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더위를 이기는 음식

몽당연필62 2008. 7. 10. 08:50

더위를 이기는 음식


땀을 많이 흘리는 여름에는 기력이 쇠해 입맛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입맛이 없을수록 먹는 것에 소홀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부터 더울 때 먹으며 기를 보하고 활력을 도모했던 음식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번 여름에는 과거의 음식이면서도 여전히 사랑받는 현재의 음식들을 먹으며 더위를 이겨보자.

 

 

삼계탕

앉아 있어도 누워 있어도 금세 땀이 솟아 온몸을 후줄근하게 적시는 삼복 여름. 피서(避暑)라는 말이 있기는 하나, 더위라는 것이 어디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이던가. 이쯤 해서 생각나는 것이 이열치열 되겠다. 요즘 인구에 회자되는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 라는 말이 곧 이열치열의 지혜가 아니겠는가.

삼계탕은 본디 ‘계삼탕’이라 불리던 것으로, 너무나 뜨거워서 입천장 데기 딱 좋은 대표적인 여름철 보양 음식이다. 영계의 내장을 빼고 인삼과 찹쌀을 넣어 고는데 여기에 대추와 밤, 은행 등을 더하기도 한다. 삼계탕을 먹어보면 더위 따위는 뜨거움 앞에 적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콩국과 미숫가루

보리를 베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장마가 시작된다. 비가 오면 들일은 접어두는 것이 당연한 일. 이때 집안에 벌어지는 행사가 있으니 온 가족이 머리 맞대고 콩을 추리거나 보리를 볶는 것이다. 그런데 콩 추리는 데는 어린애들이 오지 못하게 한다. 콩을 밟아 미끄러지면 얼굴이 얽는다나 어쩐다나.

장마가 물러가고 더운 날, 삶은 콩을 갈아서 식혔다가 시원한 물로 농도 조절하고 우무를 넣어 휘휘 저으면 콩국 제조 끝. 소금간이야 각자 입맛대로 할 일이다. 미숫가루는 찹쌀이나 멥쌀을 갈아 만들기도 하지만 고소하기로는 역시 보리를 간 것이 최고다. 얼음 동동 띄워 마시는 콩국과 미수는 시원하기도 하지만 급히 허기를 달래는 데도 그만이다.

 

 


수박

삼복에 삼계탕 있는데 수박 없으랴. 초복이든 말복이든 보양 음식 먹고서 수박으로 갈무리하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고 껄적지근하니 참 묘한 일이다. 그래서 복날이면 대야에 찬물을 받아 수박통을 띄우거나, 수박을 망에 담고 두레박줄에 매달아 열 길도 넘는 샘에 담갔다가 건져서 갈라먹는다.

그런데 남자들은 여자들 수박 먹는 자리에 함부로 기웃거리지 말지어다. ‘아줌마’들은 수박을 먹으며 “박은 박인데 톱으로 타지 않는 박은?” 하고 가볍게 수수께끼를 시작했다가 급기야는 “씨 파고 나서 먹는 것은?” 하고 강펀치를 날려버린다. 화들짝 놀라 더위야 확실히 잊겠지만, 수박 속살보다도 더 빨개진 당신의 얼굴은 어떻게 감추시려나.

 

 


보리밥

“꼬꼬댁 꼬꼬 먼동이 튼다. 복남이네 집에서 아침을 먹네. 옹기종기 모여앉아 꽁당보리밥, 꿀보다도 더 맛 좋은 꽁당보리밥. 보리밥 먹는 사람 신체 건강해.”

초등학교 때 그 의미도 제대로 모르면서 강제로 따라 불러야 했던 노래다. 노래가 아니더라도 날마다 지겹게 먹는 것이 바로 보리밥이었거늘. 어쨌거나 우리 민족은 지금이야 쌀이 남아돈다고 아우성이지만, 삼복이라고 해서 별식으로 찾을 필요가 없을 만큼 보리밥을 많이 먹었다.

더워서 못 견디겠다면 식은 보리밥 한 그릇 뚝딱 비우고 힘주어 방귀 한 번 뿡 뀌어보자. 제아무리 삼복더위라도 보리밥 방귀 소리에는 놀라 자빠지게 마련이다.


글 : 몽당연필 / 사진 : 월간 ‘전원생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