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서천, 전통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

몽당연필62 2008. 12. 1. 10:37

 

 

서천, 전통과 자연의 아름다운 조화


충남 서남부에 위치한 서천은 금강 하류와 서해에 접해 들이 넓고 수산업도 발달했다. 이러한 환경 때문에 사람들은 아직도 전통적인 삶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며, 자연 또한 때 묻지 않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한산모시를 비롯한 전통과 금강 및 서해안 일대의 자연은 아름답게 조화를 이뤄 서천의 미래를 밝히는 동력이 되고 있기도 하다.


차령산맥 끝자락에 앉아 금강 하류를 두르고 서해에 임한 충남 서천(舒川)군은 358㎢의 면적에 2읍 11면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졌으며 인구는 약 6만 명이다. 가장 높은 산이라야 300m가 조금 넘을 정도(희리산 329m, 천방산 324m)로 지대가 낮고, 논밭은 전체 면적의 41%나 될 만큼 들이 넓다.  

서울에서 출발,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 두 시간 정도 달려 도착한 서천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서천읍 군사리에 있는 서천특화시장(↑)이다. 1만 4500㎡(4390평)의 부지에 지상 2층 연면적 6550㎡(1980평)로 2004년 개장한 이 시장에는 생선과 건어물 등 수산물 점포 113개와 청과물 점포 98개 등 모두 322개 점포가 문을 열고 있다. 서천특화시장의 매력은 이곳에서 서천의 특산물을 한꺼번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 특히 서해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활어와 횟감이 저렴하게 판매돼 인근 보령과 군산은 물론 익산 사람들도 자주 찾는다고 한다.


목은 이색과 월남 이상재가 서천 사람

특화시장을 둘러본 다음 서천 동쪽지역부터 남쪽을 거쳐 서북쪽 해안까지 빙 돌기로 했다. 기산면으로 접어드니 신산리에 이하복 가옥(↓)이라는 정갈한 초가집이 있다. 안채·사랑채·고방채 등으로 이뤄진 이 가옥은 중부지방 전통 농가의 모습을 잘 간직해 중요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마당에 잔디가 곱게 깔렸고 멍석과 그네(일부 지역에서는 ‘홀태’라고 한다) 등 옛 농기구들도 보관돼 있어 조상들의 생활상이 느껴진다.  

인근 화산리에는 서천식물예술원(↑)이 있다. 연꽃정원·미로정원·솟대정원·옹기전시장·분재전시장 등으로 꾸며진 서천식물예술원은 한 교육자의 정성이 빚은 결실이다. 2003년 초등학교 교장을 끝으로 퇴임한 김재완 원장이 40여 년 동안 수집하고 가꾼 것들을 정리해 무료로 개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식물원은 학생들의 자연생태 학습장과 일반인들의 휴식공간으로 이용되면서 우리 전통문화에 대한 이해를 높여주는 한편 자연의 소중함도 심어주고 있다.

목은 이색(1328~1396)은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와 더불어 여말삼은(麗末三隱)으로 꼽히는 인물인데, 그의 묘소와 위패를 모신 문헌서원(↓)이 기산면 영모리에 있다. 고려 말엽 문신인 이색은 이곳 한산(韓山) 이씨로서 공민왕 때 개혁정치의 중심으로 활약했으나 조선 창업 후 개국 세력에 합류하지 않고 한동안 한산에서 지냈다(묘소가 있는 기산면을 비롯해 한산면·화양면·마산면 등이 고려 때는 한산현에 속했다). 문헌서원에는 이색의 아버지인 이곡, 조선 세조 때 사육신의 한 사람인 이개 등도 배향되어 있다.

한산면 종지리에서 태어나고 자란 월남 이상재(1850~1927) 역시 한산 이씨이다. 이상재는 한말과 일제 강점기의 교육자이자 정치가였고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부회장으로서 민중 계몽에 주력하기도 했다. 그가 태어난 집은 철거되어 복원을 준비하는 중이며, 바로 앞에 최근 유물관(↑)이 완공되어 그가 살던 시대와 활약상을 살펴볼 수 있다.


한산세모시 옷 입고 소곡주에 취해 갈대밭 거닐어볼까

서천의 대표적인 특산물로는 한산면의 모시베를 든다. 이곳 모시베가 얼마나 유명한지는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대사전에 ‘한산세모시’라는 말이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 지방에서 나는 올이 가는 모시’라는 설명과 함께 올라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한산과 인근 지역에서는 백제 때부터 야생 모시를 재배했으며 조선 때는 모시베가 진상품으로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한산세모시는 백옥처럼 희고 직조 상태가 고르며 오래 입어도 윤기를 잃지 않는 것이 특징이어서 최고의 여름철 옷감으로 꼽힌다.  

한산면 지현리에는 전수교육관(보수공사로 인해 올해 12월까지는 관람할 수 없다), 직조 과정별 작업장, 한산세모시 기능보유자 공방 등을 갖춘 한산모시관이 조성돼 있다. 공방에서는 모시짜기 기능보유자가 직접 베 짜는 모습(↑)을 보여주고, 해마다 5월이면 이 일대에서 모시문화제를 열어 한산세모시의 전통과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올해 한산모시문화제는 6월 13일부터 16일까지 열렸다).  

백제 왕실에서 즐겨 마셨다는 소곡주(素穀酒↑)도 지현리에 전승되고 있다. 빛깔이 청주와 같은 소곡주는 단맛이 돌고 점성이 있으며 들국화에서 비롯된 그윽한 향취를 지녔다. 술 만드는 과정에서 며느리가 맛을 보느라고 젓가락으로 찍어 먹다보면 저도 모르게 취하여 일어서지도 못하고 앉은뱅이처럼 엉금엉금 기어다닌다고 하여 ‘앉은뱅이술’이라는 재미있는 별명까지 가졌단다.

요즘 농촌에서는 흔히 어메니티(amenity)라고 하는 아름다운 경관이나 쾌적한 환경 등 자연자원을 관광상품으로 개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금강변인 한산면 신성리의 광활한 갈대밭은 서천의 소중한 어메니티라고 할 수 있다. 신성리 갈대밭(↓)은 200m폭의 갈대숲이 1㎞ 이상 펼쳐지며 장관을 이루는데, 습지 생태가 잘 보존돼 있고 계절에 따라 철새들이 날아와 체험학습장으로도 훌륭한 조건을 갖췄다. 현재 갈대밭 체험을 쉽게 할 수 있도록 편의시설을 확충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내년부터는 더욱 편리하고 색다른 갈대밭 체험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철도 장항선의 종점은 장항이 아니다

금강은 남한에서 낙동강과 한강에 이어 세 번째로 긴 하천이다. 길이가 약 400㎞에 이르는 금강은 하류가 충남과 전북의 경계를 이루는데, 1990년 서천과 전북 군산을 잇는 1840m 길이의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이 일대가 거대한 담수호로 변했다. 금강 하굿둑(↓)은 홍수와 바닷물 역류로 인한 염해를 방지하고 농업용수 저장과 공급을 풍부하게 하며 서천과 군산을 잇는 도로의 기능까지 지녀 서천 사람들의 생활에 풍요와 편리를 더해주었다.  

금강 하구가 담수호로 바뀌면서 찾아오는 철새도 크게 늘었다. 하굿둑이 지척에 보이는 마서면 도삼리 일대가 고니·청둥오리·검은머리물떼새·가창오리 등 철새 도래지로 각광받는 곳. 도삼리에는 철새 탐조대(↑)가 세워져 금강에서 노니는 새들을 관찰할 수 있고, 겨울철이면 철새축제도 열리고 있다.

이윽고 도착한 곳이 장항읍. 장항은 철도 장항선의 종착지이기에 장항역을 둘러보려니 ‘장항화물역’은 있는데 ‘장항역’이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장항역(↓)은 올해 초 3㎞ 남짓 떨어진 마서면으로 이전했단다.  

열차로 서천군에 가려는 사람은 한 가지 알아둘 게 있다. 서울에서 서천으로 갈 경우 용산에서 장항선 열차를 타게 되는데, 장항선 열차의 종착역은 예전과 달리 장항이 아닌 익산이나 서대전이라는 점이다. 철도 경부선 천안에서 갈라지는 장항선이 올해부터 금강 건너 군산선과 이어져 열차가 익산이나 서대전까지 운행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장항은 종착역이 아닌 경유역이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장항 시가지는 생각보다 쓸쓸한 분위기를 풍긴다.


서천을 더욱 아름답고 풍요롭게 하는 서해

서천군은 서쪽이 서해에 닿아 있다. 간만의 차가 크고 곳곳에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 서천의 해안은 아름다운 관광지이자 서천 사람들에게 풍요를 더해주는 수산자원의 보고이기도 하다. 마서면 송석리, 비인면 선도리, 서면 월호리에는 갯벌 체험장도 마련되어 어린이 등 찾는 이들에게 자연의 신비와 소중함을 가르쳐주고 있다.  

섬이 아닌데도 수평선 위의 일출과 일몰을 모두 볼 수 있다는 마량포구를 향해 가는 길. 비인면 성북리 지나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비인5층석탑(보물 제224호↑)을 잠시 살펴보고 서면으로 향했다. 서면은 반도(半島) 지형으로, 육지가 서쪽을 향해 내닫다 남쪽으로 굽어지며 마치 팔을 뻗어 바다를 품에 안으려는 듯한 형상인데, 지역 전체가 관광지라고 해도 좋은 곳이다.  

도둔리의 춘장대해수욕장(↑)은 백사장의 경사가 1.5도에 불과할 만큼 완만하고 물이 맑으며 파도가 잔잔해 여름철 피서지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춘장대해수욕장에서 홍원항으로 가는 길목 언덕 위에는 바다 속의 신비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서천해양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선박 모양을 본떠 만든 이 박물관에서는 희귀 어종을 비롯한 해양 생태계를 직접 체험할 수 있으며, 그림처럼 펼쳐진 해안선과 일몰을 바라볼 수 있다. 홍원항(↓)은 규모는 작지만 서해의 주요 어장들과 가까워 수산물 유통이 활발한 포구로, 특히 가을이면 전어축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올해 홍원항 전어축제는 9월 27일부터 10월 10일까지 열렸다).  

육지로 서천의 서쪽 끝에 해당하는 마량리는 종교나 관광에서 의미가 큰 마을이다. 이 마을을 통해 기독교(기독교 중에서도 개신교를 일컫는 것으로 보인다)의 성경이 최초로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기록에 따르면 1816년 영국 해군 머레이 맥스웰(Murray Maxwell) 대령이 서해안 탐사를 위해 마량진에 들렀다가 마량진 첨사 조대복에게 성경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마을 앞 바닷가에는 ‘한국 최초 성경 전래지(↓)’라는 표석이 세워져 있고 일대를 성역화하는 사업도 추진되고 있다.  

마량리는 또 섬마을이 아니지만 수평선에서 해가 뜨고 수평선으로 해가 지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다. 그러나 수평선의 일출과 일몰은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해가 짧은 11월에서 2월 중순까지만 볼 수 있다. 마량리 포구 뒤쪽에는 500년 이상 된 동백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뤄 봄이면 붉은 꽃망울을 터뜨린다.  

마량리 방파제(↑)에 앉아 기분 좋은 피로를 느끼며 여정을 접으려니, 해는 바다로 잠겨드는데 저만치 횟집들의 불빛이 점차 선명해진다. 싱싱한 해산물을 맛보지 않고서야 어찌 귀로에 오르랴.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