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태백, 한강과 낙동강이 출발하는 시원(始原)의 땅

몽당연필62 2009. 1. 6. 10:51

 

태백, 한강과 낙동강이 출발하는 시원(始原)의 땅


2009년 기축(己丑)년의 시작이다. 모든 시작은 경건한 법, 새해에 처음 소개하는 여행지도 ‘시작’과 관계가 깊어 마음을 조신하게 하니 바로 강원도 태백시이다. 우리 국토의 젖줄 한강과 낙동강이 태백에서 발원해 긴 여정에 오르며, 개천절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태백산에 있으니, 태백을 찾는 마음이 어찌 경건하고 조신하지 않을 수 있으랴.


강원 태백(太白)시는 한반도의 등줄기 태백산맥의 영산(靈山)인 태백산을 끼고 해발 700m의 고원에 형성된 산간 도시이다. 304㎢의 면적에 8개 동(이는 행정동이며, 법정동으로는 17개 동)으로 이뤄졌고, 인구는 5만 명 정도이다. 태백은 과거 탄광도시로 이름이 높았지만 석탄산업이 크게 위축된 지금은 관광도시로서 면모를 새롭게 하고 있다.


석탄이 성쇠 좌우… 현재는 관광도시로 거듭나

태백은 석탄에 의해 성하고 석탄에 의해 쇠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1950~80년대 국가 재건과 경제 성장 시기에 무연탄 공급기지였던 태백은 대형 광업소와 여기서 일하는 광원 및 가족들로 인해 제법 번성한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1989년 석탄산업합리화 조치로 40여 개의 탄광 중 한두 개만 남고 관련 산업도 위축되자 광원을 비롯한 주민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떠남으로써 태백은 위기에 놓였다. 1987년 12만 명을 넘었던 인구가 2001년 현재와 큰 차이 없는 5만 6000여 명으로 줄었으며, 그들이 떠난 사택은 흉물처럼 버려져 도시가 폐허나 다름없었다.

‘크게 밝은 뫼’라는 태백산의 영험이었을까, 다행히 태백에는 큰 강의 발원지를 비롯한 관광자원이 있어 완전히 어둠에 잠기지는 않았다. 태백에 남은 사람들은 버려진 광원들의 사택을 철거하고 지역 축제를 개발하는 등 자신들이 사는 고장을 탄광도시에서 관광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 전력을 쏟았다. 그 노력은 마침내 결실을 얻어 암울했던 도시는 깨끗하게 정비되었으며 폐광으로 버려진 갱도와 탄차까지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문곡소도동 태백산 도립공원 당골매표소를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태백석탄박물관(↑)은 국가 기간산업의 원동력이 되었던 석탄의 역할과 그 역사적 사실들을 한 곳에 모아 체계적으로 전시한 곳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석탄 박물관인 이곳은 암석·광물·화석·기계·도서·문서·향토사료·생활용품 등 석탄 관련 자료들을 통해 우리에게서 점차 멀어져가는 석탄의 기억을 되새기게 해준다.

 

 

석탄박물관 인근의 태백체험공원은 폐광지라는 지역 특색을 살려 조성한 체험관광지이다. 현장학습관·탄광사택촌(↑)·체험갱도 등의 시설로 구성되어 있어 생생한 탄광체험을 할 수 있으며, 사양산업이 된 석탄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광원들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


한강은 서해, 낙동강은 남해, 오십천은 동해로

한강을 지날 때면 가끔 ‘이 커다란 강의 시원(始原)은 어디이며 그 시원은 어떤 모습일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보면 어디선가 그 시작되는 모습을 보게 되겠지만 이 생각을 실행에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 태백 여행에서 마침내 그 소망을 이루게 되었다. 그것도 중부지방의 젖줄인 한강과 영남을 적시는 낙동강의 발원지를 모두 찾게 된 것이다.

한강 발원지 검룡소(이 기사의 첫 사진)는 삼수동 금대봉 기슭에 있다. 그곳에 가려면 관리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5㎞쯤 걸어야 하지만 길은 비교적 평탄하다. 강수량이 적은 겨울이어선지 계곡의 물이 거의 말라, 중간쯤에서는 아예 물길이 끊어져버렸다. 혹시 검룡소에 가더라도 물 없는 마른 못만 보는 것은 아닌가 조바심을 내며 발길을 재촉하는데 신기하게도 저만치서 다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온다.

 

 

촬촬촬 물소리를 들으며 이윽고 검룡소도착했다. 못의 지름이 4~5m쯤이나 될까, 맑디맑은 물이 솟아 석회암반에 1m 깊이의 물길을 내며 긴 여행길에 오르고 있다. 검룡소에서는 하루 2000~3000톤 정도의 물이 솟아나며, 늘 9℃정도의 온도를 유지한다고 한다. 물길이 시작되는 석회암반에는 물이끼가 검푸르게 끼어(↑)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음을 말해준다. 길이 514㎞ 한강의 시작인 것이다. 검룡소는 1987년 국립지리원에서 실측한 결과 최장 한강 발원지로 공식 인정되었다.

 

 

모든 물길은 이처럼 산골짜기에서 시작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착각이다. 낙동강은 뜻밖에도 시가지 중심부 평탄한 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둘레가 100m쯤 되고 주변이 아담한 공원으로 꾸며진 황지연못(↑)이 바로 낙동강 발원지로서, 여기서는 하루 5000t가량의 물이 용출해 남해바다까지 525㎞를 흘러간다. 황지연못이 낙동강의 근원이라는 사실은 ‘동국여지승람’, ‘척주지’, ‘대동지지’ 등에서도 밝혀 놓고 있다고 한다.

 

 

한편 검룡소와 황지연못을 오가는 길목 해발 935m의 고개는 한강·낙동강·오십천의 분수령이 되므로 삼수령(三水嶺, ↑)이라 불린다. 이 고개에 비가 내리면 어떤 빗방울은 한강을 따라 서해로, 어떤 빗방울은 낙동강을 따라 남해로, 또 어떤 빗방울은 오십천을 따라 동해로 흘러가는 것이다.


높이가 다르다, 하늘 아래 첫 기차역·동굴·우물

한반도의 백두대간 등줄기 해발 700m 정도의 고원지대에 내려앉듯이 형성된 태백시는 높은 고도에 걸맞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겨울이 긴 것은 물론이고, 여름이 시원하여 열대야가 없으며 모기가 살지 못한다고 한다. 산업과 관광도 당연히 고지대의 특성을 살려 발전했다.

 

 

태백의 대표적인 특산물로는 산나물과 고랭지채소가 꼽히는데, 특히 고랭지채소는 매봉산 정상에서 산 아래까지 펼쳐진 130만㎡(약 40만 평)의 광활한 면적에서 생산될 뿐만 아니라, 해발 1303m 산꼭대기에 세워진 풍력발전단지(↑)와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매봉산 풍력발전단지에서는 850㎾급 풍력발전기 8기가 바람을 이용해 거대한 풍차를 돌리며 청정에너지를 생산하고 있다.

 

 

삼수동(삼수동은 행정동이며, 화전동·창죽동 등 여러 개의 법정동으로 구성되어 있다)의 추전역과 용연동굴 역시 ‘높이’와 관련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곳이다. 추전역(↑)은 해발 855m의 고지대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기차역이다. 이 역은 원래 무연탄 수송을 위해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겨울철에 눈꽃열차를 운행하면서 새로운 관광명소로 떠올랐다. 용연동굴(↓)은 지대가 이보다 더 높아서, 금대봉 하부능선 해발고도 920m에 자리한 전국 최고지대의 석회암 동굴이며 길이는 843m이다. 동굴 안에는 다양한 석순과 종유석이 있고 폭포도 떨어진다.

 

 

태백산 정상 조금 못미처에 있는 사찰 망경사의 우물 용정(龍井)도 해발 1470m에 위치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샘물로 꼽힌다. 용정의 우물물은 예전부터 천제단에서 제를 지낼 때 제수로 올려지고 있다고 한다.

 

 

구문소동의 구문소관광지는 저지대(?)에 있지만 연못 주위의 암벽을 통해 우리나라 고생대의 지질을 살펴볼 수 있어 빼어난 경관 못지않게 학술적 가치도 큰 곳이다. 구문소(↑)는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에서 흘러온 물이 1억 5000만 년에서 3억 년 전 사이 석회암 산을 뚫고 지나가며 석문을 만들고 깊은 못을 이뤄 형성되었다.


천제단에서 하늘에 제사 올리는 민족의 성산 태백산

강원 도립공원인 태백산은 높이가 1567m로 태백시와 경북 봉화, 강원 영월의 경계를 이루는 명산이다. 날카로운 모습은 전혀 없고 중후한 느낌을 주는데, 암벽이 적고 경사가 완만한 데다 태백이 워낙 고지대이다 보니 시내에 있어도 태백산의 절반은 이미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태백산을 오르는 세 개의 주요 등산로 가운데 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당골매표소를 통해 산을 오르노라면 본격적인 산행으로 접어들기 전 단군성전(↑)이 나타나며 눈길을 끈다. 국조 단군을 모신 곳으로 매년 개천절에 단군제를 올리는 곳이다.

 

 

태백산 정상에 오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을 볼 수 있다. 천제단(↑)은 둘레 27m, 폭 8m, 높이 3m의 제단으로 위쪽은 원형이고 아래쪽은 사각형이다. 단군조선 시대 5대 임금인 구을 단군이 쌓았다고 전해지는 천제단에서는 예부터 지역 수령과 백성, 애국지사들이 천제(天祭)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도 개천절마다 천제를 지내고 강원도민체육대회 때는 성화 채화 장소가 되고 있으니 태백산은 그야말로 민족의 성산(聖山)이라 하겠다.

 

 

천제단 바로 아래에는 신라 진덕여왕 6년(서기 652년) 자장이 창건하였다는 사찰 망경사가 있다. 이곳 용정(龍井, ↑)의 샘물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을 뿐만 아니라 한국 100대 명수 중에서 가장 차고 맛이 좋다고 하는데, 샘에다 용왕각을 짓고 용신에 제사를 올리기에 용정이라 한다.

태백산은 봄의 연분홍 진달래부터 겨울의 하얀 눈까지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광이 일품이거니와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과 낙조 또한 장엄하기 그지없다. 특히 겨울이면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는 태백산의 대표적 고산 수종인 주목 군락(↓)이 눈꽃을 피워 관광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태백산에서는 해마다 1월 1일 해맞이 축제를 열고, 눈이 많은 시기에는 눈축제도 개최한다. 올해의 눈축제는 1월 30일부터 2월 8일까지 열흘 동안 예정되어 있다.

 

 

한편 태백에서는 천제와 해맞이, 눈축제 외에도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철쭉이 한창인 초여름 태백산 철쭉제를 시작으로 황지연못 낙동강 발원제, 검룡소 한강대제, 당골광장 및 시내 일원 쿨시네마 페스티벌, 황연동 해바라기축제 등이 늦여름까지 이어진다. 태백은 이제 탄광도시로서의 영화를 기억으로 간직한 채 고원지대의 관광도시로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몽당연필/

 

* 이 기사에 사용된 사진 가운데 구문소, 천제단, 용정, 주목 군락 장면은 태백시청에서 월간 '전원생활' 2009년 1월호에 제공한 것임을 밝히며, 도움을 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