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끝나가면서 햇살이 까끄라기만큼이나 따갑다. 덩달아 보리는 망종(芒種)을 앞두고 제법 누른빛을 띤다. 매서운 겨울을 이기고 자란 당당함인지 무모함인지, 익어도 고개를 숙이지 않는 보리.
어려서 이맘때 쯤 마늘종을 뽑던 아버지는 문득 보리 모개를 한 줌 분지르셨다. 풋내 나는 이삭을 마른 풀에 놓고 사른 뒤 식기를 기다렸다가 손바닥으로 비벼 후후 입바람으로 까부르면 통통한 보리알들은 구수한 내음을 풍겨 입 다시기에 딱 좋았다.
형제들끼리 콧잔등까지 꺼멓게 되도록 보리끄스름을 먹으면서도 그때는 몰랐다. 겉보리 서 말만 있으면 처가살이 안 한다는데, 아버지 당신에게는 겉보리 서 말 대신 키워야할 자식들만 주렁주렁하였음을….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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