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영월, 흐르면서 머물면서 강들이 빚은 아름다움

몽당연필62 2009. 1. 30. 13:38

영월, 흐르면서 머물면서 강들이 빚은 아름다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민, 아니 대한민국 국민에게 강원도는 축복이다. 강원도는 수려한 산과 계곡 그리고 골골마다 흐르는 맑은 물로 그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휴식을 제공하고 재충전의 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영월군은 태백산맥의 품에 깊숙이 들어앉아 자연경관이 빼어난데다, 아기자기한 박물관도 많아 여느 농산촌과는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고장이다.


영월(寧越)은 서울에서의 거리가 그다지 멀지 않은데도 공연히 멀다고 생각되는 고장이다. 산이 깊기도 하거니와 세조(수양대군)가 조카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찬탈하고 반역을 도모하지 못하도록 멀리 유배 보낸 곳이라서 그럴 것이다. 물론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예전에는 산간지역인 영월 땅이 평지의 천리보다도 더 멀었을 터이나, 지금은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으니 가까운 곳임에 틀림없다.


아름다운 자연 속으로 떠난 여행

서울에서 출발해 중부고속도로와 영동고속도로를 거치고 다시 중앙고속도로를 달리다 신림IC를 통해 영월 땅으로 접어들었다. 첫 방문지는 영월군의 가장 서쪽인 수주면의 요선암과 요선정.

요선암주천강 물줄기가 오랜 세월에 걸쳐 깎고 다듬어 빚어낸 반석과 주변의 바위들로, ‘요선(邀僊)’은 ‘신선을 맞이한다’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요선암 옆으로 깎아지른 듯한 낭떠러지가 까마득히 솟아있고, 그 꼭대기에는 요선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요선정은 통일신라 때부터 작은 암자가 있던 곳인데 바위를 깎아 새긴 불상이 남아 있다. 요선정에 올라 주천강을 내려다보니 강물이 그지없이 맑다. 물이 얼마나 깨끗하면 강 이름이 ‘술이 솟아나는 샘(酒泉)’이겠는가. 가히 신선이 노닐만한 경치임에 고개를 끄덕이다 동네 주민인 듯한 사람에게 물으니 마을 이름도 무릉리(武陵里)란다.

모처럼 고향에 온 듯 여유있는 여행길, 서면의 영월 책 박물관으로 가는 길에 주천면 판운리에 섶다리가 있다고 하여 가보기로 했다. 섶다리는 나무의 잔가지를 이용해 사람이 건너다닐 수 있게 임시로 놓은 다리이니, 무슨무슨 대교 하는 이름으로 크기를 자랑하는 현대식 교량과 비할 바는 아니겠으나 시골의 운치와 정서를 느끼기에는 그만 아니겠는가.

 

판운리에 이르니 눈앞에 평창강이 흐르고 그 위로 길이 50~60m쯤의 섶다리가 놓여 있다. 통나무로 교각을 세우고 그 위에 다시 통나무를 깔아 소나무 가지를 얹고 흙을 덮었다. 마치 구름다리처럼 흔들리는 폭 1m 남짓의 섶다리를 건넜다가 되돌아오는데, 저만치 콘크리트 교량인 판운2교 위를 씽씽 달리는 자동차가 보인다. 속도와 효율만이 미덕인 이 시대에, 천천히 지나야 하고 여럿이 함께 건널 수도 없는 섶다리는 기다림과 양보의 정신을 말없이 가르쳐주고 있는 듯하다. 

이번에는 평창강을 왼쪽으로 끼고 난 비포장도로를 한참이나 달려 서면 광전리에 있는 영월 책 박물관으로 향했다. 이 박물관은 폐교가 된 학교를 활용해 꾸민 것으로 1999년에 문을 열었는데, 모두 6000여 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으며 3개의 전시실에 각종 고서적과 1960년대의 교과서, 학습 부교재, 잡지 등을 선보이고 있다. 유리 너머 전시대에 놓인 수십 년 전의 교과서와 공책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마치 어린 시절로 시간여행을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영월의 강들은 박물관도 만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2읍 7면 1출장소의 행정 조직에 인구 4만여 명인 영월에 여러 개의 박물관과 전시관이 있다는 점이다. 박물관으로는 이곳 책 박물관을 비롯해 곤충 박물관(북면 문곡리), 조선 민화 박물관(하동면 와석리), 동강 사진 박물관(영월읍 하송리)이 있고 미술관이나 전시관으로는 국제 현대 미술관(영월읍 삼옥리), 묵산 미술관(하동면 와석리), 단종 역사관(영월읍 영흥리), 난고 김삿갓 문학관(하동면 와석리) 등이 있다. 영월이 이렇게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 및 전시관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이곳 사람들이 그만큼 자신들의 고장을 사랑하고 지키려는 마음이 크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영월읍에 볼거리가 많다지만 그 중간에 또 하나 놓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한반도 모습을 빼닮았다는 서면 옹정리 선암마을이다. 선암마을 한반도 지형은 굽이굽이 휘돌아 흐르는 평창강이 주천강과 합류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빚어낸 걸작. 선암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강 건너편 조망대에 오르니 아닌 게 아니라 어쩌면 그리도 우리의 땅 모습을 똑 닮았는지! 조망대에는 한반도 지도를 놓아두어 선암마을의 땅 모습과 비교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곳 땅 모습이 더욱 신기한 것은 단순히 한반도를 닮아서가 아니다. 동해안에 해당하는 곳은 강에서 급경사를 이루고, 남해안에 해당하는 곳은 다도해를 나타내기라도 하는 듯 바윗돌이 점점이 널려있으며, 서해안에 해당하는 곳은 드넓은 갯벌처럼 모래와 자갈이 퇴적해 있으니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이쯤에서 이토록 진기하고 아름다운 땅모습을 빚어낸 영월의 강들에 대해 사설을 좀 늘어놓아야겠다. 영월에는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많아 그만큼 계곡이 깊고 골마다 남한강 상류인 하천들이 흐르고 있다. 영월군은 형세가 동서로 길쭉한 모습인데 서쪽에서 흘러오는 주천강과 북쪽에서 흘러오는 평창강(영월 사람들은 판운강이라 부른다)이 서면에서 합류해 영월읍으로 흐르면서 서강을 이룬다. 서강은 또 영월읍에서 몇 해 전 댐 건설 문제로 전국에 널리 알려진 동강을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남한강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고, 이 남한강은 하동면에서 영월의 동쪽 지역을 감돌아 흘러온 옥동천을 보탠 다음 단양을 거쳐 충주호에 이른다. 이 강들은 하나같이 물이 맑고, 때로는 급하게 때로는 온유하게 흐르면서 곳곳에 비경을 숨겨놓았다. 그래서 영월에서는 해마다 여름이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특히 동강을 중심으로 래프팅과 트래킹을 즐기고 있다.  

영월읍으로 접어들어 처음 찾은 곳은 동강 사진 박물관이다. 대도시도 아닌 이런 산촌에 사진 박물관이라니 의아한 생각을 가졌는데, 박물관 건립 연유를 듣고 보니 영월 사람들의 동강과 환경에 대한 지극한 사랑에 이내 고개가 끄덕여진다. 2005년 개관한 동강 사진 박물관은 2002년부터 해마다 개최하는 동강 사진축제에 참여한 작가와 수상자들이 기증한 작품과 영월 군민들이 기증한 작품, 130여 점의 촬영 장비를 소장하고 있다. 3개의 전시실에서는 상설 및 기획 전시가 이어지면서 격조 높은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낸다.


섬 아닌 섬에 갇힌 소년 임금 단종의 비애

영월 하면 아무래도 우리 역사의 슬픈 임금인 단종(1441~1457년)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겠다. 단종은 조선 제 6대 왕(재위 1452∼1455년)으로 열두 살 어린 나이에 즉위하였으나 3년 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상왕이 되었으며, 성삼문 등 사육신의 복위운동이 발각되자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이곳 영월에 유배되었다. 그후 다시 수양대군의 동생인 금성대군의 복위운동이 발각되자 서인으로 강등되었고 결국 억울하게 죽어갔다.  

서강이 영월읍을 앞두고 유유히 감돌아 흐르는 남면 광천리의 청령포는 단종이 유배생활을 했던 곳이다. 청령포는 서쪽이 험준한 암벽으로 막히고 나머지 세 방향은 강물로 둘러싸여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섬 아닌 섬에 갇혀 외부와 단절된 채 이 적막한 곳에서 얼마나 외롭고 두려운 나날을 보냈을까. 강물도 푸르고 소나무숲도 푸른 청령포는 단종의 비애가 서려있기에 수려한 절경마저도 애잔하게 느껴진다.

단종의 무덤인 장릉은 청령포에서 가까운 영월읍 영흥리 야산에 있다. 단종은 반역을 도모한 죄인의 신분으로 사약을 마시고 죽었기 때문에 그의 장례가 제대로 치러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시신마저 강물에 던져졌다. 후환이 두려워 아무도 시신을 수습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을 때 영월 호장 엄흥도가 시신을 업어다가 몰래 묻은 뒤 몸을 숨겼다고 한다.  

장릉 입구에는 영조 2년(1726년) 엄흥도의 충절을 기리고자 어명으로 세워진 정려각 있고, 그 옆에는 2002년 단종 역사관도 건립되어 단종과 관련된 유품과 사료를 모아 전시하고 있다. 단종 역사관 마당에는 수양버들 몇 그루가 마치 산발이라도 한 것처럼 가느다란 줄기들을 늘어뜨리고 있는데, 수양버들이란 이름이 수양대군의 이름을 따서 붙여졌다는 말도 있으니 단종 역사관의 수양버들은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강 기슭에 앉아 물소리 들으며 별을 보다

영월읍 봉래산 800m 정상에 세워진 별마로 천문대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별마로’는 ‘별’과 정상을 뜻하는 ‘마루’, 고요하다는 의미인 ‘로’의 합성어라고 한다. 2001년 개관한 이 천문대는 대형 망원경을 통해 성운과 성단, 운하 등 우주의 실제 모습을 자세히 관측할 수 있는 주관측실과 다양한 망원경으로 행성과 달 표면, 태양 흑점 등을 관찰할 수 있는 보조관측실, 시청각실 및 전시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별마로 천문대는 자연과 우주의 신비를 직접 확인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월읍에서 봉래산 정상에 이르는 꾸불꾸불한 산길이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이다. 또 이곳에서는 낮에는 영월읍 시가지와 겹겹이 둘러진 영월의 산들이, 밤에는 영월읍의 야경이 한눈에 들어와 가슴이 확 트인다.  

별마로 천문대까지 둘러보니 시간이 제법 흘렀다. 남은 해를 가늠하며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어라연. 어라연은 영월읍 거운리에 있으며 동강의 비경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인데, 고기가 비단결같이 떠오르는 연못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동강이 이곳에 이르러 크게 물굽이를 이루면서 급한 유속을 잠시 늦춰 연못처럼 보이는 것이다.

어운리에 이르러 어라연 안내 팻말을 보니 왕복 7㎞ 거리에 도보로 3시간 반이 걸린단다. 팻말이 가리키는 대로 길을 잡는데, 바닥이 울퉁불퉁 험할 뿐만 아니라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서로 비킬 수도 없게 좁은 산길이다. 차를 돌리기도 마땅찮아 가는 데까지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식은땀을 흘리며 30분 정도 가니 마침내 동강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젠 찻길도 끝나고, 1㎞만 더 걸어가면 어라연. 하지만 이미 날이 저물어 더 이상 갈 수가 없다. 할 수 없이 강기슭에 앉아 어둠에 잠겨가는 동강을 하염없이 바라보는데, 무수히 널린 바위와 돌덩이에 몸을 부딪치며 흘러가는 물소리만 폭포 소리처럼 웅장하게 계곡을 가득 메운다. 그리고 하늘에선 낮이라 천문대에서 보지 못했던 별들이 하나 둘 다소곳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영월에서 유난히 빨리 날이 저물었던 것은,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발걸음을 무디게 했기 때문이리라. 하동면 진별리의 고씨동굴과 와석리의 방랑시인 김삿갓 유적지, 오염되지 않은 청류와 기암괴석이 넋을 잃게 한다는 상동읍의 칠랑이계곡 등을 마저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 속에 돌아갈 채비를 하였다. 하지만 그 아쉬움이 곧 언젠가는 다시 영월을 찾아와야 할 이유이기에 발길을 돌리는 마음이 무겁지만은 않았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