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그네가 가는 길

영암, 신령스러운 바위산 위로 보름달이 뜬다

몽당연필62 2008. 10. 22. 18:55

영암, 신령스러운 바위산 위로 보름달이 뜬다

 

전라남도 영암군의 얼굴은 월출산이다. 이름 그대로 ‘달이 떠오르는 산’인 월출산(月出山)은 높이가 809m이며 평야지대에 우뚝 솟았는데, 산 전체가 기암과 괴석으로 이뤄져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영암(靈岩)의 지명까지 낳았다. 영암은 이렇게 험한 산이 있는가 하면 너른 평야가 있고 영산강이 흐르며 서해바다에 접해 있으니, 산·들·강·바다가 모두 있는 보기 드문 고장이다.


이미자 씨가 부른 노래 ‘낭주골 처녀’를 아시는지? 하춘화 씨가 부른 ‘영암 아리랑’을 아시는지? 그럼 두 노래의 공통점도 아시는지? 1970년대 초반 당대의 최고 가수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불러 크게 유행했던 이 노래들은 모두 전라남도 영암군을 소재로 한 것이다. ‘낭주’는 영암의 옛 이름이다.

전남 서남부에 위치한 영암군은 566㎢의 면적에 2읍 9면의 행정구역으로 이뤄져 있고 인구는 약 6만 명이다. 영암은 월출산국립공원이 있고 기름진 평야가 있으며 영산강이 굽이져 흐를 뿐만 아니라 서해바다와도 접했으니, 산·들·강·바다가 모두 있는 그야말로 천혜의 고장이다.


기암괴석 즐비한 ‘호남의 금강산’ 월출산

나주나 목포, 강진 방향에서 영암을 향해 가다 보면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 보이는데, 바로 영암의 상징 월출산이다. 영암군의 동쪽에 솟아 강진군과 경계를 이루는 월출산은 이름 그대로 ‘달이 떠오르는(月出) 산’으로 높이가 809m인데, 산 전체가 기암과 괴석으로 이뤄져 ‘신령스러운 바위’라는 영암(靈岩)의 지명까지 낳았으며 예부터 ‘호남의 금강산’이라 불려왔다.

 

평야지대에 솟았지만 기암괴석이 즐비해 예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볼려온 월출산.

 

월출산은 천태만상의 바위 전시장이다. 천황봉·구정봉·사자봉·도갑봉 등 봉우리들이 모두 바위이며, 드러난 기슭과 감춰진 계곡에도 기기묘묘한 온갖 형상의 바위들이 즐비하다. 특히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는 지상 120m 높이에 길이 52m, 폭 0.6m로 건설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구름다리로 알려져 있다. 이 아름다운 산 위로 휘영청 보름달이라도 밝으면 그 아니 절경이겠는가. 월출산의 풍광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조선 중기의 천재 시인 윤선도는 ‘산중신곡’에서 ‘월출산 높더니만 미운 것이 안개로다 / 천황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와라 / 두어라 해 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걷히랴’ 하고 노래하기도 했다.

월출산에 올라 탁 트인 사방을 둘러보면 느끼겠지만, 영암은 농경지가 전체 면적의 39%에 이를 만큼 들이 넓은 고장이다. 유유히 흐르는 영산강이 서해바다로 빠져들면서 영암에 충적평야를 형성해놓은 데다, 1981년 영산강 하구둑과 1996년 영암호 방조제가 준공되면서 드넓은 갯벌이 농경지로 개발된 덕분이다.

 

영산강 하구둑 배수갑문이 있는 삼호읍 나불리 일대는 영산호 국민관광지가 조성되어 영암 군민들은 물론 인근 목포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특히 이곳에는 위락시설 외에 1993년 전남도립 농업박물관이 개관하여 농경문화의 모든 것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약 3만㎡(9000평)의 부지에 전시 면적만 2640㎡(800평)에 이르는 농업박물관은 다양한 전통 농기구와 생활용품들을 전시해 이 지역의 오랜 농업 역사와 선조들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게 하고 있으며, 야외전시장에는 관람객들이 무자위와 디딜방아 등을 직접 체험할 수 있게 해놓았다.

 

학산면과 서호면 사이에 솟은 은적산(393m)을 한바퀴 도는 드라이브 코스가 괜찮다고 하여 학산면으로 접어들었다. 2차선으로 포장된 호젓한 도로를 따라 달리다 은곡리에 이르니 집영재(集英齋)라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보인다. 마당에 잡초가 무성하고 우물은 말랐으나, H자 형태를 띤 본채며 솟을대문의 위엄은 여전하다. 안내판의 설명을 보니 조선 후기에 세워진 서당 건물이란다. 과연 이름 그대로 ‘영재를 모아놓은 집’이 아닌가.

학산면 매월리와 미교리를 거쳐 서호면 금강리로 이어지는 길은 영산호를 따라 드리워져 있다. 이 지역은 영산강 하류라 예전에는 서해바다의 밀물과 썰물 때마다 급류가 소용돌이치던 곳이었으나, 하구둑이 생긴 이후로는 강이 아닌 호수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곳곳에 낚시꾼들이 보이고, 건너편 무안 땅은 헤엄을 쳐서 건널 수 있을 만큼 가깝게 보인다.


왕인 박사와 도선 국사가 영암 사람이다

일본 아스카(飛鳥) 문화와 나라(奈良) 문화의 원조가 된 것으로 알려진 백제 때 사람 왕인(王仁)은 군서면 구림리 출생이다. 18세에 오경박사에 등용된 왕인은 5세기 초 논어 10권과 천자문 1권을 가지고 도공(陶工) 및 와공(瓦工) 등과 함께 도일하여 일본인들에게 글과 기술을 가르쳐 학문과 기술을 전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월출산 기슭 군서면 구림리 왕인 박사 유적지에 건립된 영월관은 왕인 관련 자료들을 전시하고 있다.

 

왕인이 태어난 월출산 기슭 구림리 일대에는 그가 유학과 경전을 수학한 문산재와 책굴, 일본으로 배를 타고 떠난 상대포 등 유적이 있다. 상대포는 국제 무역항으로서 신라의 학자 최치원이 당나라로 유학을 갈 때에도 이곳에서 배를 타고 떠났다고 전한다. 영암에서는 해마다 4월 ‘왕인문화축제’를 개최하고 있기도 하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가치관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풍수와 음양지리설을 세웠으며 왕건의 고려 건국과 후삼국 통일을 예견한 승려 도선(道詵, 827~898), 왕건을 도와 후삼국 통일과 왕조의 기틀 확립에 크게 기여한 최지몽(崔知夢, 907~987)도 구림리에서 태어났다. 도선은 고려 제17대 인종 때 국사(國師)로 추봉되었는데, 인근 도갑리의 천년 고찰 도갑사가 신라 헌강왕 6년(880) 도선에 의해 창건된 것이라고 한다.

 

 

위 사진부터 구림리 대동계원들의 집회 장소인 회사정과 도기문화센터.

 

이들을 배출한 구림리의 대동계는 향약 성격의 주민 자치조직으로서 다수결 투표 등 민주적 전통을 500여 년 이상 이어온 것으로 유명하다. 또 1999년 건립된 도기문화센터는 도기 연구와 전승은 물론 체험학습의 장으로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한편 영암이 배출한 근대와 현대 인물로는 가야금 산조의 창시자인 김창조(1856~1919·영암읍 회문리) 선생, 제헌 국회의원으로 대한민국 헌법을 직접 작성한 김준연(1895~1971·영암읍 교동리) 선생 등이 꼽힌다. 영암 사람들은 이 고장에서 큰 인물이 끊이지 않고 배출되는 것은 월출산의 정기 덕분이라고 믿는다.

영암읍은 월출산의 신묘한 경관을 눈앞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한달음에 뛰어갈 수 있을 듯 가까이 보이는 거대한 바위산에서는 정말 알 수 없는 기(氣)가 느껴지는 듯하다. 영암은 최근 이 월출산의 기를 관광자원으로 개발했다. 영암군이 직접 투자하여 지난 7월 회문리에 세운 유원지 월출산 기찬랜드’가 그것이다.

월출산 계곡의 하나인 용추골의 물을 막아 조성한 7개의 야외 풀장과 기 건강센터, 기 건강도로 등으로 이뤄진 기찬랜드는 개장을 하자마자 몰려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특히 월출산 천황봉에서 발원한 맥반석 천연수를 사용하는 야외 풀장에서는 휴가철이 끝나가는 8월 중순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물놀이를 즐겼다. 영암에서는 해마다 정월대보름과 한가위 전날 밤에 ‘월출산 달맞이 음악회’를 여는데, 이번 추석 전야에는 기찬랜드에서 음악회가 열렸다. 

 

월출산의 수려한 경관을 보며 덕진면 영보리에 이르렀다. 월출산을 마주보고 있으며 야생차 체험 등 농촌체험을 할 수 있는 이 마을에는 영보정(永保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영보정은 조선 전기의 문신 최덕지 선생(1384∼1455)이 관직을 떠난 후 내려와 세우고 학문 연구에 정진하던 곳이었으나, 원래의 건물이 소실되자 후학들이 다시 세웠으며 현판을 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전한다.

시종면 옥야리에는 고려 현종 때부터 일제 강점 이전까지 나라의 안녕과 풍년·풍어를 빌기 위하여 남해 신령께 제사를 지내던 남해당지(海神堂址)가 있다. 나라에서는 동해의 양양, 서해의 풍천, 남해의 나주 등 세 곳에 바다를 주관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당집인 해신당(海神堂)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옥야리는 예전에 나주시에 속했으나 행정구역 개편으로 영암군에 편집되었다). 영암군은 신당 등 일부를 복원해 2003년부터 해신제를 지내고 있다.


전국에 이름 떨치는 쌀과 무화과와 낙지요리

영암은 들이 넓고 기름지다는 이야기는 앞에서도 한 바 있다. 그만큼 영암에서는 품질 좋은 쌀이 생산된다. 오랜 세월 상류로부터 끊임없이 강물에 실려와 쌓인 흙과 간척지의 풍부한 유기물 덕분이다.

‘달마지쌀’이라는 브랜드로 판매되는 영암의 쌀이 얼마나 좋은지는 객관적으로도 입증되고 있다. 2003년과 2004년 연속으로 ‘전남 베스트 브랜드 쌀’에 선정되었고, 2004년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가 품위, 품종·순도, 식미, 소비자 만족도 등을 평가해 선정한 ‘10대 우수 브랜드 쌀’에도 당당히 포함되었다. 이후 영암에서는 친환경 농법 확대 등으로 달마지쌀 품질 관리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있다. 달마지쌀을 생산하는 월출산농협은 특히 달마지쌀 ‘골드’라는 상품도 판매하고 있다.

 

8~10월에 삼호읍 일대를 지나다 보면 도로변 어디에서나 무화과를 파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무화과나무는 달걀처럼 둥글게 부푼 꽃받침 안에서 꽃이 피어 꽃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꽃이 없는 과일이라 불린다. 과일이 무르고 저장성이 약해 생과 유통에 한계가 있지만 워낙 달고 맛이 독특해 한번 먹어본 사람은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영암군에서는 전국 무화과의 90% 정도를 생산하니 그야말로 무화과의 천국인 셈이다. 삼호농협에서는 최근 냉장포장을 개발해 무화과 택배 판매를 하고 있으며, 가을에는 무화과 축제를 열기도 한다.

 

영암에서 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별미는 낙지요리다. 학산면 소재지인 독천리는 아예 ‘낙지마을’로 불릴 만큼 중심가가 낙지음식점들로 채워졌고, 연포탕·낙지비빔밥·갈낙탕·낙지볶음 등 낙지요리도 발달했다. 영산강 개발사업이 시행되기 전인 1970년대까지만 해도 지척에 바다가 있어 낙지가 많이 잡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다가 사라진 지금도 낙지요리는 남아서, 인근 신안과 무안 등에서 잡힌 낙지가 이곳 독천으로 와 미식가들의 입맛을 유혹하고 있다.

영암은 이렇게 산과 들과 강과 바다가 있고, 품질과 맛 좋은 농산물에 독특한 낙지요리까지 발달했으니, 그 모든 것이 월출산의 기와 신령스러운 바위의 영험인지도 모른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