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그리고 단상

살아계신 부모님의 산소, 가슴이 아립니다

몽당연필62 2008. 5. 9. 10:03

70대 중반이신 아버지와 60대 후반이신 어머니는 아직 건강하게 생존해 계십니다. 그런데 아래의 사진처럼 두 분의 산소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상석에 두 분의 이름까지 새겨서 말입니다. 이른바 '가묘(假墓)'라는, 시신을 묻지 않은 무덤이지요.

 

 

지난해 5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어머니 생신을 맞아 형제들이 고향집에 모였습니다. 그날 부모님께서는 "우리가 살 집을 따로 장만해 두었다"는 의아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멀쩡한 집이 있는데 또 집이라니... 게다가 부모님은 "너희들한테 부담 안 주려고 우리 힘으로 멋진 집을 두 채나 장만했다"고 덧붙이셨습니다.

 

부동산 투기를 하실 분들도 아니고, 또 그럴 돈도 없는 분들인지라, 한동안 어리둥절하며 서로 얼굴만 쳐다보던 우리는 문득 깨달았습니다. 당신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세상과 그리고 자식들과의 이별을 준비하고 계시며, 그 준비에는 부모로서 자식들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을요.

 

가묘가 만들어져 있는 공원묘지로 모두가 이동했습니다. 아직 잔디도 뿌리를 내리지 않은, 불과 며칠 전에 만든 묘였습니다. 부모님을 비롯한 우리 가족은 가묘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들 웃고 즐거운 표정이었지만... 마음 깊이 아려오는 감정을 억누르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남은 바람은, 부모님께서 이 집에 입주하여 잠드실 때까지 건강하셨으면 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입주 날짜가 되도록 아주 천천히 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 날이 영원히 오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건 무모한 욕심일 터이니까요.

 

덧붙이자면 아버지는 고향이 함경남도 영흥군으로, 6.25때 인민군으로 전쟁터에 끌려나왔다가 귀순해 다시 국군으로 복무를 하셨습니다. 북한과 남한 모두에서 군복을 입고, 한 번은 남쪽으로 또 한 번은 북쪽으로 총부리를 겨눠야했던 기구한 삶의 주인공이셨지요.

 

고향 영흥을 잊지 못해 큰아들의 이름을 영선, 작은아들의 이름을 흥선이라 지으셨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꼭 고향땅을 밟아보실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몽당연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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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읽으신 어느 분께서 본문에 쓰인 '가묘'라는 말은 '치묘'가 옳다는 의견을 주셨습니다. '치묘'도 '가묘(假墓)'도 사전에는 나오지 않는 용어입니다만, 지역에 따라 가묘라는 말을 사용하시는 분들이 많고 저 역시 가묘라는 말로 알고 있었기에 그리 적고 있음을 밝힙니다. 글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