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70살 넘은 노인이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몽당연필62 2008. 10. 17. 16:15

70살 넘은 노인이 무슨 농사를 짓느냐고?


쌀 소득보전 직불금 관련 기사들을 보다가 어느 한 기사의 제목에 눈길이 멈췄다. ‘한나라 김학용 의원 70세 부친, 실제로 농사 짓나?’라는 기사다. 마을주민 “일흔 넘은 노인이 무슨 농사를 지어”라는 소제목도 붙어 있다.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81017080123514&p=viewsn&RELATED=R6)


여기서 시선이 붙들린 이유는 특정 당이나 인물 때문이 아니라, 이 기사가 ‘70살이면 너무 늙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고 있기 때문이었다. 70살은 농사짓기에 벅찬 고령일까. 만약에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그리하여 위에 연결해둔 기사를 쓰고 제목을 뽑았다면, 그는 농촌을 정말 모르거나 다른 의도를 가진 기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지금 농촌에서 70살은 조금 과장해서 ‘한창 때’이기 때문이다.


도시 직장인들이 50대 중반이면 정년이나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떠나는 것과 달리, 농민들은 나이와 관계없이 ‘농촌에서 사는 것 자체가 농사짓는 것’이다. 농가인구가 많던 시절에는 나이대접이라도 받았지만, 젊은이들이 떠나버린 지금 농촌에서는 70살 넘었어도 노인대접조차 받을 수가 없다.


일일이 자료를 들추고 근거를 들이댈 필요도 없다. 77세인 아버지가 경운기를 운전하시고, 75세인 장인은 쟁기질을 하고 계시다. 내 친가나 처가나 동네마다 허리 꼬부라지고 관절염 앓으면서도 삽 메고 호미 든 노인들 투성이이다. 그렇게 농사 지어 자식들에게 쌀을 보내고 고춧가루를 부친다. 그것이 우리의 농촌 현실이다.


전업농민이 아니면서 직불금을 받아먹은 김학용 의원은 분명히 떳떳하지 못한 짓을 했으니 비난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농촌 인구 고령화의 심각성이나 현실을 모르면서 '70살 넘은 노인이 설마 농사를 짓겠느냐'는 투의 기사를 쓰고 제목을 뽑은 기자도 반성해야 한다. 단언하건대, “일흔 넘은 노인이 무슨 농사를 지어”라고 말했다는 마을 주민도 기자가 가공해낸 인물이 아니라면 그 발언의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농촌에서 70살은 분명히 현역 농사꾼이다. 70살이 넘어 농사를 못(안) 짓는다면 질환이 있거나 농사를 그만두고 싶어서일 것이다. 때문에 "70살이 넘었는데  농사는 무슨!" 하고 말할 일이 아니다. 이처럼 늙도록 고생하며 농사짓는 사람도 직불금 못받는 경우가 많다는데... 무자격자이면서도 직불금을 받아먹은 자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지는 이유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