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치지 않은 편지

[공처가의 편지 3] 당신도 혹시 아줌마?

몽당연필62 2008. 7. 9. 14:22

당신도 혹시 아줌마?



아줌마는 겉모습은 여성인 것 같은데 하는 양을 보면 여성이 아닌 것 같기도 해서 혼란스럽다고 하오. 또 연약한 듯한데 강인하고, 무식한 듯하나 지혜로우며, 느린 듯하지만 빠르다고도 하오. 게다가 겁이 많은 듯한데 용감하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기실 못하는 것이 없는 신비한 존재가 바로 아줌마라는 거요.


우리나라 사람들 참 이상합디다. 정겹고 좋은 호칭이면 죄다 이상한 색깔을 칠해서, 진짜 그 호칭으로 불려야할 사람의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어버리니 말이오.

기억하오? 우리 연애시절 이 땅 모든 술집의 남자 종업원들은 ‘삼촌’이었고, 모든 음식점의 여자 종업원들은 ‘이모’였던 것을. 그때 진짜 삼촌과 이모들은 조카가 자신을 부르면 참 찜찜했을 거란 생각이 문득 드는구려.

그런데 요즘에는 정겨운 호칭으로 불리길 스스로 거부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있습디다. ‘아가씨’나 ‘언니’ ‘아주머니’ 등 여자들 호칭이 대표적이라 할 것이오. 이 호칭들은 마치 밤업소에 다니는 듯한 느낌을 주거나, 낮춰 부르는 듯해서 여자들이 싫어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소.

물론 피붙이가 아닌 성인 남자를 친근하게 이르는 말인 ‘아저씨’도 점차 ‘사장님’이나 ‘선생님’으로 대체되고 있소. 심지어는 운전을 업으로 삼은 사람조차도 ‘기사님’이라 부르면 눈을 흘기기 십상이어서 눈치를 봐가며 사장님 또는 선생님이라 해야 하니,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과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입장이 다를 게 뭐겠소.

 

각설하고…. 인간의 성(性)은 모두 3개라는데 알고 있소? 남성, 여성, 트랜스젠더라고? 아니오. 앞엣것 둘은 맞는데, 트랜스젠더 대신 ‘아줌마’가 들어간다고 하오. 더구나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중심 세력은 남성도 아니고 여성도 아니며 바로 아줌마라고 하니, 대한민국의 21세기는 바야흐로 아줌마의 시대가 아닌가 싶소.

남자라는 성은 일반적으로 거칠고 힘이 세며 바깥에서 일해 돈을 벌어오는 존재로 인식되고 있소. 여자라는 성은 부드럽고 섬세해서 살림하는 기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아이들 키우는 데도 열심이라고 하오.

그런데 아줌마라는 성은 그 특질을 몇 마디로 정의할 수 없으며 정체성 또한 대단히 모호하다고 합디다. 아줌마는 겉모습은 여성인 것 같은데 하는 양을 보면 여성이 아닌 것 같기도 해서 무엇보다 혼란스럽다고 하오. 또 연약한 듯한데 강인하고, 무식한 듯하나 지혜로우며, 느린 듯하지만 빠르다고도 하오. 게다가 겁이 많은 듯한데 용감하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지만 기실 못하는 것이 없는 초능력자요 신비한 존재가 바로 아줌마라는 거요.

사실 나도 아줌마의 그 신비한 힘을 삶의 현장에서 몇 차례 체험해 본 적이 있소.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마침 빈 자리가 나서 앉을라치면 어느새 어디선가 아줌마가 나타나 엉덩이부터 재빨리 들이밀고 차지해버리오. 그 동작이 얼마나 날렵하고 빈 자리를 향해 쳐들어가는 엉덩이의 각도는 얼마나 정확한지! 빈 자리를 찾아내는 시력과, 그 자리를 향해 달려오는 주력과, 순식간에 자리를 빼앗기고 머쓱하게 서 있는 나를 무안하게 만들어버리는 아줌마의 담력에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지 않을 수 없소.

그런 체험을 통해 가끔은 큰 깨달음을 얻기도 하오. 아줌마가 남성보다 여성에 가까운 성인 게 분명하다면, 빈 자리에 한 치 오차 없이 엉덩이를 집어넣는 실력으로 미루어, 여성은 공간 지각 능력이 떨어져 주차를 잘 하지 못한다는 말이 근거가 없다는 깨달음이오. 그러면서 속으로 내 마누라도 지하철이나 버스 타면 저럴까 싶어 한숨이 나오다, 한편으로는 동작 굼뜬 내 마누라는 자리나 제대로 차지하고 다니는지 심히 걱정도 된다오.

아줌마의 위대한 힘을 느낄 수 있는 또 한 가지는 바로 수다요. 여자 셋이 모이면 그저 접시나 깨뜨리고 말지만, 아줌마 셋이 모이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가 없소. 주위에서 들으니 아줌마들이 한번 수다판 벌이면 멀쩡한 시어머니 노망나는 건 시간문제고, 착실한 남편 밤일 부실한 무능력자 되기 십상이며, 죄 없는 이웃 세상에서 가장 쩨쩨하고 몰인정한 사람들이 된답디다.

모여서 떠들고 전화로 속닥이고 찜질방이나 사우나로 몰려가 히히덕거리고, 아줌마들은 만났다 하면 주위 사람들 귀 아픈 것은 안중에도 없이 따발총 쏘아대듯 수다 삼매경에 빠지곤 하니 그 끝없는 에너지가 도대체 어디서 샘솟는지 신기하오. 어쨌든 아줌마들 수다의 대부분은 아무 영양가 없는 것 아니겠소.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이, 내 마누라는 과연 여성일까 아줌마일까 하는 것이오. 우리집 통화료가 매달 10만 원 가까이 나오는 것이야 당신이 시골 부모님께 안부 여쭙느라 그런 줄로 아오만, 가정교육 제대로 받으며 자랐고 현숙한 아내이자 어머니가 된 당신이 아주머니라 불릴지언정 설마 아줌마이기야 하겠소. 하지만 더러는 내 고개가 갸웃해지며 의심이 드는 구석이 있으니 이를 어쩐단 말이오.

어쩌다 우리 외출할 때, 당신의 넘치다 못해 터무니없기까지 한 그 여유는 어찌 된 것이오? 모임 시간이 촉박한데, 열차나 비행기는 늦는 사람 기다려주지 않고 출발할 텐데, 화장대 앞에 앉은 당신은 너무나 태평하고 여유만만이오. 입술 칠하고 눈썹 그리는 당신과 시계를 번갈아 쳐다보며 초조한 마음에 독촉이라도 하면, 거울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당신의 눈빛이 마치 ‘너 혼자 갈 테면 가봐라’는 듯이 말하고 있으니 난감하기 이를 데 없소.

마트에 가서는 또 어떠하오. 이 물건 들어봤다 저 물건 만져봤다, 이 옷 입어봤다 저 옷 뒤집어봤다…. 먹고 싶고 입고 싶은 것 미리 메모했다가 얼른 사가지고 나오면 될 일을 쇼핑카트 끌고 당신 뒤를 어린애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마트를 몇 바퀴는 돌아야 쇼핑이 끝나니, 피곤하고 다리 무거운 것은 둘째요 우선 밀려오는 짜증을 누르기가 어렵소. 당신이 마트에 가자고 할 때마다 ‘내가 차라리 설거지를 하고 말지 쇼핑은 정말 싫다’는 말이 혀끝까지 나오는 것을 억지로 삼키곤 하오.

음식점에선 밥 나오기 전에 놓아둔 반찬부터 게걸스럽게 바닥 봐버리는 일은 삼가는 게 어떻겠소. 알뜰하고 음식 귀하게 여기는 당신의 귀한 뜻이야 가상하오만, 밥도 나오기 전에 반찬을 추가시킬 때 어이없어 하는 종업원의 시선을 받아넘기는 일이 여간 민망한 게 아닙디다. 하니 음식점에서는 양에 좀 안 차더라도 귀부인처럼 우아하게 먹고, 트림은 조금만 참았다가 밖에 나와서 합시다.

내 지체가 보잘것없어 당신에게 ‘사모님’ 소리 듣게 해주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미안하오. 그래도 못난 놈이 자존심은 있어서 당신이 아줌마로 낮춰 불리는 것은 싫으니, 우리 스스로가 호칭 인플레라도 일으킬 수 있도록 처신해야지 어떡하겠소.

우스갯소리인지는 모르겠으나, 듣자하니 진짜 막강한 아줌마는 남편이 먹을 일주일치 곰국 끓여놓고 혼자 관광을 가버린다고 합디다. 그래도 난 당신이 끓여놓은 감자된장국 데워 먹은 지 사흘째밖에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오. 밤이 깊었구려. 당신, 초등학교 동창회는 아직도 안 끝났소?


글 : 몽당연필 / 일러스트 : 김동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