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하는 말

악플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

몽당연필62 2008. 10. 8. 09:36

가수 유니와 탤런트 안재환.최진실 씨의 연이은 자살을 계기로 인터넷 악플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일각에서 인터넷실명제 실시와 사이버모욕죄 적용의 강화 등을 주장하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에서는 인터넷 댓글을 통한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단속의 대상이 아니라 자정(自淨) 노력이 필요한 문제라고 주장한다.

 

인터넷 악플, 단속이냐 자정이냐 

실제로 인터넷에서 악성 댓글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당사자는 물론이요 제3자가 보기에도 정도가 심하여 민망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상황이 이러하니 일부 대형 포털에서는 연예인 관련 등 일부 기사에 대해서는 아예 댓글 기능을 차단한 채 서비스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일반인과 달리 연예 스타 등 유명인은 자신에 대한 악플도 그가 누리고 있는 인기의 방증이므로 스스로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최근 한 인터뷰(http://blog.ohmynews.com/cool/154694)에서 "스타도 자기 인기에 악플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악플도 누리는 인기의 일면이라 생각해야 한다. 파파라치 따라붙는 거, 사생활 까는 거, 대중 잡지에서 떠도는 모든 루머 등등등, 연예인의 일상이기 때문에 악플로부터 연예인 보호한다는 게 이상한 얘기"라고 말했다. 

 

이처럼 악플 대응 문제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네티즌들은 악플의 반대 개념인 선플을 달자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악플이 말 그대로 악의적인 댓글이라면, 선플은 칭찬과 격려를 담은 좋은 댓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음 아고라 '이슈청원'에는 '우리모두악플을 달지맙시다-선플달기전네티즌참여운동' 청원이 진행되고 있기도 하다.

 

단속과 처벌보다 속도 빠른 악플의 진화 

그런데 일부 기사에 선플이라고 올린 댓글을 보면, 진정한 의미의 선플은 거의 보이지 않고 선플을 가장한 악플인 경우가 많다. 악플에 대한 단속이나 처벌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새로운 형태의 악플만 더욱 발달시키는 결과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두고 '풍선효과'라고 하던가. 청량리 집창촌을 단속하니 장안동의 성매매 업소가 호황을 누리는 것과 같은 상황 말이다. 

 

예를 들면, '환율 1360원 돌파..장중 1367원 터치'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려있다.

"역시 IMF 시절 장관하던 분이라 스케일이 크시네요.. (중략) 앞으로 펼쳐질 IMF 시즌2 기대가 큽니다."

이 댓글은 머리에 <선플>이라 표기했고 표면적으로도 강 장관을 칭찬하는 선플이지만, 실제로는 통렬한 비판을 하고 있다. 아마 댓글을 쓴 사람은 강 장관에게 욕이라도 퍼붓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악플에 대한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 부득이하게 'IMF 시즌2'에 대한 기대로 강 장관을 칭찬(?) 했을 혐의가 매우 짙다.

 

'정치권, 달러모으기 운동론 솔솔' 기사에는 더욱 기발한 선플(?)이 달렸다. 

만수씨가 지금 얼마나 마음고생하시는지는 알고 그러시는지?
만한게 정부죠? 지금 정부는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있는
없는 수 다 짜내고 있는거 모르죠? 그런 주제에
비걸지 마시죠. 지금같은 상황에 정부탓이다 하면서 오리
내밀고 싶은겁니까? 이럴때일수록 한푼이라도 더 모으고
껴서 나라를 위해 내야하는거 아닙니까?
원 참, 나라를 위해 그런건 기꺼히 내야 하는겁니다.
지고 계신 달러들 장농에 쳐박아놓으면 뭐합니까? 전부
져서 기부하십시오. 지금 나라가 위태위태한데
혼자 살겠다고 하는것 참 추합니다. 저도
면 먹을 돈까지 전부 기증할겁니다


강 장관의 노고를 위로하며 달러모으기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내용의 이 댓글은 그러나 각 행의 앞글자만 죽 내려 읽으면 글쓴이의 본심을 알게 된다.

 

악플은 관심의 소산, 그래도 '비난'보다는 '비판'을  

인기인이나 유명인, 사회적 영향력이 큰 사람의 행보와 언사는 일반인의 관심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이들과 관련된 기사에 선플뿐만 아니라 악플도 달리는 것은 숙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 사는 세상에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처신을 더욱 조심하고 바른 길만 걷도록 노력해야 한다. 또 자신과 관련해 올라오는 악플과 근거없는 소문에도 소중한 목숨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내성을 가져야 한다.

 

물론 인기인이나 유명인이라고 해서 악플과 헛소문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하고 그 당연함에 자신의 인격이 매몰되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다. 자신이 일반 대중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만큼, 대중이 악플을 쏟아내면 그것을 자신의 목소리에 대한 메아리쯤으로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다. 악플을 그냥 무시할 정도의 맷집을 키워도 좋겠고, 악플을 통해 더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고 더 큰 발전을 위한 힌트를 발견한다면 더욱 좋겠다. "안티팬 10만 명 양성의 그날까지!"를 외치는 '개그 콘서트'의 '왕비호'처럼 말이다.

 

극히 일부에 해당하겠지만, 네티즌들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 근거 없는 소문을 퍼나르고 악의적으로 인신공격을 하는 댓글은 달지 말아야 한다. 비판은 통렬하게 하되, 비난은 삼가는 게 옳다. 과도한 악플은 요즘의 분위기처럼 인터넷 사용 자체를 통제하는 우리 자신의 족쇄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것이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