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에서 쓰는 글

지하철은 나의 움직이는 독서실

몽당연필62 2008. 10. 1. 10:01

지하철은 나의 움직이는 독서실


출근과 퇴근 각 40분씩 하루 80분, 지하철을 타면 책을 펼치는 것이 몸에 배었다. 12년 전 국문학 공부를 하고 싶어 방송통신대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다. 직장에 매인 몸이라 따로 공부할 시간을 내거나 도서관에 가기가 힘들었기에, 출퇴근 시간이면 어김없이 타게 되는 지하철을 독서실 삼게 된 것이다.

 

하루 80분씩 독서 가능, 대학과 대학원도 지하철에서 졸업

지하철에서의 공부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버스에 비해 흔들림이 적은 지하철은 자리가 없어 서서 갈 때도 교재와 참고서를 보기에 별 불편이 없었다. 그리고 날마다 80분씩 하는 공부는 기대 이상의 효과를 가져왔다. 출퇴근 시간 외에 따로 한 공부가 거의 없었음에도 학점 잘 나온 것이 아까워 야간 대학원에도 진학했다(이때도 지하철이라는 훌륭한 독서실을 염두에 두었다).

이렇게 학업을 마친 이후에도 지하철에서 역사·경제·문학·처세 등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었다. 직장에서 실시하는 통신연수도 지하철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책을 펼치고 있는 시간의 태반이 졸음일지라도, 일주일에 책 한 권 읽기는 일도 아니다. 최근에 읽은 책으로는 ‘멋진 신세계’ ‘소설 장영실’ ‘이기는 습관’ ‘플립, 삶을 뒤집어라’ 등이 있다. 지하철은 나에게 움직이는 독서실인 셈이다.

그런 점에서 지하철로 출퇴근을, 그것도 집이 종점에서 가까운 덕분에 혼잡한 출근시간에도 자리 잡고 앉아서 독서를 할 수 있는 것은 나에게 축복이다. 길이 막히지 않으니 운행 시간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마음의 양식도 쌓고 있으니 말이다. 야근을 하고 택시를 탔을 때 억울한 것이 요금이 비싸서가 아니라 책 읽기가 힘들어서라면 믿으실는지.

 

지하철 출퇴근은 축복자투리 시간 모아 일년 수십 권 읽어

일거리도 많고 놀거리도 많은 현대인은 바쁘고 피곤하다. 지하철을 타면 책 대신 무료신문이나 DMB를 들여다보는 사람도 많고, 쏟아지는 졸음을 주체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이들에게 책 읽을 시간이 없다는 말은 일견 납득이 되지만, 또 때로는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책을 읽는 것은 옳고 무료신문이나 DMB를 보는 것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니 오해 마시길). 분명한 사실은 지하철을 타는 자투리 시간만으로도 일년이면 수십 권의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독서의 계절 가을이다.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런데 실제로는 가을에 서점이 가장 썰렁하다고 한다. 날씨가 놀러가기에 딱 좋기 때문이다. ‘독서의 계절’이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사실은 가을이면 매상이 떨어지는 출판업계에서 사람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고 짜낸 묘안이라고 하지 않은가.

며칠 전, 나의 움직이는 독서실 지하철에서 10월 한달 동안 읽을 책 다섯 권을 구입했다. 그리고 10월 첫날인 오늘 아침,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으며 역사의 향기 속에 출근했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