅에 뿌리내려온 음력설을 양력설로 바꾸고 풍습과 민속을 방해하며 우리의 민족혼 말살을 시도했다. 떡방앗간을 섣달 그믐날 전 1주일 동안은 돌리지 못하게 하였고, 설날 아침 세배를 다니거나 흰옷을 입은 사람은 양력설을 쇠지 않는다고 하여 검은 물이 든 물총을 쏘아 얼룩지게 하는 등 갖가지 박해를 가하였다.

설날은 이렇게 지켜온, 아니 지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이날이 되면 본능처럼 집을 찾고 차례를 지내며 떡국을 먹어온 우리의 명절이다. 세계 경제가 매서운 한파를 만난 가운데 우리의 어려움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이렇게 어려운 때일수록, 다가오는 설날에는 하루만이라도 가족과 친지들이 모여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며 정을 나눠야하지 않을까.

더구나 우리 농촌에는 외국에서 시집와 이 땅의 설날 문화가 아직은 낯선 결혼이민여성들이 적지 않다. 그들이 사는 다문화가정이 더욱 따뜻하고 복 받는 설날이 되기를 기원한다.


/글 : 몽당연필, 사진 : 농민신문사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