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하는 말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이 '국가적 손실'입니까?

몽당연필62 2009. 2. 17. 17:54

보도를 보니 이명박 대통령이 16일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 소식을 듣고 애도했다는 소식입니다. "이 나라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고비마다 국가 원로로서 큰 역할을 해오셨던 추기경님을 잃은 것은 국가적으로 큰 손실"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네, 맞습니다. 정신적 지도자를 잃은 아픔은 국가적으로 분명히 큰 '손실'일 겁니다. 독재에 맞서며 암울한 시대를 밝힌 횃불이었고, 생애 마지막 말이 '고맙습니다'였으며, 삶이 끝나자마자 누군가에게 빛을 주기 위해 안구 적출 수술을 했던 아름다운 분을 우리는 잃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고개가 자꾸만 갸웃거려집니다. 저는 비록 종교가 없지만, 종교 지도자이며 국가 원로인 추기경을 잃은 마음이 아무리 애통할지언정 '손실'이라는 말에는 선뜻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어사전에서 '손실'을 찾아보니 '잃어버리거나 축가서 손해를 봄. 또는 그 손해'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극히 '경제적인' 용어인 것이지요.

 

물론 이명박 대통령은 경제를 누구보다도 잘 아는 분이시니 경제적인 용어를 사용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말에는 어감(유식하게는 '뉘앙스'라고 하던가요?)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유능한 과학자가 타계했다면 손실이라는 말도 어울릴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정신적 지도자인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며 국가적 손실이라고 한 것은 차라리 '애도한다'거나 '애통하다'거나 '매우 슬프다'는 지극히 통상적인 말보다 깊이가 오히려 얕아보입니다.

 

저는 대통령의 애도에 딴지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그리고 대통령께서 추기경의 선종을 진심으로 애도했으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굳이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 대통령께서 요즘 경제 문제로 노심초사하다 보니 우리 사회의 정신적인 가치마저도 경제의 잣대로 마름질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말 때문에 말이 나는 세상이니, 저 또한 이 말로 인해 어떤 말을 듣게 될지 두렵습니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