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삐비꽃, 추억과 함께 말라간다

몽당연필62 2008. 6. 10. 14:39

 

삐비꽃, 추억과 함께 말라간다


산과 들에 삐비꽃이 지천이다. 삐비는 ‘삘기’의 방언으로, 볕이 잘 드는 풀밭이나 밭둑에서 무리지어 자라는 띠의 어린 순.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 삐비는 찔레나 장다리 따위와 더불어 봄철 군입을 아쉬운 대로 달래주곤 했다.

 

쇠꼴을 베거나 쑥을 캐러 나간 아이가 크고 통통한 삐비가 많은 풀밭을 발견한 날은 그야말로 횡재를 한 것과도 같았다. 시골에서 자란 사람이라면 삐비를 한주먹 뽑아 친구들에게 자랑하며 한 개 한 개 일일이 껍질을 벗겨서 어린 이삭을 꺼내 우물거리던 추억을 지니고 있을 터이다.

 

요즘에는 먹을거리가 많기도 하거니와 시골에 아이들이 드물어, 채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뽑히던 삐비들도 천수(?)를 누리고 있다. 밭둑에 무더기로 피어 희부옇게 말라가는 삐비꽃들이 이제 우리의 추억도 함께 말라가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하다.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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