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딸내미 이야기

아빠는 딸 아닌 딸의 성적을 사랑하는 거죠?

몽당연필62 2008. 4. 30. 09:27

두 아이가 다니는 학교의 중간고사가 끝났습니다. 큰애와 작은애의 표정이 아주 대조적입니다. 3학년인 큰애는 자신의 수준을 이미 잘 알고 있기에 시험 결과에 일희일비하지 않지만, 고등학생이 되어 첫 시험을 치른 작은애는 충격이 큰 모양입니다.

 

큰애와 마찬가지로 작은애는 중학교 때 성적이 늘 상위 2% 안에 들었습니다. 그런데 외고생이 되어서는 그저 평범한 학생일 뿐입니다(나중에 석차가 나오면 알겠지만, 중하위권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다른 많은 학생들도 중학교 때는 난다긴다 하며 동급생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외고생이 되는 순간 작은애처럼 보통 학생 혹은 하위권 학생으로 전락(?)했습니다.

 

작은애는 첫 중간고사를 치러보고 좌절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습니다. 아이의 스트레스가 눈에 보입니다. 욕심 많은 아이는 어쩌면 일반고로 전학시켜달라고 떼를 쓸지도 모릅니다. 외고에서는 성적이 부진하지만 일반고로 전학하면 곧바로 상위권 학생이 되는 때문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각오하며 선택한 외고이기 때문에 작은애가 어서 냉정을 되찾고 적응하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큰애가 1학년이던 때, 애엄마가 학부모 반모임에 참석하면서 다른 몇몇 엄마들과 가까이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때 다른 엄마들도 아이의 성적에 적잖이 실망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1학년 마치고 성적을 보아서 내신성적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일반고로 전학시키자는 농반진반의 약속을 했더랍니다.

 

하지만 3학년이 된 지금 실제로 일반고로 전학한 학생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학을 하더라도 외고에서 견디지 못하고 도망쳐왔다는 빈정거림에 시달리거나, 다른 우수한 학생들로부터 견제와 왕따를 당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랍니다. 물론 외고에서 일반고로 전학한 학생이 견제와 왕따를 당한다는 것은 학부모들의 비약일 뿐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시험볼 때 성적에 연연하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땠니?" 하는 물음이 저절로 나오곤 합니다. 전에 하루는 큰애의 시험본 과목 점수가 모두 좋길래 "우리 딸 잘했네, 사랑해!" 했더니 큰애는 눈을 부라리며 말했습니다. "도대체 아빠는 딸을 사랑하는 거예요, 딸의 성적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시험을 잘봐도 기쁜 내색을 감추고 시험을 망쳐도 안타까운 마음을 숨기려 노력합니다. 고등학생이 되어 첫 중간고사를 망쳤다는 작은애의 성적 역시 분위기와 느낌으로 그것을 짐작할 뿐, 과목마다 점수를 물어보지는 않았습니다. 어쨌든 저는 아이의 성적이 아닌, 아이 자체를 사랑하는 아빠이고 싶습니다.

 

/몽당연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