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색하고 하는 말

달러 모으기? 서민은 없어서 못 내놓고 있어도 안 내놓는다

몽당연필62 2008. 10. 7. 13:49

달러 모으기? 서민은 없어서 못 내놓고 있어도 안 내놓는다

 

7일 한나라당 일각에서 '달러 모으기' 운동이 제기됐다. 국회 정무위원장을 맡고 있는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이 이날 국정감사 대책회의에서 전국민이 동참하는 '외화통장 만들기'운동을 제안한 것. 김 의원은 "지금 외환보유고가 문제가 되는데 집집마다 100달러, 500달러는 집에 있을 수 있다"며 "전국민이 외화통장 만들기로 위기를 극복하는 게 좋은 아이디어가 될 것 같다. 통장에만 넣어놔도 장기 달러 보유가 된다"고 말했다.

 

'달러 모으기'라... 어디서 많이 듣던 캠페인이다. 그렇다. 지금으로부터 딱 10년 전 외환위기로 인한 IMF체제 때 온국민이 자발적으로 나섰던 '금 모으기'의 짝퉁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귀가 닳도록 '잃어버린 10년'을 외쳤는데, 정확히 10년 전으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모아야 할 대상이 금에서 달러로 바뀌었다는 것뿐이다.

 

참 염치도 없다. 자기네들이 경제 말아먹고 결혼반지며 돌반지까지 다 내놓게 만들더니 이번엔 달러를 내놓으란다. 웃기는 것은 '집집마다 100달러, 500달러는 집에 있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는 우리 돈으로 10만~50만 원 정도의 액수인데, 이만한 금액을 달러로 갖고 있는 집이 과연 얼마나 될까. 도대체 그가 말하는 '집집마다'의 집집은 어떤 집들일까.

 

그리고 또 하나, 기획재정부 장관은 틈만 있으면 "외환보유액은 위기를 극복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말해왔다. 이명박 대통령도 7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현재의 위기는 지난 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때와는 다르다"면서 "정부가 대비책을 세우고 있고 기업들이 자구노력을 강화하면 국민이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분명히 밝혔다.

 

국민은 헷갈린다. 10년 전 문민정부와 한나라당이 깔끔하게 비워냈던 국고에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2천억 달러가 넘는 달러를 쌓아놓았는데, 그래서 필요 이상의 외환을 보유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던 차인데, 누구는 외환이 충분하여 문제가 없다고 하고 또 누구는 외환보유고가 문제이니 달러 모으기를 하잔다. 지금 환율방어를 위해 시장에 쏟아붓는 달러가 전 정권의 업적인데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는 한 마디도 들려오지 않는다.

 

달러 모으기가 실제로 이뤄진다고 해도 이번엔 10년 전 금 모으기만큼 열기가 없을 뿐더러 국민의 지지도 받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금 모으기 때는 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섰다. 그들이 눈물로 내놓은 금이 얼마나 많았던지 국제 금값이 하락할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구체적인 수치는 기억나지 않음). 하지만 부자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금괴는 결코 내놓지 않았다. 금을 거저 내놓는 것이 아니라 돈을 받고 파는 것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때 서민들은, 부자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상당히 공고해졌다.

 

하지만 달러 모으기는 서민과 상관 없는 일이다. 우선 서민들은 그들의 기대와 달리 집집마다 100~500달러를 갖고 있지를 못하다. 금반지와 돌반지는 서민들도 한두 개 갖고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달러는 엄연히 부자들의 화폐다. 서민들은 100~500달러가 아닌 10만~50만 원의 카드빚을 지고 있을 뿐이다. 달러 모으기에 돌입하면 달러를 갖고 있는 부자들이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부자들이 달러를 내놓는다면, 그들은 또 원화 약세 덕분에 떼돈을 벌게 될 것이다. 작년 10월 말 1000달러(당시 원화로 약 90만 원)를 구입한 사람이 지금 그 달러를 판다면 130만 원 이상을 받게 되니 1년 만에 40%가 넘는 초고율의 수익을 얻는 것이다. 10년 전 IMF때 부자들은 고이율 덕분에 돈 벌고, 헐값에 나온 부동산을 사들여 돈 벌었다. 경제가 위기를 맞으면 결국 서민들이 재주를 부리고, 돈은 부자들이 가져가는 것이다(모든 부자가 재미를 보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서민들은 충분히 학습을 했다. 그들은 달러를 내놓지 않을 것이며 내놓을 달러도 없다. 그런데도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은 달러 모으기를 입에 담는다. 그래서 서민들은 또 소중한 깨달음을 얻는다. 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았다더니, 빈털터리가 되었던 그 1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이야기구나.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잃어버렸던 것은, 아니 잊고 살았던 것은, 부패와 무능과 냉전이었구나...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